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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화양연화)
오랜만에 대학 시절 친구와 식사를 했다. 그는 평생을 대학 강단에서 보낸 뒤 퇴직한 사람이다. 술이 몇 잔 들어가면 어김없이 젊은 날의 무용담을 꺼낸다. 캠퍼스에서 패싸움을 벌이던 이야기를 호기롭게 늘어놓다가, 마지막에는 늘 같은 말로 이야기를 접는다. “그때가 참 좋았어.” 그에게 그 시절은 여전히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 뇌리에서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었다. 여전히 나를 지탱하고 있는, 좋은 순간들이었다. 일흔을 넘긴 연륜에 이르러 시간은 더 이상 직선으로 달리지 않는다. 앞을 향해 질주하던 속도는 잦아들고, 대신 기억이 자주 발걸음을 붙잡는다. 삶은 이제 무늬가 아니라 결로 느껴진다. 손등과 얼굴에 새겨진 주름처럼, 마음에 밴 습관처럼.
그렇게 돌아본 지난날들 가운데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시절이 있다. 그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몰랐으나, 지금의 눈으로 보면 분명 삶이 가장 깊은 빛을 머금고 있던 때였다. 그 시절의 나는 늘 분주했다. 하루는 짧았고 책임은 무거웠다. 감정을 미뤄 두는 것이 성숙이라 믿었고, 말보다 침묵이 익숙했다. 웃음은 아꼈고 슬픔은 삼켰다. 그러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때 가장 많은 색을 품고 있었다.
골목 끝에 걸리던 저녁빛, 아이 손바닥에 남아 있던 체온, 단란하게 모여 짓던 소박한 웃음. 지금에 와서야 알겠다. 그 평범함이야말로 가장 깊은 삶의 무늬이자 결이었다는 것을. 기억은 큰 성공보다 사소한 순간을 더 또렷이 불러낸다. 비 오는 날 젖은 신발, 퇴근길에 스치던 노을, 말 없이 걷던 골목의 공기 냄새. 그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이제는 다시는 닿을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삶은 가장 빛나는 순간을 늘 조용히 숨겨 두었다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비로소 내보인다. 이럴 때면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가 떠오른다. 제목과 달리 그 영화는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절제와 침묵으로 가득하다. 느린 걸음, 스쳐 가는 시선, 말해지지 않은 마음들이 화면을 채운다. 그 고요함 속에서 영화는 말한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얼마나 소리 없이 지나가는지를.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시절엔 아무도 몰랐죠. 그게 가장 좋은 때였다는 걸.”
이 평범한 문장은, 지금의 연륜에서 시간을 되짚는 나에게 그대로 와닿는다.
나 또한 많은 마음을 말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미뤄 둔 사랑과 삼켜 버린 고마움이 시간의 틈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까지 포함해서, 그 시절은 충분히 충만했다는 것을.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오래 마음에 머물렀고, 채워지지 않았기에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침묵 속에 남겨진 것들이야말로 그 시간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회상에는 늘 아쉬움이 따른다.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왜 더 자주 웃지 못했을까, 왜 마음을 말로 남기지 않았을까. 여러 해가 지나서야 이런 질문들이 비로소 정직해진다. 그러나 오래 곱씹어 보니, 서툴렀어도 진심이 있었고, 흔들렸어도 멈추지 않았기에 그 나날들이 지금도 나를 데운다.
나는 이제 안다. 가장 빛나는 시절이란 완벽했던 때가 아니라, 삶에 가장 성실했던 순간이라는 것을. 불안했기에 더 애썼고, 부족했기에 더 사랑하려 했던 날들. 그 밀도가 삶을 무르익게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끝까지 살아내려 한다. 서두르지 않고, 대충 넘기지 않으며, 하루가 남기는 숨결을 느끼며. 지금 이 하루는 그저 평범한 하루로 보일지 모르나, 시간이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순간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내일이 오늘을 돌아볼 때, 이 하루 역시 이렇게 불릴 것이다.
"그때는 몰랐으나, 분명 가장 좋았던 때였다"고
병오년 원단 진주 내동에서 池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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