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지나서 어느날 수화기를 들었더니 나를 스타덤에 올려준 김종학 PD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강문영씨. 나하고 같이 일하자구. <제5열>이라는 추리물이야. 여주인공인 여기자역을 맡아줘."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김종학PD선생님의 박력넘친 목소리에 용기가 불끈 솟았다.
나를 브라운관에 최초로 클로즈업시켜 신데렐라로 만들었던 그분. 그분의 작품이라면 부족한 점이 많은 나라도 해낼수 있겠지. 화장을 고친 후 발걸음은 MBC로 향했다.
MBC TV미니시리즈 <제5열>은 킬러 한진희 선배를 형사 이영하선배가 줄곧 추적하는 스릴 만점의 드라마였다. 내가 맡은 여기자역은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어 순발력을 발휘하는 재치있는 아가씨여서 무척 매력있었다. 이미 <퇴역전선>에서 여기자 '천희진'을 해봤기에 여기자역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열심히 대본을 읽었고 연습에 임했다. 발음이 이상하다는 얘기를 안들으려고 집에서도 혼자서 녹음기를 갖다놓고 맹연습을 했다. 마스크만 괜찮고 나머지는 별 볼일 없는 연기자가 돼선 절대로 안돼. <아름다운 밀회>보다 더 멋진 연기자로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야지.
욕심은 대단한데 뜻대로 잘 안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연습하고 노력해도 뇌까리는 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이렇게 자신이 없어지는 걸까. 촬영날짜가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난 자꾸만 자신을 잃어갔다. 밤새도록 이 생각 저생각하다 뜬눈으로 지샜다.
내일부터 <제5열>촬영이 시작된다. 주저하다 끝내 수화기를 들었다. "선생님, 저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자신이 안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놀란 김종학PD선생님은 한동안 말문을 잊었다가 차분한 음성으로 날 설득했다. 그리곤 이틀을 기다릴테니 출연하도록 생각을 바꾸라고 했다.
이틀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신이 서질 않았고 결국 박순천 언니가 내 역에 캐스팅됐다. 그때가 89년 봄. 그 이후부터 김종학PD 선생님과 일할 기회가 없었지만 그분을 생각할 때마다 죄송하기만 하다.
특히 김종학PD 선생님이 연출한 <여명의 눈동자>가 요즘 한창 인기속에 방영중인데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그때 일이 떠올라 부끄럽기 그지 없다. 어쨌든 이때부터 연예계에선 '문제아 강문영'이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머리를 식힐 겸 미국 애틀란타에서 액세서리 도매를 하는 사촌언니집으로 날아가 보름동안 머물며 "연기를 집어치우고 대학공부를 계속할까"하는 갈등에 갈팡질팡했다.
귀국후 열흘쯤 지났는데 MBC 황인뢰PD선생님이 미니시리즈 <천사의 선택>에 출연하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해왔다. 내 마음은 또 동요됐다. 지난번 실수를 거울삼아 신인기분으로 다시 해보자.
출연키로 결정했다. 이런 난 과연 변덕쟁이일까.
MBC TV미니시리즈 <천사의 선택>에서 나는 닥터 문성근씨의 애인인 부잣집 딸역을 맡았다. 촬영장소는 주로 강원도 탄광천이었다. 모처럼 탄광촌에 파묻혀 연기에 몰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연습에 임했다. 하지만 연습이 반복될수록 또 다시 악몽같은 나의 변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무지 연기에 자신이 안서면서 고민에 싸인 나날을 보내게 된 것이다.
"또 다시 못하겠다면 난 방송가에서 죽일년이 되겠지." "투비 오어 낫 투비." 햄릿의 다이얼로그를 중얼거리며 고심하던 어느날 갑자기 사고를 당했다. 차에서 내리다 문에 부딪혀 팔이 부러졌다. 너무 골몰하다 멍청하게 부상을 입은 것이다.
왼팔목 뼈가 나가 고통스러웠다. 가뜩이나 하느냐 안하느냐로 갈등을 빚던 차에 이같은 부상은 뭔가 심상찮은 암시처럼 느껴졌다. 스타스토리 앞부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난 독실한 불교신자이다. 그리고 예감이나 꿈을 믿고 거의 적중했던 경험이 너무 많다. 팔부상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부처님이 하지말라는 계시"라고 결론을 내려 출연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붕대맨 채로 그대로 출연해." 화가 잔뜩 난 황인뢰PD선생님은 명령조로 말했다.
"도저히 자신없습니다."
결국 난 강고집답게 출연않겠다는 뜻을 관철시켰고 대신 신애라가 내 역을 맡았다. 난 이래서 결국 MBC에서 쟁쟁한 두 PD선생님의 드라마출연펑크를 내고 말았다. 곧 "탤런트 강문영 두번째 드라마 펑크"란 제목의 기사가 신문마다 큼지막하게 보도 되었다.
난 또 갑자기 세상사람 모두가 싫어졌다. 말하기조차 싫어서 방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방안의 시계, 캘린더도 모두 떼버리고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침대위에서만 뒹굴었다.
KBS에서 일요아침드라마 <당추동 사람들>에 오현경이 맡았던 당찬 아가씨역에 캐스팅돼 연습을 몇번 하다 이것도 곧 집어 치워버렸다. 태권도를 해야하고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어야 하는 배역이 싫었고 자신이 없어서였다. 이렇게 느닷없이 까다로워져 버리는 내 성격을 나 자신도 컨트롤을 못한다. 정말 몹쓸 여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땐 확실히 정서불안 상태였던 것 같다.
어릴때부터 난 무척 귀여움속에 자랐다. 66년3월5일(호적엔 67년생으로 돼있다) 집 가까운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이순희 산부인과에서 난 태어났다. 아버지 강두희씨(57)와 어머니 권오춘(52)사이의 1남1녀중 막내인 난 엄마 뱃속에서부터 유별났다.
엄마는 심한 입덧으로 식사를 제대로 못해 당시 유명했던 삼립빵으로 겨우 허기를 면하곤 했다. 그래서 지금도 "10개월간 쌀 1말도 못 먹었다"는 게 엄마의 말이다. 심한 입덧에 견디다 못한 엄마는 임신 5개월때 중절수술을 하러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위험하다"며 거절당했다.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다.
심한 입덧을 견디기도 어려웠지만 워낙 음식을 못먹은 엄마는 "정상아이인지 봐달라"고 병원측에 졸랐다. 그러나 나는 결국 10개월만에 고성을 울리며 태어났다. 엄마가 워낙 못드신 때문일까. 살점은 별로 없고 쭉뻗은 콧대와 긴 팔다리, 긴 손가락 이것이 갓 태어났을 때 나의 모습이었다.
생후 며칠 안돼 감기가 들어 마포 박소아과로 갔는데 박박사께서 '문영'이란 이름을 지어 주셨다.
당시 아빠는 육군대위로 금촌에 있는 모부대에 근무하셨다. 경기도 출신인 아빠는 진해에 계실때 마산에서 미용실을 경영하는 엄마와 알게 돼 결혼하셨다. 당시 엄마는 22세의 처녀로 미용사를 3명이나 둔 어엿한 사장님(?)이었다. 엄마는 그때부터 사장 기질을 발휘해 줄곧 음식점 커피숍 등을 경영, 우리 남매 뒷바라지에 헌신적이었다.
아빠도 엄마를 무척 사랑했으나 두 분은 어쩐지 성격차가 커 별거, 재결합 끝에 결국 다시 헤어지는 사이가 돼버렸다.
난 어릴때부터 고집이 세었다. 중3까지는 무척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고 줄곧 무용도 했다. 피아노도 열심히 쳐 체르니 40까지는 떼었으나 항상 의욕만 앞설뿐 끈기가 약해 용두사미(龍頭蛇尾)격으로 끝나는 게 나의 큰 결점이다.
소의국민학교에 2학년까지 다니다 몸이 아파 1년을 쉰후 이사해 상명국교로 전학했다.상명국교4학년때 난 처음으로 TV출연을 했다. 어린이날 특집인데 아마 <모이자. 노래하자>라는 프로인 것으로 기억한다. 급우들과 여럿이 나갔는데 사회자인 뽀빠이 이상용선생님과 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가 좋아요? 아빠가 좋아요?" "엄마가 좋아요." "왜요?" "엄마는 항상 내곁에 있어 주거든요."
이튿날 난 집에서 아빠로부터 되게 혼이 났다.
공부를 꽤 잘하던 내가 성적이 나빠진건 고교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부터다. 괜스레 별볼일도 없이 이곳저곳 쏘다녔는데 결코 나쁜 짓은 하지 않았지만 다만 사춘기 여학생들이 겪기 쉬운 묘한 바람이 든 상태라고나 할까.
얘기를 다시 TV드라마쪽으로 돌려야겠다. 연기에 자신을 잃고 오랜 방황을 하던 난 구세주를 만났다. 지금 MBC에서 새주간극 <도시인>을 연출하시는 신호균 PD선생님이다. 신선생님은 MBC 18기 탤런트 졸업작품 조연출을 맡은 인연으로 잘 알게 됐는데 연출 데뷔작인 MBC TV픽처 <아담의 초상>에 나를 캐스팅했다.
"안 달아 날거지? 믿어도 되지" 선생님은 이렇게 다짐하며 웃었다.
미국영화 <젊은이의 양지>를 번안한 단막극에서 난 리즈 테일러가 분했던 부자집 딸 역을 맡았고 김주승 오빠, 채시라와 공연했다. 실로 1년반만의 긴 휴식끝에 난 다시 TV로 돌아온 것이다. 갑자기 자신이 불붓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두렵지 않았다.
MBC 을 찍으면서 비로소 어렴풋이나마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어 89년 겨울, KBS 에서 미니시리즈 <끝없는 사랑> 출연제의가 들어왔다. 연출자 정을영PD선생님은 "도망안 갈 거지? 도중에 달아나려면 아예 지금 얘기해"하곤 "각서에 도장부터 찍자"면서 웃으며 다짐을 받으려했다.
"염려마세요. 앞으론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테니까요."
난 진심으로 그런 어리석은 짓은 두번 다시 않을 것을 맘속으로 깊이 다짐했다. <끝없는 사랑>은 이런 나의 결심을 더욱 확교히 해주기에 충분한 드라마였다.
명작<테스> 번안극인 <끝없는 사랑>에서 청순가련한 여주인공 '지수완'역은 신선한 이미지를 부각시켜주어 나의 재기를 완전히 성공시켜 주었다. 나와 결혼한후 고민하는 '요셉'역은 홍요섭오빠가, 나를 겁탈하는 첫남자역은 한진희 선배가 했다.
20여일간 제주도에서 촬영했는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제주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관광객들 때문에 외진 여인숙에서 고생하며 지냈어도 재미있기만 했다.
갈대밭에서 한진희 선배를 피해 달아나는 장면에선 넘어져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겁탈당하는 순간의 표정이 클로즈업 될땐 정말 곤욕스러웠다. "좀더 리얼한 표정을 지어봐!" 정 PD선생님의 불만스런 얼굴을 쳐다보며 난 어떤 표정을 연기해야할 지 참으로 어려웠다.
갓난 애기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이 방영되자 "강문영이 커다란 유방을 과감하게 내놓고 출연했다"는 소문이 났다. 실은 내 얼굴이 나온 다음 젖 물리는 신은 대역을 썼는데 시청자들이 감쪽같이 속은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밥먹는 장면을 찍을땐 홍요섭오빠가 너무 웃기는 바람에 밥알이 계속 튀어나와 거듭 NG를 내 찍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
<끝없는 사랑>이 방영되자 큰 호응을 얻었고 덕분에 난 논노CF 전속계약을 하는 등 다시 활발한 연예활동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