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들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부재가 점점 길어진다. 출근길 골목 어귀에서 만나는 조그만 부식 가게 주인인 여든 가량의 노인이다. 그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이 굽은 자세로 채소를 다듬기에 바빴다. 멈춰 선 시계처럼 문 닫힌 가게는 공허한 정적만이 흐른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이 계절에 가을맞이 여행을 떠났을까. 아니면 지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을까. 이름 모를 노인의 한평생 삶과 행적이 괜스레 궁금하다. 어쩌면 그녀는 평생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아왔을 성싶다. 그게 삶의 규칙이었을 것이다. 평소의 행색으로 보아 본인도 제대로 입거나 먹지 못했으면서 자식들에게 더 베풀지 못한 일을 기억하는 애달픈 모정. 노인의 가게를 지날 때면 왠지 기분이 착잡해진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삶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길가에는 근심과 즐거움, 무덤덤함과 설렘이 교차한다. 갑자기 우환이 생기거나 느닷없이 저승사자가 들이닥치기도 한다. 불청객이 다짜고짜 누군가의 손을 잡으면, 끌려가지 않으려 죽을힘을 다해 실랑이를 벌일 것이다.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손을 뻗지만, 길 위의 세상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인다.
길옆에 서서 방금 구입한 로또 복권의 1등 꿈을 만지작거리는 중년 부인의 진지한 표정. 그녀 뒤로 보이는 상점 유리창의 미소 짓는 연예인의 포스터가 사뭇 대조적이다. 그동안 고마웠다며 이별을 통보하는 폐업 안내문이 단골 가게에 붙어 있다. 손가락 하나로 원하는 물품이나 먹거리를 주문할 수 있는 거대한 온라인 매장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삼거리 모퉁이에서 부모의 귀가를 기다리며 스마트폰 게임에 빠진 아이. 늦은 밤 시각에도 학원가 도로변에 늘어선 노란색 셔틀버스와 승용차들의 행렬. 욕망과 경쟁은 보이지만, 삶의 여유나 웃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끼니로 때우는 컵밥이 있는가 하면, 서너 달 전에 예약하려고 해도 이미 만원이라는 일인당 이백 불짜리 저녁 식사도 있다. 오르막을 오르는 노인의 리어카에 담긴 산더미 같은 폐지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다. 자식은 물론 초등학생 손주에게 빌딩을 물려주는 재력가의 등기필증은 솜털처럼 가볍다. 허기에 지친 청년이 편의점에서 훔친 소비기한이 임박한 삼각 김밥. 빈 쌀독처럼 바닥을 보이는 그의 통장에는 서글픔이 먼저 도착해 있다. 이렇다 할 직업 없이 놀고먹으며 사치품을 찾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가난이라는 형벌을 받고 시지프스처럼 뼛골 빠지게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질적인 과시와 가식(假飾)은 보여도, 인간적인 향기를 맡기는 어렵다.
우편함에 비스듬히 누운 채, 사람을 그악스럽게 쳐다보는 변제 독촉장. 다른 융자로 돌려막으려는 대출마저 막혔을 때 채무자의 속은 숯덩이처럼 시커멓게 타지 않았으랴. 첫새벽 인력 시장에 나와 하루 일감을 구하지 못한 축 처진 어깨.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일 것이다. 곤궁한 사람이 돌아갈 곳이 있으면 좋으련만. 식당에서 마주 앉아 본인 소유 부동산의 값어치를 떠들고 있는 늙은이들의 대화. 그 건물에 사는 경제적 약자들의 작은 소망과 사각지대는 보이지 않는다.
사무실 내 책상 위에는 사건 기록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서류 하나하나가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그 속에는 약육강식과 승자 독식의 세계, 삶과 죽음의 바다가 펼쳐진다. 원고와 피고, 채권자와 채무자, 가해자와 피해자가 인생의 바다에서 진실 공방을 벌인다. 기록 속에는 당사자들의 사나운 눈초리와 교묘한 셈법이 숨겨져 있다. 곳곳에 쫓는 자가 쳐 놓은 낚시 바늘과 그물 같은 덫과 함정이 도사린다. 진짜 먹이와 미끼를 구분하지 못하면, 쫓기는 자는 치명상을 입는다.
그럴듯하고 비슷한 것에 당하는 세상이다. 한 통의 전화 때문에 어렵게 모은 목돈을 날리고 망연자실한 피해자들도 있다. 얼굴과 목소리까지 복제한 사냥꾼은 인정사정없이 돌진해 물어뜯는 상어처럼 악랄하다. 진짜가 아닌 가짜 닭 울음소리에 뇌동하여 성문을 열어 주는 고사(故事)처럼 함정에 빠지거나 속임수에 넘어간다. 그게 현실이다. 간판은 약자의 이름을 내걸고, 실속은 강자가 뒤에서 챙긴다. 책임질 일이 발생하면 강자는 오리발을 내밀기 일쑤다. 탐욕과 위선은 보여도, 염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해변에서 휠체어를 타고 풍선을 파는 장애인 부부의 해맑은 얼굴. 행인들은 그들 옆을 무심히 지나간다. 거리의 노숙자가 끌고 가는 작은 카트에 짐짝처럼 실린 그의 세간살이. 삼삼오오 길을 걷는 외국인 근로자와 낯선 땅에 정착한 다문화 이주민의 모습도 쉽게 목격된다. 이유 없는 모멸과 멸시의 눈초리로 대하는 다수의 시선은 그들을 투명 인간처럼 취급한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고단함과 설움은 보이지 않고, 울어도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되돌아보니 내가 본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상황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살아가느라 그때그때 눈가림하기에 급급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나 다름없으니 생각은 늘 허방을 짚었다. 눈에 보여야 겨우 알게 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우매한 존재.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데 나 자신이 그런 세상에 맞추질 못했다. 세상이 나에게 맞추어 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한바탕의 연극이다. 시대의 급변에 자신의 민낯을 숨기기도 하고 특정 부분을 강조한 가면을 쓴 채 살아가기도 한다. 가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싫어도 좋은 척, 하고 싶어도 아닌 척, 곤란한 국면에도 태연한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생활고에 시달려도 절의(節義)를 지킬 줄 아는 가면, 저지른 일이 부끄럽지만 깨끗하게 진실을 밝히는 가면, 고통스럽지만 산처럼 의연하게 버티는 가면들이 우리 삶의 이유가 되어 준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봄날, 노인의 가게에 새로운 간판이 걸린다. 개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얼굴에서 노인의 실루엣을 본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묵묵히 채소를 다듬고 있었던 노인. 채소를 다듬듯 가난을 다듬는 사람들 몸짓에서 보이지 않는 노인의 존엄을 읽는다.
길거리를 걷는 일은 나를 찾아가는 순례 의식이다.
- 이성환 -
첫댓글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기쁘고 즐거운 추석연휴 되세요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