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엄마의 흔적
다음 날 아침, 집 안의 공기는 전날보다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밤새 잠을 설친 민수와 수진은 말없이 식탁에 앉았다.
‘하루’ 파업이라던 엄마는 ‘이틀째’ 돌아오지 않았다.
쪽지에 적힌 ‘하루’라는 단어는 이제 희망이 아니라, 엄마가 던진 마지막 경고처럼 느껴졌다.
결국 두 사람은 회사에 전화를 걸어 급한 일이 생겼다며 반차를 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텅 빈 집에 마주 앉자 참았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민수였다.
“당신이 어제 그 쇼핑백만 안 들고 왔어도… 엄마 표정 못 봤어?”
적반하장이었다. 수진은 기가 막혔다.
“내가 사 온 옷이 문제예요? 온종일 애 보느라 삭신이 쑤신다는 분한테 TV 타박이나 한 건 누구였는데요!
이제 와서 내 탓이에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날 선 대화가 오갔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두려움이 더 크게 실려 있었다.
언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소리 내어 싸울수록, 엄마의 부재라는 현실만 더욱 선명해질 뿐이었다.
같은 시각, 영희는 낯선 바닷가에 있었다.
긴 시간 달려온 버스는 그녀를 작은 항구 도시에 내려주었다.
바다 갈매기들이 날갯짓하며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그녀는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성게미역국을 시켰다.
평생 남이 먹다 남긴 반찬, 식은 밥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는데,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차려진 따뜻한 밥상을 받으니 낯설었다.
한 숟갈을 뜨자,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바다의 맛이 입안에 퍼졌다.
맛있었다. 그런데 눈물이 났다. 이 좋은걸, 왜 이제야 혼자 먹고 있을까.
서울의 아파트. 기나긴 침묵 끝에 수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니 방에… 들어가 봐요. 혹시 뭔가 있지 않을까요?"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식구가 아닌 죄인처럼 어머니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단정하게 정돈된 방은 엄마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장롱, 낡은 경대, 작은 서랍장. 그게 전부였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집에, 정작 엄마 자신만의 것은 별게 없었다.
민수가 장롱을 열어보는 사이, 수진은 경대 옆 작은 서랍장으로 향했다.
첫 번째 칸에는 실과 바늘, 두 번째 칸에는 낡은 앨범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칸을 열었을 때, 수진은 숨을 멈췄다.
서랍 안에는 다 쓴 파스 껍데기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마치 훈장처럼, 혹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증거처럼.
그 아래에는 아직 쓰지 않은 새 파스 수십 개가 상자째 들어 있었다.
코를 찌르는 파스 냄새에 수진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파스 상자 밑에서, 조심스럽게 접힌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대학병원 이름이 찍힌 진료 예약증이었다.
‘환자: 이영희 / 진료과: 류마티스내과 / 날짜: 2025년 9월 12일’
‘9월 12일.’ 날짜가 유난히 눈에 익었다.
수진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었다.
스크롤을 내리자, ‘가을맞이 강릉 여행’이라는 앨범이 나타났다.
활짝 웃고 있는 자신과 민수의 사진들. 사진 정보에 찍힌 날짜는 선명했다. 9월 12일.
수진의 얼굴이 하얗게 경직되었다.
“여보… 어머니, 병원 가셨던 날… 우리가 강릉 여행 간다고 시우 맡겼던 그날이었어요.”
<다음 편에 계속...>
이 소설의 주제가와 연주음악을 감상해 보세요.
https://youtu.be/EEDOixt8ri4
첫댓글 [단편연재] 엄마의 파업 선언 - 3. 엄마의 흔적
좋은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현실감있는 단편 글
처음부터 잘 읽었습니다
요즘 시대가 그러니 어쩔수 없다고 하지만
자식들은 부모의 고통을 전혀 모르지요
부모는 뼈가 부서져도 자식들 일이라면 희생을 감수 하는데 ㅡ
ㅡ
다음에 전개될 내용이 궁금해 집니다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한 하루 되시길요
좋은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