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사
이형권
겨울 산사는 텅 비어 있는 듯하다.
눈 쌓인 산자락에는 창백한 낯빛의 하늘이 걸려 있고 전각들은 모두 문을 닫고 고요 속에 웅크려 있다.
응달을 지나온 바람소리가 허전한 마음을 스치고 가면 세상의 모든 자리가 허공처럼 텅 비어 있다.
겨울 산사의 매력은 이 텅 비어 있음에 있다.
수목들은 잎을 떨궈 낸 앙상한 가지로 서 있고 시냇물소리는 청빈한 수행자처럼 야위었다.
모두가 시련의 세월 속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결제의 시간인 것이다.
그 적막한 풍경 속에서
처마 끝에 우는 풍경소리는 더욱 명징해지고
적설을 이기지 못한 설해목 한 가지가
또다시 우지끈 부러져 내린다.
지난 계절 분주했던 인파는 보이지 않고
산사의 뜨락에는 오로지 적요만이 깃들어 있다.
스님들은 풀리지 않는 화두를 들고 아득한 시간의 어귀를 서성이고
지나가는 길손의 발자국이
잠시 산사의 정막을 일으켜 세워 면회를 하고 간다.
하여 겨울산사를 찾아가는 길은
자신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라 불러도 좋다.
세상의 시간으로부터 단절된 곳에서
고독한 영혼이 절벽처럼 서 있고
높은 사유의 정수리가 빛을 뿜어내며 새벽공기처럼 살아 있다.
꽃이 피고 달이 뜨는 낙화유수의 시간 속에서
윤회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길손이 머리 조아릴 때
텅 비어 있는 겨울산사는 온전히 수행자의 도량이 된다.
속인이건 구도자이건 가난한 순례자이건
가장 진실한 시간 속에 그들의 영혼들을 불러 세우고 성성히 깨어있게 한다.
그 깨어 있는 시간을 향해
우리는 겨울 산사로 가는 것이다.
📷
2025. 1. 9
무심재 여행
눈 내리는 내장사에서... / 계절그리기
첫댓글 '겨울 산사의 매력은 그 텅 비워 있음에 있다'
특히 어제 같이 폭설이 내리는 날엔
더욱 더 텅 비어져서
오롯이 산사의 매력이 돋보였지요
오랜만에
겨울 산사의 고요함을 마주한
특별히 좋은 날이였습니다
내장사 전망대 가는길의 겨우살이
무심재 선생님 詩가 참 좋지요?
겨울 산사로 떠나시는 이유를 이리도 아름답게 쓰셨어요.
고요하고 적막한 절집 한 채를
오롯이 품게 되는
참 아름다운 詩입니다.
그 겨울 산사!
그대로 느끼셨을 산벗님 다녀오신 소식을 들으니
제가 다 기쁘네요.
저도 가끔 눈에 띄어 보게 되는데
2023년 1월,
강원도 영월 요선암(邀仙岩)에서 겨우살이를 보았지요.
꼭 새집처럼 보이는!
꽃과 나무를 좋아하시니
겨우살이까지 눈에 띄셨군요.
덕분에 겨우살이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았는데
특별한 느낌의 이 사진이 눈에 들어와요.
한라산붉은겨우살이의 모습. 정상기 작가 제공
산사 에가고싶다..애인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