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25년의 전설
김정대(영화 칼럼니스트)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종 편집본인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과 어마어마한 스페셜 피처를 실은 UCE 버전 DVD가 최근 발매됐다. 25년 전 개봉 당시의 혹평을 딛고 ‘SF영화의 전설’이 되기까지. <블레이드 러너>의 불타는 연대기를 공개한다.
1982년 6월 25일은 리들리 스콧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악몽의 날’로 남게 됐다. 이날은 바로 북미 1,290개 개봉관에 <블레이드 러너>가 일제히 걸린 역사적인 날이었다. <에이리언>의 대성공으로 할리우드의 무혈입성에 성공했으며, 자신이 운영하던 광고제작회사 RSA도 ‘추락 없는 상종가’를 계속 유지하고 있던 탓에 <블레이드 러너> 제작 당시 스콧의 자신감과 패기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그러나 이날 조간신문에 실린 평론가들의 무자비한 혹평은 석 달 전 덴버와 달라스에서 열린 테스트 시사회 후(이때 관객들의 부정적인 반응 때문에 스콧은 데커드의 내레이션과 급조된 해피엔딩을 삽입해 영화를 다시 편집하게 된다) 조금씩 흔들리고 있던 그의 당당함을 완전히 박살내버리기에 충분했다. 마이클 딜리와 제리 페렌치오 등 <블레이드 러너>의 제작자들은 ‘혹시 이것이 향후 닥칠 더 큰 비극을 알리는 신호탄은 아닐까?’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불행히도 그들의 예감은 사실로 판명됐다. 2천8백만 달러라는 거액이 투입된 대작 <블레이드 러너>는 결국 존 카펜터의 <괴물>과 함께 그해 여름 최대 흥행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영화의 제작사인 라드컴퍼니와 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는 초상집이 됐고, 스콧은 쇼크를 받아 잠시 잠적했다. 한동안 CF만 찍던 스콧은 3년 뒤 <레전드>로 영화판에 복귀했는데, 그는 영화를 찍는 내내 ‘<블레이드 러너>의 악몽’이 떠올라 두려움에 떨었다. <스타 워즈>와 <스타 워즈 에피소드5-제국의 역습> <레이더스>로 3연타석 홈런을 날린 해리슨 포드 역시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고, 일생일대의 예술작품을 찍어냈다고 자부하던 명촬영감독 조단 크로넨웨스는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다.
기괴하게도 이 악몽은 스크린을 뛰어넘어 현실세계로까지 번졌다. 영화 속 LA시 배경에 빛나는 로고를 제공했던 많은 회사들이 영화의 흥행실패 후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거나(벨 전화회사, 코카콜라) 아예 파산 신청을 하는(아타리, 팬암 항공사, 퀴진아트) 등의 비극이 연달아 발생한 것이다. 호사가들은 이 불가사의한 일련의 사건을 가리켜 ‘<블레이드 러너>의 저주’라 칭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불가사의’라는 말은 이 불행한 사건들보다는 이후 25년간 (‘사망선고’를 받았던!) 이 영화가 겪은 경천동지할 재발견의 과정을 묘사하는 데 더 어울리는 단어일 것이다. 단언컨대,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이 된 2019년에 나올 영화사 책에는 ‘<블레이드 러너>의 저주’ 대신 ‘<블레이드 러너>의 기적’이라는 문장이 당당히 자리 잡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발매된 <블레이드 러너> UCE DVD는 이 놀라운 기적의 결정적인 증거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위험한 나날들
돌이켜보면 1982년 <블레이드 러너>의 첫 개봉 당시 평론가들이 양산해낸 리뷰 중에는 충격적일 정도로 황당한 것도 적지 않다. 예컨대, 케네스 유르키에비치 등 상당수의 평론가들은 단지 소설의 매력을 충실히 재현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영화를 공격해댔다. 필립 K. 딕의 원작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애당초 (내용과 정서상) 할리우드 상업영화로 ‘충실히’ 각색되기에 부적합한 작품이라는 것은 SF소설의 팬이 아닌 일반 독자들조차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이런 식의 평가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일부 평론가들은 “레플리칸트는 어차피 수명이 4년밖에 되지 않아서 곧 죽을 텐데, 블레이드 러너는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그들을 잡으러 다니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며 설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심지어 유명한 평론가 폴린 카엘 같은 이도 같은 맥락의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이것은 실로 초등학생들조차 비웃을 해괴한 논리(그렇다면 레플리칸트들이 계속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도록 놔둬야 한다는 것인가?!)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블레이드 러너>는 개봉 당시 혹평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혹평들의 논조가 지나칠 정도로 신랄하고 잔인했기 때문에 호평은 상대적으로 빛을 잃었다. 실제로 당시 나온 평 중에는 팻 버만(“자극적 볼거리로만 가득한 알맹이 없는 SF 포르노그래피”)이나 셰일라 벤슨(“블레이드 러너’보다는 ‘블레이드 크롤러(Crawler, 기는 사람)가 영화에 더 어울리는 말일 것"), 자넷 매슬린(“엉망진창, 고통스럽고 뒤죽박죽인 영화”)의 글처럼 혹평이라기보다는 ‘인신공격’에 가까운 것도 적지 않았다. “특수효과가 스토리를 눌러버렸다”(로저 에버트)는 식의 전통적 양식의 혹평은 이런 일련의 잔혹한 공격에 비하면 양반 축에 속한다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몇몇 팬들은 이런 혹평이 나온 이유가 ‘(극장판) 데커드의 어색한 내레이션과 급조된 해피엔딩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폴린 카엘과 같은 이들은 리뷰에서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나온 많은 혹평에서 느껴지는 ‘필요 이상의 살벌함’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1992년에 내레이션과 해피엔딩이 제거된 감독판 <블레이드 러너>가 공개됐을 때 각종 언론매체의 평균 영화평점이 (1982년 개봉 때보다) 고작 ‘별 반 개’ 상승했다는 다소 쇼킹한 통계는 이에 대한 방증이다. 평론가들의 혹평이 이토록 살벌했던 이유는 사실은 영화 개봉 당시 대중들이 느꼈던 불안감과 불쾌함, 당혹감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즉, 이 혹평들은 <블레이드 러너>에 등을 돌렸던 많은 관객들의 심리상태가 투영된 거울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불쾌하고 당혹스럽게’ 만들었을까?
<블레이드 러너>가 공개된 1980년대 초는 신자유주의가 세력을 확산하던 시기다. 미국인들은 1980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를 외면하고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의 손을 들어주었다.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실업’으로 대변되는 70년대의 경제적 시련기를 겪은 미국인들에게 레이건이 내건 ‘강하고 풍족한 미국’이라는 슬로건은 떨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이 대선의 결과에는 70년대 말 경제정책의 실패로 지지도가 떨어진 카터 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징벌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도덕 정치’를 표방하던 카터가 패배하고 ‘경제 부흥’을 약속한 레이건이 당선되면서 미국이 신보수주의의 물결에 휩싸이던 당시 미국의 상황은 현재 우리나라의 정국과도 흡사했다).
‘부유한 나라’라는 단꿈에 젖어 있던 당시의 미국인들은 암울했던 70년대를 기억에서 떨치려 애썼고, 대중문화의 조류 역시 이런 대중들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헌데, 바로 이런 때 난데없이 등장한 <블레이드 러너>가 보여준 미래상은 대중들이 꿈꾸던 유토피아적 미래상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마인드 테러’와도 같은 것이었다. 특히 대중들은 <블레이드 러너>보다 2주 앞서 개봉해 박스오피스를 초토화한 <E.T>를 통해 이미 유토피아적 신기루를 체험한 터여서, 이런 ‘마인드 테러’에 대한 거부감과 당혹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지 ‘제시한 미래상이 어두웠다’라는 이유만으로 <블레이드 러너>가 대중과 평론가들의 외면을 받았다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다. 똑같이 어두운 미래상을 제시한 SF영화였지만, 스콧의 전작 <에이리언>의 경우는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바 있기 때문이다. <블레이드 러너>가 많은 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진짜 이유는 바로 영화의 혁신적인 스타일이 자아낸 리얼리즘 때문이었다.
퓨처 누아르
평론가 대니 피어리의 표현대로,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이래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블레이드 러너>만큼 파워풀하고 무시무시하게 묘사한 영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블레이드 러너>와 <메트로폴리스>를 비교하는 것은 결코 억지스러운 일이 아니다(디자이너 시드 미드와 미술감독 로렌스 폴은 <메트로폴리스>의 비주얼을 참조해 <블레이드 러너>의 미술작업을 진행했으며, 스콧 역시 연출면에서 <메트로폴리스>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메트로폴리스>와 <블레이드 러너>의 시각적 스타일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대중들의 피부에 와 닿는 ‘리얼리즘의 강도’다.
평론가 레이먼드 더그냇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묘사된 LA시의 모습이 “마치 (극사실주의 화가) 리처드 에스테스의 작품을 연상시킨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것은 영화의 스타일이 뿜어내는 리얼리즘의 강렬함을 가장 정확히 묘사한 말이기도 하다. 시대를 초월한 혁명적인 모티브와는 별개로, ‘미래에 대한 잔혹한 SF동화’ 정도의 이미지로 인식되곤 하는 <메트로폴리스>의 비주얼과는 달리, <블레이드 러너>의 그것은 섬뜩하리만치 현실과 가깝다. 이는 영화의 개봉당시는 물론이고, 21세기로 접어든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해석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는 과거와 현재, 가까운 미래의 모습의 완벽한 콜라주이기 때문에 통시성과 현실 적합성, 예언성을 모두 지닌다. 이것은 스콧이 ‘레트로피팅(Retrofitting: 과거에 존재한 양식을 기반으로 미래의 것을 만들어내는)’이라 명명한 방식을 통해 재현된 비주얼의 결과물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별천지 세계를 묘사한 과거의 SF영화와는 달리, <블레이드 러너> 속 LA 시가지의 모습은 ‘왠지’ 낯설지가 않다. 스콧이 정교하게 꾸민 백드롭에서는 수백 층에 이르는 초현대식 마천루와 그 사이를 누비는 스피너(미래의 경찰차), 그리고 ‘현대’의 지저분한 뒷골목의 모습과 40년대 누아르풍의 ‘눈에 익은’ 길거리 광경(영화의 주된 촬영이 진행된 버뱅크스튜디오는 과거 <말타의 매>나 <빅 슬립> 등의 누아르 명작들이 촬영된 곳이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포스트모던하다’라는 진부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불가해한 미학적 임팩트를 발산한다. 스콧은 <블레이드 러너>를 SF영화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에게 이 영화는 항상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필름 누아르, 즉 ‘퓨처 누아르’였다. 이는 영화의 미술 스탭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었다.
시드 미드는 (<메트로폴리스>에서 그랬듯) ‘현대의 뉴욕시’를 모델로 해 영화 속의 LA시를 디자인했다고 증언했다. 우뚝 솟은 초대형 마천루들은 (2001년에 붕괴된)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표준높이로 하여, 그것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과장해’ 설계됐으며, 그곳에서 시선을 아래로 옮길수록 스타일은 점점 ‘과거형’이 돼간다(미술팀은 영화의 건축 스타일을 ‘레트로 데코(Retro-Deco)’라 명명했다). 그리고 거리 레벨에 가까워질수록 스타일은 점점 ‘지저분’해져,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이 항상 고여 있는 바닥에 이르면 완전히 ‘더러운 하수구’의 모양새가 된다. 하층민을 상징하는 아시아인들의 남루한 차림새에서부터 데커드의 복고풍 트렌치코트, 40년대 독일 군인을 연상시키는 경찰복장, 뉴웨이브 펑크스타일의 레플리칸트 프리스의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인물과 패션의 묘사에서도 비슷한 통시성이 발견된다. 어디에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미래상’이라는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로빈 우드는 <블레이드 러너> 속의 사회상이 “(미래가 아닌)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사회를 과장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맞는 말이다. 따라서 유토피아를 꿈꾸던 80년대의 대중들이 영화 속 도시 광경이 ‘우리가 곧 맞이할 암울한 미래상’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는 당황해했고, 불쾌감에 이를 갈며 이를 부정하려 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영화의 비주얼 요소 중 이것보다 관객들의 무의식을 더욱 직접적으로 건드린 것이 있으니, 바로 ‘자본주의에 대한 적나라한 풍자성’이다.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인 이미지로 비치는 타이렐의 피라미드형 거대 건축물은 (굳이 시드 미드의 해설을 참조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 눈에 봐도 자본주의 사회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하는 악덕 자본가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이 초호화 주택에 사는 타이렐은 해가 지는 아름다운 광경과 빛나는 별빛을 마음껏 만끽하며 산다(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긋지긋한’ 산성비 대신 석양과 별빛이 보인 부분은 타이렐의 피라미드 신이다). 하지만 이들 부르주아가 경쟁하듯 세워놓은 마천루들이 햇빛을 차단하는 바람에 그 아래에 거주하는 하류층 노동자들은 영원히 ‘어둠에 갇혀’ 살아야 한다. 데커드의 아파트는 항상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으며, 그의 방을 밝히는 유일한 외부 광원은 (햇빛이 아니라) 현란한 광고물이 내뿜는 불빛이다.
영화가 풍자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 LA시는 원작 소설의 샌프란시스코와는 달리 ‘인구과밀지역’으로 묘사되는데, 이 인구들의 다수는 ‘하류층’ 빈민들이다.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욕심대로 땅을 개발하고 노동력을 착취해 부를 축적한 뒤, 도시가 아래에서부터 황폐화되자 슬그머니 외부세계(Off World Colony)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선택받은 자들’의 외부세계로의 이주를 장려하는 영화 속 홍보문구를 주목할 것). 이 광경 위에는 ‘교외로 점차 빠져나가는 부유층’과 ‘슬럼화되는 도심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빈민층’의 대비로 상징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이미지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더욱 무서운 것은, 영화가 ‘폐소공포증’이라는 주된 정서를 통해 관객이 이런 상황에서 절대 탈출할 수 없다는 점을 은밀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자본주의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몰락한다는 마르크스의 시각과는 반대로 자본주의는 권력과 억압이 지속됨으로써 근본적으로는 해체돼버린 문명의 한가운데서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는 냉정한 시각을 보여준다”는 로빈 우드의 해석은 이 관점에서 보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쯤 되면 대중들이 이 영화에 등을 돌린 이유가 무엇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급진적인 성향의 영화가 레이건 집권기인 1982년에, 그것도 대자본의 지원을 받아 할리우드 시스템 내에서 제작됐다는 사실은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중들이 ‘집단 공포증’을 극복하고 영화의 미학의 우수성과 플롯 곳곳에 감춰진 모럴 코드의 가치를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블레이드 러너: 레저렉션
<블레이드 러너>가 흥행에 실패한 또 하나의 이유는 영화의 내러티브 전개방식과 액션 신 연출이 당시 관객이 열광하던 주류 영화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예고편마저 영화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스타일(‘상투적인 액션영화’를 연상시키는)로 제작되는 바람에 관객이 느낀 배신감은 더욱 증폭되고 말았다. 스콧은 이 외에 영화의 실패요인으로 ‘지나친 영상정보의 집약’을 든 바 있다. 그는 “만일 내가 <블레이드 러너>를 다시 만든다면 프레임당 영상정보의 밀도를 낮추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분석은 사실 정확한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영상정보는 한 번의 감상으로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포화상태’였으며, 그로 인해 관객이 (그 기막힌) 스토리에 몰입한 수 없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영화가 어떻게 관객에게 ‘재발견’될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바로 비디오테이프 문화 때문이다.
70년대의 심야극장과 자동차극장 문화가 낳은 컬트영화가 <록키 호러 픽쳐 쇼>였다면, 1980년대에 전세계를 휩쓴 비디오테이프 문화가 발굴해낸 대표적인 컬트영화는 바로 <블레이드 러너>다. <블레이드 러너>의 배급사인 워너는 흥행성적이 신통치 않자 영화를 극장가에서 조기 철수시켜버린 뒤 2차 판권시장(케이블 TV, 비디오)으로 넘기는 방법으로 적자를 만회하려 했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예정보다 일찍’ 이 영화를 케이블 TV와 비디오테이프로 접하게 되는데, <E.T> 증후군이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한 이때부터 ‘<블레이드 러너>를 수차례나 반복 관람한’ 팬들이 본격적으로 양산된다. <블레이드 러너>는 1983년 엠버시엔터테인먼트에서 최초로 비디오테이프와 LD로 발매된 순간부터 ‘깜짝’ 히트상품이 됐고, 이 놀라운 현상은 80년대 내내 지속됐다.
결국 <블레이드 러너>의 비디오테이프는 80년대에 가장 많이 대여된 테이프 중 하나라는 믿기 힘든 기록을 세우게 된다. 게다가 1987년에 크라이테리언이 발매한 LD(여기에는 엠버시의 LD에 담긴 미국 극장판과는 다른 인터내셔널 컷이 수록된 바 있다)는 자사의 발매 타이틀 중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영화 마니아들의 필수 소장 아이템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비디오를 통해 영화의 가치를 재발견한 열혈 팬들은 개봉 당시 ‘수작’을 알아보지 못한 평론가들의 근시안을 신랄하게 질책하는 서한을 언론사에 보내기도 하고 각종 팬 매거진도 간행하면서 영화가 재평가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급기야 ‘사이트 앤 사운드’나 ‘필름 코멘트’ 등의 잡지에는 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분석글들이 게재됐고, 영화는 결국 ‘주류 평단’의 관심을 다시 끌기에 이른다. 2차 판권시장에서 <블레이드 러너>의 선풍적 인기는 당시 유행하던 사이버 펑크,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조류와 결합해 이전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대중문화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이것은 필 조아누나 데이빗 핀처와 같은 신세대 스타일리스트들에게 곧장 흡수됐다. 그리고 이후 대중영화의 비주얼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모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비디오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비디오테이프는 ‘무한 반복 관람’과 ‘화면 정지를 통한 프레임 감상’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바로 이것으로 인해 스콧이 말한 ‘영상정보의 과잉’이라는 영화의 치명적 문제점은 순식간에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장점으로 둔갑해버렸다. 팬들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영화를 반복 감상하며 스콧이 정성스레 만든 수 겹의 영상 레이어를 하나씩 벗겨가면서 기막힌 비주얼이 주는 엑스타시를 끊임없이 재음미했다. 그들에게 <블레이드 러너>는 ‘봐도 봐도 새로운 것이 계속 발견되는’ 신천지와도 같은 경이로운 예술작품이었다. 평론가 대니 피어리의 지적대로, <블레이드 러너>는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본 사람만이 그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다. 피어리의 이 지적은 ‘영화를 (고작) 한 번 본 뒤 깊이 없는 글을 휘갈긴’ 동료 평론가들을 향한 질책이기도 했다. <블레이드 러너>의 옹호자 중 한 명인 인기 평론가 케네스 튜란 역시 ‘여러 차례 영화를 본 뒤에야 진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라는 고백을 한 바 있다.
<블레이드 러너>를 두 번 이상 보는 순간 한없이 복잡한 영상 스타일은 더 이상 스토리를 옭아매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빛내는 촉매제가 된다. 또 반복 감상을 하다보면 그토록 평론가들에게 많은 욕을 먹은 데커드의 내레이션조차 ‘매력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탐정 목소리’로 들리게 된다(<블레이드 러너>의 마니아들 중에는 의외로 극장판과 인터내셔널판에 삽입된 데커드의 내레이션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 마니아들에게 클리셰가 된 “데커드는 레플리칸트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 것도 바로 이 과정을 통해서였다. <블레이드 러너>의 팬들은 이렇게 하여 스콧이 의도한, 그리고 원작자 필립 K. 딕이 열광한 영화의 설정에 점점 접근해갔다.
최초에 햄튼 팬처가 쓴 각본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던 딕은 데이빗 피플스가 고쳐 쓴 각본을 본 뒤에는 매우 흡족해하며 “(내용이 상당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내 책의 핵심 정서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피플스가 원작 소설을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각본작업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는 일면 ‘난센스에 가까운 평가’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타로그’ 지에 실렸던 딕의 설명을 들으면 이 평가에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작 소설과 <블레이드 러너>가 공유한 요소는 바로 ‘인간성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실존적인 질문이다. 데커드는 레플리칸트를 ‘사냥’하며 점점 비인간화되는 반면, 레플리칸트들은 갈수록 ‘인간화’된다. 그리고 종국에 이들 사이의 경계는 사라지고 만다.
일찍이 딕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집필하게 된 계기가 ‘나치 SS 요원에 관한 자료를 보다가 떠오른 인간성에 대한 생각들’ 때문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우리의 주변에는 안드로이드가 존재한다. 인간과 외양은 완전히 동일하지만 속은 인간이 아닌 존재 말이다”) 영화의 엔딩 신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레플리칸트 로이 배티는 자신에게 침을 뱉는 오만한 데커드를 구해주고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워준 뒤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사상 가장 숭고한 죽음 신으로 손꼽히는 이 장면은 딕이 추구하던 테마를 가장 훌륭하게 구현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를 제대로 이해한 팬이라면, 앞으로는 “데커드는 레플리칸트인가”라는 질문 대신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할 것이다. “로이 배티는 인간인가?”
2007년,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
1993년 미국 의회도서관은 영구 보존될 걸작 영화 25편 중 하나로 <블레이드 러너>를 선정했다. 이는 11년 전 철저히 외면 받았던 ‘저주받은 SF영화’가 마니아들의 노력에 힘입어 마침내 레전드의 위치에 올랐음을 확인해주는 드라마틱한 사건이었다. 워너가 1997년에 최초로 DVD로 발매한 ‘역사적인 영화 25편’의 리스트 중 <블레이드 러너>가 포함돼 있던 것은 이런 영화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때 발매된 DVD는 <블레이드 러너>의 팬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타이틀은 결코 아니었다. 이 DVD에는 1992년에 나온 감독판만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블레이드 러너>의 기적을 일궈낸 것은 바로 미국 극장판과 인터내셔널판(이것은 유럽 개봉 버전으로, 미국 극장판에서 삭제된 폭력 신 등이 추가돼 있다)이었음에도 말이다.
1992년 감독판은 극장판 및 인터내셔널판에 삽입된 데커드의 내레이션과 해피엔딩 신(데커드와 레이첼이 ‘희망의 도피’를 하는 신으로, <샤이닝>의 아웃테이크를 활용한 것)을 제거하고 데커드의 유니콘 꿈 신을 추가하여 다시 편집된 것인데, 당시 스콧은 빡빡한 일정에 쫓기면서 서둘러 편집을 진행하는 바람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충분히 편집본에 담지 못했다. 스콧이 이 편집본에 대해 “감독판에 가까운 버전일 뿐 진정한 감독판은 아니다”라는 평가를 내린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부분을 늘 아쉬워한 스콧은 이후에도 ‘<블레이드 러너>의 진정한 감독판’을 다시 편집할 기회를 끈질기게 물색했지만 한번 날아가버린 기회는 좀처럼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2000년, 마침내 그는 그토록 열망하던 재편집의 기회를 다시 갖게 된다. 자신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DVD 프로듀서 찰스 드 로지리카(<에이리언> 4부작과 <킹덤 오브 헤븐> 감독판 DVD를 제작하기도 한 그의 평생소원은 <블레이드 러너>의 완전판을 DVD로 만드는 것이었다)가 함께 손을 잡고 <블레이드 러너>의 완전판(당시 Definitive Cut으로 명명)을 DVD로 만들자고 제안해온 것이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은 2002년 출시를 목표로 해 완전판의 편집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헌데 예기치 않은 판권문제가 발생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완전판의 편집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들은 2006년에 워너가 판권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뒤에야 작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공백 기간은 그들에게 오히려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기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디지털 복원기술 덕분에 보다 향상된 퀄리티의 복원판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파이널 컷’이라 명명된 <블레이드 러너>의 최종(!) 감독판은 바로 이 디지털 복원기술의 은총을 한 몸에 받고 탄생한 감동의 역작이다. 첨단 4K 디지털 복원 프로세스를 거쳐 복원된 영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심지어 1982년에 상영된 70mm 필름 버전보다도 맑고 투명한 ‘초고화질’을 뽐내고 있으며, 8K 해상도에서 복원된 시각효과 신은 마치 방금 카메라에 담긴 듯한 생생함을 발산한다.
로지리카는 복원과정에서 과거에 ‘심각한 옥의 티’로 지적된 몇몇 신, 예컨대 레플리칸트 조라의 얼굴이 본래 배역을 맡은 조안나 캐시디가 아닌 스턴트우먼임이 드러나는 부분이나 스피너의 케이블이 보이는 부분, 데커드와 압둘 벤 하산의 대화 신 중 립싱크가 전혀 맞지 않는 부분 등을 디지털로 정교하게 수정하기도 했다. 1992년 감독판의 옥의 티 중 하나였던 유니콘 신(이 신은 오리지널 네가가 아닌 아웃테이크에서 가져온 것이었기에 질감의 차이가 심하게 두드러진 바 있다) 역시 새롭게 업그레이드됐다. 또한 6-트랙 마스터에서 새롭게 추출해 믹싱된 음향트랙의 퀄리티 역시 최신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 특히, 반젤리스의 기념비적인 스코어가 흐르는 부분은 그 자체만으로 감상자의 혼을 뺄 정도의 청각적 오르가슴을 선사할 것이다.
하지만 로지리카는 이 정성 어린 디지털 복원과정에서 스콧의 본래 의도와 영화의 고풍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번 파이널 컷은 ‘쨍한 화질’을 보여주는 동시에 80년대 영화의 필름 느낌도 고스란히 간직한 기막힌 비주얼을 가지게 됐다. UCE 버전의 다섯 장의 디스크에 수록된 엄청난 분량의 부록들 역시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이번 DVD 박스세트의 최고의 특장점은 파이널 컷과 함께 1992년 감독판, 82년 미국 극장판과 인터내셔널판, 심지어 82년 3월 덴버와 달라스에서 상영된 ‘전설의’ 워크프린트판까지 모두 수록해 감상자가 한 눈에 <블레이드 러너>의 불타는 연대기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롤링스톤’ 지의 인기평론가 피터 트래버스는 2007년 최고의 DVD로 <블레이드 러너> UCE 박스세트를 선정했다. 미안하지만, 트래버스의 선정은 잘못됐다. <블레이드 러너> UCE는 ‘2007년 최고의 DVD’가 아니라 ‘역사상 최고의 걸작 DVD’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