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춤의 이해 -
우리나라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탈춤은 양주별산대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를 비롯한 열 세 종목이며 그 외에는 독립적인 탈춤으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강릉단오제의 관노가면극, 한장군놀이의 자인팔광대, 남사당놀이의 덧뵈기 등 놀이 속에 있는 탈춤 등이 있습니다.
탈을 도구로 쓰고 노는 탈놀이의 명칭은 지역별로 다른데 먼저 북부 지방에서는 춤을 중요하게 여겨 봉산탈춤, 은율탈춤, 강령탈춤 등 탈춤이라고 하고, 중부 지방에서는 무대를 높이 꾸며 연희를 하여 송파 산대놀이, 양주 별산대놀이처럼 산대놀이라고 합니다.
남부 지방에서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다섯 광대의 놀음, 다섯 마당으로 노는 놀음이라는 오광대라고 불렀으며 가산오광대,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들놀음, 야외에서 노는 놀음이라 하여 야류라 하고 동래 야류, 수영 야류가 있습니다.
이 외에는 함경도 북청의 사자놀음은 사자를 중심으로 놀았으므로 그렇게 불렀고 하회 별신굿 탈놀이는 굿과 탈놀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탈놀이 자체를 굿놀이라 하였으며 굿의 일부였습니다.
- 처녀신을 위로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
하회 별신굿 탈놀이
하회 별신굿 탈놀이는 농촌형의 서낭제 탈놀이로 12세기 중엽부터 상민(常民)들에 의해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연희 되어온 탈놀이입니다.
농경사회에서 풍농(풍년)은 절대적인 것으로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에 의해 즉, 신의 뜻에 달렸다고 생각하였으며 마을마다 마을을 지키는 동신(洞神)을 모시고 있으며 이 수호신에게 대개 정월 대보름에 매년 제사를 올렸습니다.
별신굿은 특별한 큰 굿을 의미하며 5년 또는 10년 만에 한 번씩 하는 굿으로 현재는 한 해에 한 번씩 하며 별신굿탈놀이 전 여덟 과장을 연희하여 볼 수 있습니다.
하회 마을의 서낭신은 열일곱 살의 처녀신 의성 김씨라고 전해 오는데 구전에 의하면 하회탈을 만들었다는 허도령을 흠모하였는데 자신 때문에 신의 금기를 어겨 허도령이 요절하자 처녀 또한 허도령의 죽음을 번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니 마을 사람들이 서낭당을 짓고 신으로 모신 후 매년 제사를 받들었다고 합니다.
놀이를 시작하기 전 대내림을 하는데, 당방울이 달린 내림대를 잡고 서낭신(성황신)을 내리면 당방울을 성황대에 옮겨 달고 성황대와 내림대를 동사 처마에 기대어 세우고 비로소 놀이가 시작됩니다.
- 대내림을 기원하는 강신 장면 -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놀이 내용은 다른 지역과 비슷하여 벽사의식과, 지배계층인 양반과 선비의 위선과 허구성을 폭로하고 중의 파계를 통하여 당시 불교의 타락상과 종교의 허구성을 비판하며, 상민들의 어려운 삶의 애환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각시의 무동마당·주지마당·백정마당·할미마당·파계승마당·양반과 선비마당·혼례마당·신방마당의 여덟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탈놀이에 볼 수 없는 서낭신을 위한 무동마당, 혼례마당, 신방마당, 등은 처녀신인 서낭신을 위로하는 것으로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백정마당에서 양반에 대한 조롱과 모욕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다릅니다.
등장인물로는 주지승·각시·중·양반·선비·초랭이·이매·부네·백정·할미 등이 있다. 파계승에 대한 비웃음과 양반에 대한 신랄한 풍자·해학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 첫째 마당 각시의 무동마당 -
- 둘째 마당 주지마당 -
- 세째 마당 백정마당 -
- 네째 마당 할미마당 -
- 다섯째 마당 파계승 마당 -
- 여섯째 마당 양반과 선비마당(쇠불알이 정력에 좋다고 하자 서로 가지려고 다투는 장면) -
- 일곱째 마당 혼례마당 -
- 여덟째 마당 신방마당 -
- 근래 하회벌신굿탈놀이 전수관을 지어 그곳에서 공연을 하고 잇으며 주로 학생들의 현장체험 학습의 장으로 많이 이용하
며 간간이 외국인 관광객들도 관광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 공연이 끝나고 탈을 벗고 공연장을 돌며 인사를 하는 출연자들, 전수관이 있어 보전이 이루어지는데 갈수록 고령화 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탈놀이의 반주는 꽹과리가 중심이 되는 풍물꾼이 하며 즉흥적이고 일상적인 동작에 약간의 율동을 섞은 춤사위로 이루어진다.
신분질서가 엄격했던 당시의 사회상으로 볼 때 지배계층의 비판으로 일관된 탈놀이가 하회라는 양반마을에서 양반들의 묵인 하에 또는 경제적인 지원 속에서 연희된 것이다.
이것은 상민들은 탈놀이를 통하여 자신들의 억눌린 감정과 불만을 해소할 수 있으며 양반들은 상민들의 비판과 풍자를 통하여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불만을 해소시켜 줌으로써 갈등과 저항을 줄여 상하간의 조화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별신굿 탈놀이를 통하여 상민들은 세상살이를 풍자(諷刺)하고, 자신들의 억눌린 감정을 거리낌 없이 마음껏 발산 할 수 있었습니다.
하회탈과 병산탈은 바가지나 종이로 만든 여느 탈과 달리 목조탈이며 격식과 세련됨을 갖춘 유물로 하회탈은 병산탈과 함께 1964년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었고, 하회 별신굿 탈놀이는 우리나라 가면극의 발생이나 기원을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하회탈 11개와 병산탈 2개가 남아 있으며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음 -
하회 별신굿 탈놀이가 전승되고 있는 하회 마을은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돌아 붙여진 물돌이 마을로 행정구역으로는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동이며, 풍산 류씨 동성 마을로 구전에 의하면 고려 중엽까지는 허씨가, 그뒤에 안씨, 나중엔 류씨가 조선 초기부터 집단적으로 정착했다고 합니다.
아름답고 멋스러운 경치를 자랑하는 이 하회 마을은 선조들의 생활문화와 민족문화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조상들의 소중한 삶의 자취와 생활문화가 잘 간직되어 있으며, 마을의 양진당(보물 제306호), 충효당(보물 제414호) 등 많은 건축물들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발달된 집구조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 122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하회 마을은 몇 년 전 영국 여왕의 우리나라 방문 때 찾은 곳으로 하회 마을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 마을임을 확인하였고 또, 여왕이 파격적으로 우리의 전통 방식에 따라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가 전 세계의 매스컴에 소개되어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또, 하회 마을은 2010년에 경주의 양동 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명실공이 우리나라의 자랑거리에서 세계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하회 마을은 마을 앞 강 건너 해발 64ⅿ 높이의 바위 절벽인 부용대에 오르면 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낙동강 강물이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부용대로 왼쪽 끝이 정상으로 높지 않은 편이며, 오른쪽 처럼 사공이 노를 젓는 배를 타고 건넌다. -
- 부용대에서 내려다 본 하회 마을 -
- 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마을 안 길과 시원한 뚝방길 -
- 전통적인 흙담과 돌담 -
- 옛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초가와 채전 -
- 수령이 오래된 마을의 보호수와 소지들 -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한 시 이곳 하회마을을 찾는 모습과 외국관광객이 찾는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