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걸은 등무과 출신으로 절충장군을 지낸 후 귀향하여 안산시 사동 감자골에서 지내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그 당시 50세였던 최정걸은 인조가 피해있던 남한산성으로 가 단신으로 출격하여 적의 머리 일곱 급을 베어 인조 어전에 바쳤고, 이에 인조가 크게 감동하여 어주(御酒)를 내렸다. 다음 날 다시 출전하여 분전 끝에 전사하는데 이 때가 인조 14년(1636) 12월 29일이었으며, 후에 인조는 그를 가선대부병조참판에 추증하였다. 최정걸의 묘는 안산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암벽을 가로지르듯이 잘린 전순을 석축으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묘지가 조성되어져 있다.
사람의 출입을 막기위한 철망은 장군의 행적을 모두 막아버린 장벽이였지만 그 자리의 상태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수맥 유해파를 점검하기도 전에 저 멀리서 걸어오는 빨간 모자의 산불관리인을 눈치삼아 돌려본 펜둘럼에서는 봉분 중앙을 위시하여 빙글 빙글 돌아가며 수맥유해파의 위치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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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적진에서 수급이 베어 머리 없는 묘로 350여년간을 지내오고 있으니 지하에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원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