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보은에는
국수를 시원하니 기가 막히게 말아내는
쪼매난 식당이 하나 있다.
툭툭 건내주는 반찬이 맛깔나고
넘치게 담아주는 국수가 달디 단.
비가 오면 헛일 처럼 들러 국수를 먹는다.
내가 단골인 것이
원래 여긴 두 그릇 부터 주문이 가능한데
나는 혼자 가도 별 말 없이 내주신다.
날이 꾸무리하던 어느 날 때를 넘겨 들른 그곳에서
국수를 허겁지겁 들이켜다
또 그 놈의 소주 생각이 나 반 병만 마셔야지
글라스에 반 병을 따라 벌컥벌컥 하는데
공부 많이 한 수의사양반이
왜 밥은 허구헌날 거지발싸개처럼 쳐먹어…
사장님이 잔소리와 함께
검은 종지를 하나 놓고가신다.
찐득한데 뭔가 몽글몽글 한 것이
가만보니 무조청이다.
조청을 해서는
꾸덕꾸덕 말린 무를 넣어 졸여 만든 무조청이다.
나 어려서 할머니가 해주셨던…
약리 작용은 잘 모르지만 약국이 서운하던 시골에서 나름의 비법으로 소화제를 대신했던 무조정이다.
그 맛이 참 달큰하고 식감이 사금사금하니
일품이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어려서 배앓이를 달고 살아 걱정이던 할머니는
하나뿐인 손주…그것도 장손이라고
무조청을 매년 해주셨드랬다.
오늘 십수년을 건너 만난 그 무조청이
반갑고 또 서운하다.
마중물이 되어 소환된 할머니의 기억에 얽힌 음식이 아직도 남아 있음에 차마 반갑고
이제는 추억으로만 허락될 할머니의 부재가 못내 서운하다.
얼큰하게 취해 나와보니 윤슬에 반짝이는 시냇물, 잠시 멈춘 물길.
마치 하늘로 열린 거울처럼
모든 걸 아름답게 반영하는 물그림자가 마법처럼 영롱하다.
그 빛에 홀려 그만…
아뿔싸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엔 무조청 한단지가 검은 봉지에 담겨 들려있더라.
그리고 다른 손엔 10만원이 찍힌 영수증이…
식당 사장님 상술에 또 넘어갔다.
아무래도 마누라에게 또 혼날 것 같다.
뭐더러 10만원이나 주구 조청을 사!
만오천원이면 극단 새벽에 가서는 어!
눈물 찍! 콧물 찍! 하하호호
질펀허게 놀구 올 수 있는디, 뭐더러 무조청을 사!
ㅋㅋㅋ
시원한 국수보다
얼큰한 소주보다
영롱한 윤슬보다
극단 새벽의 연극, 두근두근이 더 좋은데.
할머니의 무조청 만큼이나 이렇게 좋은데.
ㅋㅋㅋ
자신이 짓는 표정을 남들이 볼 수 있음을 인식하고
그 시선의 마주침과 관계의 흐름을 배워가는 시간.
연극, 두근두근. 이것두 스포일러라면 스포일러??
[후기 글 주의사항]
Tip 1. 솔직하고 정성이 담긴 감상평 부탁드립니다^^
Tip 2. 줄거리요약 및 스포일러성의 글은 다른 관객을 위해 자제해 주세요ㅠㅠ
첫댓글 감명깊게 늘 잘 읽고 있습니다 *^^*
매번 주시는 응원과
후기 감사합니다ㅎㅎ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