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모르시는분은 아마 안계실겁니다
이번 대광고 사태에 대해서 좋은말 해주셨길래 글을 옮겨봅니다
제정신 갖고 예수믿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말에 정말 공감합니다
현대의 콜로세움
몇 년 전 독일에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독일에서는 전통적으로 학교 교실에 십자가상을 걸어놓곤 했는데, 이 유구한 전통에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내린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학부모는 “벌거벗고 피 흘리는 남자의 끔찍한 모습이 딸의 정서 교육에 안 좋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독일에서 기독교는 종교적 현상이기 이전에 정치적 보수주의. 그래선지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 기사를 읽고 모종의 통쾌감을 느끼며 ‘킥킥’ 웃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남부 독일에서는 이 판결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거기서 한 여학생은 마이크를 잡고 “십자가상이 내 정서에 악영향을 끼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그것이 내 삶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었다”고 말했다. 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생각일 뿐, 남들까지 다 그렇게 생각할 의무는 없다. 무신론자, 불교신자, 이슬람교도가 함께 있는 교실에 굳이 십자가가 걸려 있을 필요가 뭐 있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내 자신은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성경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내가 가진 상상력의 대부분은 구약을 근원으로 하고, 내가 가진 윤리의 적지 않은 부분은 신약성서에서 얻은 것이다. 때문에 내 자신은 교회에 듬성듬성 나가도, 내 아이만은 꼭 교회에 다니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강의석 군이 오랜 단식 끝에 예배선택권을 얻어낸 사건이었다.
아이에게 원하지 않는 신앙을 강요해서는 안 되겠다. 하지만 주일학교에 일종의 교양으로서 성경을 공부하게 권유(?)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러다가 얼마 전 이 생각마저 고쳐먹게 되었다. 계기가 된 것은 강의석군의 2차 단식투쟁. 듣자 하니 대광고에서 진짜로 예배선택권을 준 게 아니라, 예배 대신 강제로 성경공부를 시킬 작정이라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성경공부조차도 강요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단에 맞서 제자의 예배선택권을 옹호했던 류상태 교사는 결국 교사직을 반납하고, 목사직마저 내놓았다. 그 직이 천직이고, 그 이전에 직업이기도 했으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양심을 지켰다. 목사직을 버렸다고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니리라. 어차피 주는 재단과 교단을 떠났고, 주가 떠난 몰상식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정말 우리의 주라면, 그의 뜻은 신앙을 강요하는 학교나 교단이 아니라, 남의 양심을 존중해주는 행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왜?
대광고는 현대의 콜로세움이다. 신앙을 강요한 것은 로마의 학살자들이고, 거기에 맞서 양심의 자유를 지켰던 것은 순교자들이었다. 그럼 재단과 교단은 이중 어느 쪽인가? 신앙의 강요인가, 양심의 자유인가? 내 참, 예수 안 믿는 것도 참으로 힘든 사회다. 예수 한 번 안 믿으려면 몸이 미라가 되도록 밥을 굶고 또 굶어야 한다. 그렇다고 예수 믿는 게 쉬운 것도 아니다. 예수 제대로 믿는 것은 사도 시대만큼이나 지금도 어려운 일. 누구처럼 밥줄이 끊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누구처럼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도 힘들지만, 나처럼 예수를 대충 믿기도 참 힘든 사회다. 국보법 찬양하고, 재단권력 비호하고, 교회 비판한다고 언론자유 가로막는 분들과 ‘같은’ 성도 노릇 하는 게 어디 제 정신 갖고 할 수 있는 일인가? 심지어 시청 앞 광장에서 성조기 휘날리며, 심지어 무고한 10만의 생명을 죽인 전쟁을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의 성전으로 축성하는 분들과 ‘함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차마 인두껍을 쓰고 할 일이 못 된다.
믿기도 어렵고, 안 믿기도 어렵고. 이 시대는 신앙의 시대인가, 불신의 시대인가? 밤이 되면 온 나라가 붉은 색 네온 십자가로 사태 지는데, 오 주여, 당신은 어디로 가셨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