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방문
을숙도 끝단 조류관측소에 도달했으나 그들은 요란한 새소리만 다대포로 흘려 보낼 뿐, 그 모습을 절묘하게 감추었다.
그들도 다시 인간의 소란에 어느정도 익숙해져야 거리를 좁힐 것 같다.
큰고니들의 엄청난 무리들만 관측한 오늘.
관측거리 대략 400 - 500 m
관측소와 결집하고 있는 수로.
.. 음. 영리하고 독한 것들!
이 녀석은 아마도 중대백로일 것이다. 제 놈에겐 인간들이 그런 이름 붙히는 짓이 가소롭기 짝이 없겠지만, 안잡아먹히는 댓가로 참아줘야 옳다.
동정 포인트는 노랑부리가 아니다. 그건 시기에 따라 검게 변하니까. 오히려 부리와 뺨, 눈이 닿은 부위가 초록연두빛을 띄는 것이 확실한 감별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가지를 S자로 구부리지 않고 멀리보듯 빳빳하게 세우는 모습이 기특하다. 완전 고고한 자태를 구성했다.
그래서 이 새는 "까마귀 노는 곳에 절대 가지 않는 백로"로 칭한다. 나랑 같은 과다.
무리에서 동떨어진 갈대 수풀 사이로 큰고니 한 마리가 유영하고 그 뒤를 오리 한 마리가 따르고 있다.
큰고니는 어쩐 연유로 무리를 벗어났을까.
오리 또한 무슨 사정이 있어 큰고니만 쫄쫄거릴까.
하여간 무리에서 벗어난 큰고니는 올겨울에 처음. 끝내 나랑 정면 응시는 안 하네.
큰고니는 나와 250 m 정도 떨어졌지만 나의 일거수 일투족은 다 꿰뚫고 있을 것이다. 여유있게 오리를 데리고 다니는 저 한가로움 보소. 실로 아름답기만.
수면 반영 <1>
굴전 8개와 미역국이 저녁식사의 전부였다는 기억을 끝으로, 어떤 생각도 나지 않고 네시반에 눈을 떴다.
석장의 연밭 사진을 누워서 만지다가 잠이 들었다는 기억을 되살렸다.
연대는 속절없이 부러지고 꺾여도 수면반영은 아름답다. 바람이 불어 매끈한 데칼코마니 같은 대칭이 아닌 흔들림도 좋다.
지난 밤, 나의 수면 반영도 좋다. 깊디 깊은 수면 속에 푸른 그림자들이 수양버들처럼 흔들린 잔영의 밤이었다.
수면 반영 <2>
바람이 더 불면, 반영은 잔물결 속에 묻힌다. 이때는 오직 그 자신만 오뚝할 뿐.
비록 늙은 연꽃씨방을 무겁게 떨구어 말라 비틀어졌어도 이만한 자태를 이곳 어디서 찿겠는가.
연꽃씨방 사이로 틈이 생기며 아침햇살에 빛나는 보석같은 성애의 찬란함을 준비하는 늙은 여왕.
수면 반영 <3>
꺾여진 연꽃대와 처박힌 씨방이 모노크롬이 되면서 찬란한 그림이 된다. 흑백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다.
수면 반영은 거기에 하나의 깊이를 더한다. 저 물길 사이로 하얀 큰고니 세마리가 유유히 지나던 그림은 꿈이 아녔다. 지난 겨울의 명백한 화면 아니었던가.
내 수면에 비치는 하얀 큰고니는 뒷모습을 보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내게 다가온다. 그 눈빛이 반짝이며 마주치는 순간, 나는 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