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장미는 그날도 피고있었다 /강은혜 유월 이슬에 젖은 붉디붉은 장미 꽃잎이 다 피워보지도 못한 채 낙화 한다. 왜 떨어져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낙화해야 하는 지 모른 채 모든 꽃들이 떨어지던 어느 유월 내 나이 17살 백지에 무지개 뜨는 언덕위에 작은 집 짓고 부모 형제 처 자식과 사과 나무 밑에서 웃음꽃 그리려 했는데 내 원수가 내 형제가 아니었더라면 장미가 붉게 피지 않았더라면 붉은 깃발의 붉은 군대가 남하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붉은 장미 꽃잎이 아니었더라면.... 나를 죽인 자는 누구인가 모른다. 총탄이 비같이 쏟아지든 날 전우는 어머니 붉은 가슴으로 돌아가고 운명의 총탄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가든 날 저렇듯 향 고운 너의 손길도 내 눈을 감기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그날도 피고 있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애국자들 이 우리들의 그리운 님들이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간 유월의 장미 그래서 핏빛인것같습니다
붉은 장미는 그날도 여전 리 피어 무심하네요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 장미나 지금 장미나 무심히 피고 잇엇습니다
피지도 못한 꽃잎이 지든날도 장미 피고잇엇다는 슬픔을 머금 고 갑니다
소니아님 고맙습니다
제나이 아홉살 국민학교 3학년때 초여름 천둥번개와 함께 우리마을( 동두천 위 회암리) 앞길에는 남부여대 하여 피난민이 줄를 이었 읍니다 울 아버지는 모내기 일 하러 가셔서 찾아갖고 피난 길를늦게떠나 북한 첩보원과 합류하여 의정부쪽으로 피난을 가다다 뒤에서 국군2명이 총을 들고 뛰어 오는 것을 보고 형이 국군온다 하니까 이북사람이 지게위에 타고가는 동생의 이불를 빼앗아 논두렁으로 돌돌 말고 둘어가 국군이 총으로 쏴죽이는 장면을 보고갔 는 데 이미 의정부가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가 피난민 들 의 떼가 마을 마다 모여 소 오양간에서 우리는 누었 는데 밤중에 후레시가번쩍 이든이 피난민들 를 모두 마당에 일렬로세우고
파파님의 나이가 아주 공포를 느끼는 나이였으니 얼마나 무서웠겟는 지요
손검사를 하는 데 스님 복장을 한 2명을 이쌍간나 쌕끼 들 내래 모를 줄 알 았 냐!? 며 골라서 오라줄로 꽁꽁 묶어 데려갔읍니다 군인 은 손에 농군의 군살이 안백여서 그걸보고 잡아 갓 다는 군요 한국전쟁 이야기 를 쓰려면 한이 없읍니다 오~~ 철철지 원수 김일성 이 민족 상잔의 전쟁 을 이르켜 국토를 황폐시키드니 그 아들 정일이가 또 이렇게 까부는 데 두번 다시는 안 당할 것 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참전 용사 의 이슬이 헛되지 않게 굳건히 이 나라 를 지켜 나가 야 합니다 소향님 의 추모시에 감사 합니다 .
파파님 우리는 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런일이 없기위해서는 국력을 단단히 해야 겠습니다
6월의 붉은장미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들의 영혼이 우리곁에 다가온 모습 인가봐요. 추모시 감사드리며... 20여년을 군인으로 있었던 저에게 특별한 의미로 느껴집니다.
비둘기님 그러셨군요 고맙습니다
장미는 무심이 그날도 피어 붉은 빛갈속을 거닐고있었는 지도 모릅니다 고맙습니다
금잔디님 우리는 격지 않앗기에 무심할수는 잇지만 전 쟁은 무서운 것입니다
무심한 장미 그향기도 그고운 자태도 붉은 피를 막을 수 없엇습니다
붉은 피가 낙동강을 메울때 도 장미는 붉게 피엇겟지요
아 그날의 비극이 다시는 도래하지 못하게 하기위;해서 우리는 늘 준비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맞아요 다시는 동족상쟁이 도래하지 못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아그날이여 좋은 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만복님 유월의 아픔이지요
그래요 . 붉은 장미를 다 방면으로 의미를 부가하고 있는 글 같아요. 시심이 곱습니다. 좋아요. ^^
현충일에 아들과 참배하고 왔죠...안타까운 현실이지요...사촌형님도 거기 누워 계시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애국자들 이 우리들의 그리운 님들이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간 유월의 장미 그래서 핏빛인것같습니다
붉은 장미는 그날도 여전 리 피어 무심하네요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 장미나 지금 장미나 무심히 피고 잇엇습니다
피지도 못한 꽃잎이 지든날도 장미 피고잇엇다는 슬픔을 머금 고 갑니다
소니아님 고맙습니다
제나이 아홉살 국민학교 3학년때 초여름 천둥번개와 함께 우리마을( 동두천 위 회암리) 앞길에는 남부여대 하여 피난민이 줄를 이었 읍니다 울 아버지는 모내기 일 하러 가셔서 찾아갖고 피난 길를늦게떠나 북한 첩보원과 합류하여 의정부쪽으로 피난을 가다다 뒤에서 국군2명이 총을 들고 뛰어 오는 것을 보고 형이 국군온다 하니까 이북사람이 지게위에 타고가는 동생의 이불를 빼앗아 논두렁으로 돌돌 말고 둘어가 국군이 총으로 쏴죽이는 장면을 보고갔 는 데 이미 의정부가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가 피난민 들 의 떼가 마을 마다 모여 소 오양간에서 우리는 누었 는데 밤중에 후레시가번쩍 이든이 피난민들 를 모두 마당에 일렬로세우고
파파님의 나이가 아주 공포를 느끼는 나이였으니 얼마나 무서웠겟는 지요
손검사를 하는 데 스님 복장을 한 2명을 이쌍간나 쌕끼 들 내래 모를 줄 알 았 냐!? 며 골라서 오라줄로 꽁꽁 묶어 데려갔읍니다 군인 은 손에 농군의 군살이 안백여서 그걸보고 잡아 갓 다는 군요 한국전쟁 이야기 를 쓰려면 한이 없읍니다 오~~ 철철지 원수 김일성 이 민족 상잔의 전쟁 을 이르켜 국토를 황폐시키드니 그 아들 정일이가 또 이렇게 까부는 데 두번 다시는 안 당할 것 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참전 용사 의 이슬이 헛되지 않게 굳건히 이 나라 를 지켜 나가 야 합니다 소향님 의 추모시에 감사 합니다 .
파파님 우리는 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런일이 없기위해서는 국력을 단단히 해야 겠습니다
6월의 붉은장미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들의 영혼이 우리곁에 다가온 모습 인가봐요. 추모시 감사드리며... 20여년을 군인으로 있었던 저에게 특별한 의미로 느껴집니다.
비둘기님 그러셨군요 고맙습니다
장미는 무심이 그날도 피어 붉은 빛갈속을 거닐고있었는 지도 모릅니다 고맙습니다
금잔디님 우리는 격지 않앗기에 무심할수는 잇지만 전 쟁은 무서운 것입니다
무심한 장미 그향기도 그고운 자태도 붉은 피를 막을 수 없엇습니다
붉은 피가 낙동강을 메울때 도 장미는 붉게 피엇겟지요
아 그날의 비극이 다시는 도래하지 못하게 하기위;해서 우리는 늘 준비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맞아요 다시는 동족상쟁이 도래하지 못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아그날이여 좋은 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만복님 유월의 아픔이지요
그래요 . 붉은 장미를 다 방면으로 의미를 부가하고 있는 글 같아요. 시심이 곱습니다. 좋아요. ^^
현충일에 아들과 참배하고 왔죠...안타까운 현실이지요...사촌형님도 거기 누워 계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