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상태가 부실한 아이들 얼굴에는 마른버짐이 피어 있다. 검게 탄 얼굴에 마른버짐이 군데군데 피어 얼굴이 얼룩덜룩하게 보인다. 위생이 좋지 않아 머리에 부스럼이 나고 기계총에 걸린 아이도 많았다. 치료방법으로는 주변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약을 바른다. 또래들은 머리에 땜질 했다고 놀렸다.
기계총은 전염이 되고 부스럼은 지저분하므로 걸린 아이와 접촉을 꺼린다. 이런 병에 걸린 아이들은 다 나을 때까지 또래의 놀이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요즘 말로 하면 왕따다.
지금은 누구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두 가지 영양제를 먹고 있으나 그 당시는 언감생심이다. 그때 원기소라는 영양제가 있었다. 처음에는 과자 이름인 줄 알았다. 이 영양제를 먹으면 아이들이 잔병치레를 하지 않으면서 튼튼해진다고 했다. 부모들은 이 영양제를 자식에게 먹이는 게 큰 소원이었다.
이렇게 먹는 것이 부실하고 위생환경이 열악하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에서 이따금 분유를 끓여서 먹이고 간유도 먹였다. 학교에서 큰 통에 분유를 풀어서 끓이면 뽀얀 물에서 구수한 냄새가 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런 걸 처음 보았다. 한컴씩 마시고 구수한 냄새에 이끌려 더 마신다.
마시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꾸르륵 소리가 나면서 배가 살살 아프다. 어머니 젖을 뗀 후 젖 성분과 비슷한 음식을 처음 먹으니까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보름에 한 번씩 끓여주었다. 마실 때마다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배가 아프다든가 설사를 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끓여주는 분유 마시기를 싫어했다.
아이들은 부모님 말씀은 이따금 어깃장을 놓았으나 선생님 말씀을 어긴 적이 거의 없다. 망나니처럼 나대면서 버릇이 없거나, 형제간에 싸움질하든가, 집에서 공부를 안 하는 아이는 부모님이 자식 버릇을 고쳐달라고 선생님에게 부탁을 한다. 부탁하면서 꼭 빠지지 않는 말은 때려서라도 교육해달라고 말씀을 하신다. 이처럼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선생님 말씀을 신뢰했다. 선생님 말씀이 우유는 몸에 좋은 영양분이 많다는데 마시고 나면 기운이 나는 것이 아니라 도로 기운이 없어지고 배가 아프니까 마시기를 꺼린다. 선생님도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든 기억이 난다.
어떤 날은 분유를 봉지에 넣어 나누어 주었다. 집에 와서 양재기에다 분유를 풀어 사카린을 넣고 밥 위에 찐다. 식으면 돌 같이 단단하다. 끓여서 마시는 우유보다 왕사탕처럼 입속에서 굴리면 구수한 맛도 나고 오랫동안 먹을 수가 있다. 무엇보다 먹고 나서 배가 아프지 않아서 좋아했다. 그리고 부모님이나 학교에 다니지 않는 동생도 맛볼 수가 있어 인기가 있었다.
간유는 명태, 대구, 상어 물고기의 간장에서 뽑아낸 지방유로 노란색이 나면서 투명하다. 비타민 A·D의 영양제로서 영양장애, 구루병, 골경화증, 야맹증, 빈혈증, 결핵 등에 좋다고 한다. 이쯤 되니 간유는 만병통치약으로 그 당시 아이들 영양 결핍에 꼭 필요한 영양제인 셈이다. 간유는 비릿한 냄새 때문에 먹기를 꺼려 요리조리 핑계를 대다가 결국 선생님에게 꿀밤 한대를 덤으로 맞고 코를 틀어쥐고 한 숟가락씩 받아먹었다.
요즘 아이들은 영양가 있는 음식을 풍족하게 먹는다. 거기다 몸에 좋다는 영양제도 챙겨 먹는다. 주거환경과 위생환경이 좋으니까 키도 크고 피부도 고을뿐만 아니라 못생긴 아이가 없다. 그리고 입는 옷이나 머리 모양이 부모의 취항이나 아이의 개성에 따라 꾸며주어 보기도 좋고 예쁘다. 그 때는 먹는 음식이 부실하고 위생환경이 열악하니까 몰골이 꾀죄죄하다. 입는 옷의 종류나 머리 모양도 단순하다. 대부분 머슴애는 머리를 박박 깎거나 계집애는 단발머리다. 머리를 박박 깎아 놓으면 머리 형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머리가 납작하면 납작 머리, 이마가 튀어나오면 앞짱구, 뒤통수가 튀어나오면 뒤짱구로 별명을 지어 불렀다. 우리는 머리가 앞으로 튀어나오면 앞곰배, 뒤로 튀어나오면 뒷곰배라는 별명을 지어 놀렸다.
아이들 입는 옷이나 머리 모양이 내남없이 비슷하다. 기름기가 없어 푸석하면서 검은 얼굴이지만 눈동자만은 초롱초롱하게 빛이 난다. 부모는 초롱초롱하게 살아있는 눈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자식의 모습과 듬쑥한 행동거지에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싹수 있는 말 한마디에 자식의 앞날에 무한히 펼쳐질 성공을 예견하면서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부모는 빈자소인貧者小人으로 사는 게 팍팍했지만 자식에게 이런 희망의 싹수가 보였으므로 살아가는 이유가 된 시절이었다.
집에 가는 길
봄에는 얼었던 땅이 녹아
뚜렷이 찍힌 발자국이 따라오는 길
뒤처진 발자국 돌아보면
어머니가 기다린다고 앞서가래요
여름에는 강아지풀이 키 자랑하는 길
할아버지가 지고 가던 풀
빗물 고인 길에 한 움큼 떨어지면
바다에 떠 있는 초록 섬이 되어요
가을에는 단풍잎이 한가득히 떨어진 길
바람이 예쁘게 그려놓은 그림에
아기 토끼 엄마 토끼 발자국이 찍혔어요
그림 구경하고 갔나 봐요
겨울에는 드센 바람 심술에 자갈이 드러난 길
하얀 눈이 솜이불을 덮어주었어요
밤에 고라니가 그리다가 만 그림
아침에 까치가 예쁘게 마무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