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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방 스크랩 기차는 다니지 않아도 사람사는 냄새는 여전하네
고향청솔 추천 0 조회 32 12.03.20 12:5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기차는 다니지 않아도 사람사는 냄새는 여전하네

 

전북 군산시 경암동 철길 마을은 빈티지 여행지로 유명한 곳이다.

철길 위를 달리던 기차는 더 이상 다니지 않는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가끔 빗방울 떨어지던 봄날. 고요와 정적이 흐르는 경암동 철길마을을 찾아 녹슨 기찻길을 따라 걸었다.

 

경암동 철길마을을 가로지른 철길은 페이퍼코리아(당시 이름은 북선제지)로 이어져 있다. 해방되기 전 해인 194444일에 옛 군산역에서 군산시 구암로 50 페이퍼코리아까지 2.5Km 구간에 철길이 깔렸다. 철길이 놓이고 화물열차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철길 주변에 하나둘씩 사람사는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가난한 이들에게 안식을 주는 소중한 쉼터인 철길마을 주택들. 철길을 사이에 두고 촘촘하게 들어선 주택은 1970년대 어느 해쯤에서 시간이 멈춰진 채로, 거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처음 열차를 타고 여행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으로 기억된다. 포항에서 군대생활을 하는 형을 면회하기 위해 아버지를 모시고 중앙선 밤 열차를 탔던 때가 처음이었다. 밤길을 달려간 열차는 언덕을 오르고 터널을 지났다. 열차는 터널 안으로 들어서면서 매캐한 연기를 내뿜었다. 달빛 어스름한 시골 풍경이 지나고, 새벽안개에 갇힌 너른 들판을 지났다. 철길이 지나는 도심의 아침 풍경도 보았다. 아련한 기억으로 모두 남아 있다. 

열차를 타고 지나던 철길은 바퀴가 부딪혀 철커덕, 철커덕소리를 냈다. 철길 따라 걷는 지금. 주위는 회색빛 구름에 눌린 채 빗방울만 적막하게 흩뿌릴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철길과 다르게 경암동을 지나는 철길이 주는 느낌이 다르다. 철길마을의 빼곡하게 들어선 집들은 바닷가 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따개비를 닮았다. 철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선다. 철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늘어선 집들이 찌든 삶의 흔적처럼 보인다. 철길과 맞닿은 자투리땅은 차가운 겨울을 이겨 낸 파와 갓, 붉은 상추가 자라고 있다. 철길마을에서는 허투루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철길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들어선 건물은 주택이고, 남쪽으로 늘어선 건물은 살림살이를 넣어둔 창고이다 

 

철길을 따라 시선을 옮겨가다 이방인의 행동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할머니와 시선이 마주쳤다.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여긴 뭣 하러 왔나. 뭘 볼게 있다고...’

 

할머니 말씀에 겸연쩍게 대답한다.

할머님은 평생을 살아온 삶의 보금자리니 볼게 없으시겠지요. 조용히 둘러보고 갈 게요.’

 

예전에는 기차가 지나는 시간이면 철길 위에 널어 둔 고추를 걷어야 했고, 집 밖에 묶어둔 강아지의 목줄을 풀어 집 안에 가둬야 했을 터이다. 할머니의 시선을 피해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근대문화의 보고라는 군산. 열차의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진 경암동 철길마을도 문화유산으로 보존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어느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명교수는 현재 짓고 있는 건물들은 백년 뒤 문화유산으로 남겨 줄 건물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후세에 남겨 줄 문화유산 하나 만들지 못하는 현실이 불행하다. 만들지 못한다면 남은 유산이라도 온전히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

 

경암동 철길마을은 육지가 아니고 바다였다. 일제 강점기에 공장을 짓기 위해 일본인들이 바다를 매립하면서 육지로 변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1년전 에 신문용지를 생산하는 북선제지에 원료를 공급해 주고 생산한 제품을 실어 나르기 위해 철길을 놓여졌다. 해방이 되면서 철길 주변의 황량한 땅은 국유재산으로 관리하게 됐다.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이들이 주인 없는 경암동 철길 부지로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금은 사라진 구군산역과 페이퍼코리아까지 이어지는 2.5키로 미터 구간 중 철길마을을 통과하는 구간은 1.1키로 미터다. 60년을 넘게 달리던 기차는 군산역이 이전하면서 200871일 운행을 멈췄다. 기차가 마을을 지날 때는 시속 10키로 미터의 속도로 달렸고, 기차보다 몇 걸음 앞에서 역무원들은 호루라기를 불고,   붉은 깃발을 흔들면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이제 호루라기 소리는 세월의 흐름에 묻혀 허공으로 날아간지 오래 됐다. 부지런히 고추를 치우고, 빨래를 걷었을 그 때를 상상하며 철길을 걸어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선다. 

문이 열린 창고가 보인다안으로 들여다보니 수돗가에서 방금 설거지한 흔적이 보인다. 창고로 들어가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철길 너머로 두 개의 출입문과 여러 개 화분이 풍경의 전부다 

철길마을은 퇴색해 버린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함석과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창고는 녹슬고 부식되어 너덜거린다. 도색한 지 오래된 집들도 시간이 멈춰진 흔적이다.

벽면을 따라 걸렸던 빨랫줄은 통행금지를 알리듯 철길을 횡단하면서, 집에서 창고로 연결되었다. 철길을 가로막고 만들어진 쉼터도 있다.

화분은 철길을 따라 나란히 놓였다. 경암동 철길마을의 모든 사물이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보란 듯 알린다. 시간이 흘러가 듯 역사도 흐른다. 하지만 철길마을의 시간은 정지된 상태다. 정지된 시간 속으로 계속 걸어간다.  

걷다보니 창고 쪽으로 개집이 보인다. 개 두 마리가 있다. 개들은 사람을 구경하느라 모처럼 즐거운 하루를 보낼 모양이다. 어느새 철길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발길이 멈췄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발길을 되돌린다. 되돌아 걸으니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다.

철길마을은 근대문화 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높다. 번듯한 것만이 유적이고 문화라고 단정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갈 데 없는 민초들이 모여 철길마을을 이루고 살아온 삶도 역사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철길마을의 여정이 끝났다. 마을을 떠날 때도 여전히 고요와 적막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방인의 행동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할머니의 시선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다시 빗방울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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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3.20 19:18

    첫댓글 여행작가 고향청솔님 좋은글 감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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