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김밥은 가난한 날의 우리 가족을 닮았다. 아버지는 김이었다. 김은 잘 부스러지지만 김밥이 될 때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생긴다. 아버지는 대식구를 책임져야 했으니 힘들어도 늘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어머니는 밥이었다. 밥은 고들고들해야 김과 속 재료들이 무르지 않는다. 부족한 수분은 재료들을 품으면서 맞춰졌다. 어머니의 고들고들한 삶은 자식들이 아니었으면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남매는 단무지, 당근, 계란, 시금치였다. 하나하나를 식탁에 올리면 평범한 반찬일 뿐이지만 김과 밥의 품에서 특별해졌다. 우리는 서로 달라서 닭싸움하듯이 자주 투닥거렸다. 단무지는 짜다고, 당근은 혼자만 색이 튄다고, 계란은 누린내 난다고, 시금치는 축축하다고 찡그렸다. 하지만 김밥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자리도 한 뼘 내주는 법을 배웠다.
김밥을 만든다. 평범한 재료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맛이 나는 좋다. 어릴 때 딱 한 번 만든 것이 실력의 전부라서 김밥을 싸는 게 아니라 쩔쩔매고 있다. 결국 둑이 터지듯이 밥과 재료들이 박차고 나온다. 분식점 달인의 능숙한 손길이 부럽다. 형편없는 김밥이 나를 보는 듯하다.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날이면 손이 컸던 어머니는 재료를 푸짐하게 올려놓다보니 어른 팔뚝만한 김밥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면 아버지가 팔을 걷어붙이고 김밥을 말았다. 값싼 김을 쓰다 보니 구멍이 많아서 김밥이 잘 터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김 한 장을 덧대어 김밥을 감쪽같이 살려냈다.
우리 가족은 김밥을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버지가 만든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엄지를 추켜세우면 아버지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김밥이라고 맞장구 쳐주었다. 소풍가서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열 때면 자랑스러웠다. 아버지의 사랑과 정성 덕분에 가난의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고기 김밥을 싸온 친구가 맛 좀 보자며 한 개를 집어갈 때면 뿌듯했다. 그날의 충일함이 녹화되어‘김밥’하면 아버지가,‘아버지’하면 김밥이 생각났다.
그런데 아버지는 김밥만큼 세상과 잘 어울려 말아지지 못할 때도 있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다 마치지 못했고, 특별한 재주도 없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양자로 보내진 상처가 컸던 탓에 운명을 받아들이기까지 부모형제와 하나가 되지 못하고 밖으로만 돌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 '아버지'가 되면서 변했다고 들었다.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아버지는 전국의 장터와 공사장으로 돌았다. 여러 날 만에 새까맣게 그을린 아버지가 돌아오면 우리는 득달같이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아버지 손에 들려있는 과자를 낚아채듯 하였다. 우리가 까무러치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도 하얀 이가 쏟아질 것처럼 웃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품고 온 두둑한 안주머니가 고마웠을 것이다.
어느 해 겨울, 아버지는 납덩이로 주조 해놓은 사람처럼 어두웠다. 장사 밑천은 떨어지고, 막일을 하자니 일거리가 없었다. 아버지가 밥을 채 두 술도 뜨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을 때면 두려웠다. 어머니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날도 많았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이면 등짐장수처럼 구부정하게 나갔다가 저녁이면 돌아왔다. 그리고 한 손에는 늘 국수나 반찬거리들이 들려있었다.
아버지가 무슨 힘으로 저녁거리는 구해온 것일까. 나는 밥을 먹으면서도 줄곧 생각에 빠졌다. 남에게 빌리거나 외상으로 가져온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어린 마음에 김밥이 떠올랐고, 다음 날 아버지를 위해 처음으로 김밥을 말았다. 하지만 김밥으로 아버지의 근심을 덜어줄 수는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은 짧았다. 내가 열여섯 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말아주는 김밥은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김 없는 김밥처럼 단단하지 못하고 잘 풀어졌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김 없이 자식들을 말아서 품어야 했던 어머니의 고생 덕분에 우리 가족은 흩어지지 않고 자랐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두 번째 김밥을 싼다. 김을 아예 두 장 깔고 집터를 다지듯 밥을 꼭꼭 편다. 맛있게 먹으려고 재료를 많이 얹으면 김밥을 완성하기 힘들다. 욕심을 과감하게 덜어내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현명하다. 재료를 올려놓고 내가 도착할 김 끝을 본다. 처음 한 바퀴가 쉽지 않다. 한 바퀴가 제대로 되면 다음 바퀴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사는 일도 멀리 내다보면서 눈앞의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김밥 양끝을 잡으니 가운데가 벌어지면서 당근이 삐죽이 발을 내놓는다. 중간을 눌러줄 손 하나가 아쉽다. 용을 쓰니까 나도 모르게 배를 쑥 내밀며 힘을 보탠다. 재주가 부족할 땐 배짱도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겨우 한 바퀴 돌리니 손에 잡힌 김밥이 버둥거린다. 불필요한 욕망과 불만도 제때 꾹꾹 눌러서 다스리지 않으면 김밥이 풀어져서 다음 길을 갈 수 없기에 꼼짝 못하게 두 손에 힘을 준다.
김밥은 가볍게 슬금슬금 썰어야 뭉개지지 않고 깔끔하다. 생각이 무거우면 사는 일도 뭉그러질 수 있다. 접시에 담으니 평범한 재료가 맛깔나게 변신을 한다. 거친 인생을 지나온 만큼 추억이 풍요로운 것처럼 김밥도 꼬다리에 제일 먼저 손이 간다. 깨를 솔솔 뿌리니 입에 미소가 걸린다.
김밥을 먹으면서 생각한다. 사는 일이 제 몫만큼의 김밥을 잘 마는 일이 아닌가싶다. 김이나 밥이 되어 속 재료를 하나로 품는다면 훌륭한 삶일 것이다. 속 재료가 되어 각양각색의 맛을 수용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도 가치 있다. 김밥을 보니 부끄럽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채로 홀로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 앞가림도 버거운 주제라고 생각했기에 누굴 감싸 안을 마음을 내지 못했다.
김밥을 보면서 각각의 재료들이 혼자일 때는 약하지만 김밥으로 뭉치면 강해지고 맛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도 김밥이 되고 싶다.
첫댓글 김밥은 아버지 등식이 이어져 있다.
아버지께서 끝까지 함께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숨기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가 다시 자신의 문제로 돌아와 있다.
죽하합니다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김밥 이야기 애잔하네요
아버지가 싸주시던 그 김밥이 얼마나 먹고 싶을까요.
가족이 다함께 김밥의 재료들처럼 모여 살던 때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