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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인심, 빼어난 산수”
대관령 넘어 강릉으로 가는 길
고려 명종 때 문신인 김극기가 “높은 산이 푸른 바다 동쪽으로 솟았는데, 만 골짜기의 물이 흘러나와 천 봉우리를 둘렀네”라고 노래했던 대관령. 이곳은 옛길 가운데 보존이 가장 잘된 길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시대 9대로 중 가장 경관이 빼어난 길은 어디였을까? 두말할 나위 없이 서울 동대문(흥인지문)에서 출발해 강원도 평해에 이르는 관동대로다. 관동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고려 성종 때 오늘날의 서울과 경기 일대를 관내도라 했기에, 그 동쪽에 있는 땅이란 뜻으로 생겨났다.
옛날 영동고속도로 휴게소 위쪽에 선자령으로 가는 길과 국사성황당으로 가는 길 2개가 있다. 잘 닦인 길을 오른 지 한참 만에 강릉단오제의 시발점인 대관령 국사성황당에 닿는다. 국사성황당을 지나 백두대간의 고갯마루에서 멀리 강릉시내 너머로 동해바다가 눈이 시리게 푸르다.
강릉 사람들은 강릉 땅이 살기가 좋고 대관령이 하도 험한 고개라서 “강릉에서 나서 대관령을 한 번도 넘지 않고 죽으면 그보다 더 복된 삶은 없다”고 했다는데, 대관령은 해발고도가 832m이고, 고개의 총연장이 13km에 이르며, 고개의 굽이가 99개소나 된다. 얼마쯤 내려갔을까. 횡계와 강릉을 오가던 옛날 고속도로길이 나타나고 대관령 옛길(반정)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그곳에서 700m 쯤 지났을까, 반쟁이 주막을 열었던 관기 이병화의 영세불망비가 서 있다. 대관령 옛길이 이어지는 가맛골 남쪽에 있는 제민원마을은 조선시대 제민원이라는 원이 있어 대관령을 넘는 사람들을 위해 편의를 돌봐주던 곳이다.
느러리에서 귤면동으로 가는 고개는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노루목재이고, 노루목재 아래에 있는 마을이 귤면동이다. 느러리 남쪽에는 망월이 마을이 있는데 옥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형국이라는 옥토망월형의 명당이란다.
평창군 횡계리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면으로 가다가 횡계나들목에서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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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들러보자!
경포대 강릉시 저동·운정동·초당동의 경포호수 북쪽에 위치한 누각으로, 경포대해수욕장과 가까운 곳에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경포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경포대해수욕장을 찾는 사람은 많아도 경포대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보현사 대관령의 동쪽 보현산(만월산) 기슭에 위치한 보현사를 찾아가는 길은 한적하다. 영동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이 절은 신라 말인 신덕왕 2년(914)에 낭원대사가 창건했다. 절의 중심에 자리 잡은 대웅전은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집이고 보현각·삼성각·영산전 등의 건물이 있다.
첫댓글 얼마전 잡지에서 본 도보길인데 좀 멀어서 그렇지 괜찮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차츰 영역을 넓히다 보면 갈 수 있겠죠!!
산행시간보다..버스타고 가는시간이 더 길겟네...ㅎㅎㅎ 언젠간 갈수잇겟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