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萬海) 한용운 (韓龍雲)에 대하여...
| 한용운(韓龍雲)
* 출생 : 1879년 * 사망 : 1944년 * 대표작 :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불교대전』, 『정선강의 채근담』, 계몽 잡지 『유심(惟心)』, 『님의 침묵』,소설로는 『죽음』, 『흑풍(黑風)』(1935, 『조선일보』 연재), 『후회』(1936, 『조선중앙일보』연재하다가 중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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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관은 청주이며 자(字)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萬海)이다.
일제강점기 불교계에 혁신적인 사상을 전하고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던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 자는 정옥,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이며 유년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으나, 1905년 백담사에서 득도한 뒤 수년간 불교활동에 전념했다고 한다. 1918년 불교잡지 <유심>을 창간하고 계몽적 성격의 글을 발표했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일제에 체포되어 3년형을 받았다. 1925년에는 한국 근대시사의 불후의 업적 <님의 침묵>을 펴내어 민족의 현실과 이상을 시적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이후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에서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 님의 침묵 / 한용운의 시집. 1925년 내설악 백담사에서 쓰여져서 1926년 회동서관에서 간행하였고, 1934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재판하였다. |
2. 독립사상과 민족운동
한용운의 비타협적인 반일 독립운동 역시 불교혁신사상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대표적인 민족운동으로는 1919년 3·1운동의 참여를 들 수 있다. 그는 백용성(白龍城)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여 3·1독립선언의 민족대표로 참여한 다음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 변호사는 물론 사식과 보석을 거부할 것을 결의하고 일본 검사의 신문에 대한 답변으로 〈조선독립이유서〉를 집필하는 등 비타협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옥중에서 작성한 〈조선독립이유서〉는 상하이[上海]에서 발간되는 〈독립신문〉 1919년 11월 4일자 부록에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며, 그는 이 글을 통해 제국주의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이해와 민족의 독립 근거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제시했다.
그는 다른 모든 사상에 앞서 인간의 자유와 평화가 우선함을,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서 민족자존이 요구됨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민족의식이 편협한 국가주의가 아니라 민족간이나 국가간의 자유와 평등에 입각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자주독립의 조건이 독립할 만한 자존의 기운과 정신적 준비에 있음을 천명하여 물질문명이 부족하다는 점을 조선 식민지 지배의 근거로 삼았던 일제의 허구적 논리를 정확히 비판했다.
이는 준비론이나 실력양성론, 민족개조론 등 결국 일본의 식민정책에 부합한 개량론과는 질을 달리하는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으로 평가된다. 좌·우파 간의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에 적극 참여한 것도 그의 대표적인 민족독립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이전부터 우파의 민족운동과 좌파의 사회운동이 분열되어서는 안 됨을 역설한 바 있으므로 신간회에 관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후에 신간회 해소론이 대두했을 때는 그것이 올바르지 않음을 주장하고 신간회의 존속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가 하면 1929년 광주항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그것을 민족적·민중적 운동으로 확산시키고자 민중대회를 계획했으나 일본경찰에 의해 무산되었다. 또한 그는 여성해방운동과 농민·노동 운동 등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불교의 자주화운동에 앞장선 것도 민족독립운동의 하나로 보인다.
3. 문학세계
한용운이 이룩한 문학적 업적도 불교개혁사상이나 민족독립사상, 그리고 그 실천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문학활동은 시에서 출발하여 시조와 한시 및 〈죽음〉·〈흑풍〉·〈후회〉·〈박명〉 등의 장편소설로까지 확산되었으나, 가장 의미 있는 성과를 낳은 것은 역시 <님의 침묵>으로 대표되는 시 장르이다. 1925년 백담사에서 탈고하여 이듬해 안동서관에서 발행한 〈님의 침묵〉은 당시 한국문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문학작품보다도 더 절실하게 민족의 현실과 이상,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요구되는 주체적 자세에 대해 노래했으며, 더욱이 그것을 풍부한 시적 이미지로 아름답게 형상화해 수준 높은 민족문학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 시집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님'은 연인·조국·부처 등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며 그에 따라 '님의 침묵'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민족적 상황을 가장 압축적으로 상징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시 상황을 시적 주체인 '나'가 님과 이별하여 님이 부재하고 침묵하는 시대로 규정하면서도, 님이 부재한 상황을 통해 '나'가 진정으로 님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는 변증법적인 진리를 드러내고, 새로이 '나'가 님과 합일될 수 있다는 낙관적 인식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님과 새로이 만나기 위해서는 님에 대한 철저한 복종이 요구되는데, 그 복종을 통해서 비로소 '나'는 자유로워진다는 '복종과 자유의 변증법'을 노래한 것도 역사의 필연성의 인식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는 변증법적 진리와 통한다. 이러한 시적 인식을 통해 그는 식민지하에 있는 조국의 운명과 독립의 필연성,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실천 속에서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진리를 탁월하게 형상화할 수 있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의 시는 은유와 역설의 자유로운 구사롤 보여주며, 정형적인 틀을 완전히 벗어난 산문적 개방 속에서도 내재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근대 자유시의 완성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부분 1930년대에 창작된 그의 소설은 신소설적인 계몽성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여 작품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는 그가 근대소설의 특수성을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 가운데 소설을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생각한 데서 연유한다.
즉 일제 말기로 접어들면서 더이상 직접적으로 항일독립사상을 펼칠 수 없게 되자 소설을 창작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청나라를 무대로 한 〈흑풍〉에서도 일제에 대한 투쟁정신을 은근히 보여주고 여성해방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삽입하여 반봉건 정신의 고취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1973년 신구문화사에서 〈한용운전집〉 전6권이 간행되었다.
*** 님의 침묵을 감상하며
님의 침묵 시/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 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 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 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 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 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 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 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이 작품은] 불교의 역설적 진리를 바탕으로 하여 님과이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그것을 새로운 만남의 희망으로 전환시켜 노래하고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낭만적, 상징적, 의지적, 역설적 *제재 : 임과의 이별 *주제 :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 *특징 ① 역설적 표현을 통해 주제를 부각함. ② 불교적 비유와 고도의 상징이 돋보임. ③ 여성적 어조와 경어체를 사용함. -출전 : “님의 침묵”(1926)
이 시는 절망적인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그것을 새로운 만남에 대한 희망으로 역전시킨 구조에서 감동의 요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역전의 구조는 ‘만남은 헤어짐을, 헤어짐은 만남을 전제한다.’라는 불교의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1~6행에는 임과의 이별 상황이 제시되어 있다. 임이 없는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허무와 좌절감을 영탄적 어조와 반복, 대조적 이미지를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사랑의 약속은 ‘황금으로 만든 꽃’과 같이 굳고 아름다웠지만, 이제 그 약속은 먼지와 같이 덧없는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첫 키스는 내 앞날의 인생을 온통 임을 향해 가도록 만들어 놓았건만, 이제 그 모든 것이 추억이 되고 말았다고 함으로써 이별의 슬픔을 드러내고 있다. 7~8행에서는 지금까지 보인 이별의 슬픔에 절망하지 않고 그것을 새로운 만남의 희망으로 역전시킨다. 이는 만남은 곧 헤어짐이요, 헤어짐은 곧 만남이라는 불교의 역설적 진리의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9~10행에서 현실적으로는 임이 떠났지만, 새로운 만남의 의지와 확신이 화자의 마음 속에 있는 한 임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보인다. ‘갔지만 반드시 다시 만나리라는 확신이 있는 님’이라면, 내 주위에 머물면서 잠시 나와 대화를 멈춘 상태에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님의 침묵’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님’의 상징적 의미에 따른 이 시의 해석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 서문에서, ‘기룬(찬양하는) 것은 다 님이다.’ 라고 했다. 따라서, 한용운이 생애를 통해 ‘기루었던’, ‘부처님’이나 ‘불교의 진리’, ‘조국’, ‘어느 여인’ 등으로 그의 임을 추측할 수 있으며, 포괄적 의미에서는 ‘절대자’라고 할 수도 있다. 특히 그가 일제에 끝까지 저항한 의지적 독립 지사임을 생각하면, 그것이 ‘조국’일 가능성도 높다. *부처(종교적인 절대자) : 시인이 승려였음을 고려하여 ‘님’이 부처를 의미한다고 하면, 이 시는 종교적인 깨달음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노래한 시로 해석할 수 있다. *조국 : 시인이 독립운동가였음을 고려하여 ‘님’이 조국을 의미한다고 하면, 이 시는 조국 광복에 대한 의지와 신념을 노래한 시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랑하는 여인 :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시인을 생각하면, ‘님’은 ‘사랑하는 여인’으로, 이 시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연가(戀歌)로 해석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