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주께서는 우리에게 동족 어린이들을 맡기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K 탁아소, W유치원, T유치원, J탁아유치원 네 마을 어린이들을 우리에게 섬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노새로 드나들기 15년이 되었다. 쉽지 않은 세월이 줄기차게 흘러갔다. 그리고 노새의 나이도 70이 되었다. 동족어린이 사랑 사역을 이어받아 함께 경주할 다음 세대를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1. 어떤 사람이 동족어린이사랑 사역을 이어 달리기에 가장 적합할까?
1] 신앙인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섬기러 오신 주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시는 주님을 아는 사람!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람! 이러한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 동족어린이사랑 사역을 이어갔으면 싶다.
2] 고려인
1867년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시베리아(연해주)로 이주해온 코레안들을 고려인이라 부른다. 그들은 주로 함경도로부터 두만강을 건너 와서 그곳에 정착한 후, 3-4대가 지나고 있다. 이 디아스포라 고려인 후세들은 북한과 거리상으로나 사상적으로 가깝게 살고 있다. 이들보다 일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이 있을까? 더구나 많은 북의 노무자들이 러시아에 찾아와 벌목공 등으로 일하고 있다. 러시아에 정착한 고려인 후세들이 강건너에 사는 북한 어린이들의 필요를 알고 섬겼으면 한다.
3] 모국어 할 수 있는 자
아쉬운 것은 고려인들의 모국어 상실이다. 디아스포라 고려인들은 러시아에 정착하면서 점차 현지화되어 갔다. 그들의 언어는 세대를 지나며 러시아어로 대체되었다. 3,4대를 지나며 모국어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나이 든 사람들 중에서 그것도 부분적으로 한국어를 구사한다.
현지 러시아인들 가운데는 한류와 한국 취업 러쉬로 한국어 열풍이 존재한다. 한국어 배우는 언어학원에서 배우기도 하고, 대학에서 한국어과를 졸업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고려인 후세들 중에서는 모국어에 관심 가진 자가 소수다.
초기 시베리아(연해주)로 이주한 조상들은 현지인들의 차별과 가난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일제의 반민족적 찬탈, 러시아의 혁명,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등 고비를 넘을 때마다 고려인들은 생존 자체가 위태했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민족적 정체성을 잃어갔다. 그 중에서 모국어의 상실은 무엇보다 심각했다.
동족어린이 사랑을 실천하려는 고려인 일꾼들에게 모국어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모국어를 교육하는 이유다.
2. 양육방법
1] 교회 생활을 하는 신앙인
2] 고려인 청소년 12명
3] 정기적 한글 교육
4] 장학금 지급
5] 장학금으로 주변 필요 속에 친구들에게 사랑 실천하기
6] 사랑 실천한 사례 나누기
3. 고려인 선교 역사 발굴과 교육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 ."(계2:5)
1] 선교전시관 조성
러시아 시베리아(연해주)에는 현재 다수의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0여년 전, 고려인에게 심겨졌던 시베리아(연해주) 선교 역사와 단절되어 있다. 1910년대, 시베리아에는 10만 고려인들이 이주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선교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수많은 디아스포라 교회가 그들 중에 세워져 있었다. 1923년 사회주의 혁명이 휩쓸기 전 시베리아지역 기독교인은 만 명이 넘었다. 그러나 러시아 공산화 혁명 과정 속에서 교회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6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러시아에 봄이 왔다. 1990년대! 이 시베리아(연해주)지역에는 다시 한국으로부터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0년 넘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 묵은 밭은 기경되고 있다.
2] 고려인 선교 역사 교육
지난 100여년 동안의 고려인 선교 역사를 발굴하여 전시하고 교육하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어디서 온 것을 알고, 무엇을 위해서 있어야 하는가를 알고 전할 일이다.
동족어린이들을 사랑하고 민족을 회복하는 작은 모세를 기다리고 기도하는 것이 작은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