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차별 사이, 세습된 슬픈 신분의 담 - ＜노예 12년＞ - 오경옥

[가을이야기]

편견과 차별 사이, 세습된 슬픈 신분의 담 - <노예 12년>

- 무엇이 인간을 신분으로 구분하고 계층화 하여 탄압하는가 -

오경옥

1. 기다리는 방법과 기대되는 이야기 사이

모임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TV OCN을 켰다. 마침 이제 막 시작하는 영화 제목이 채널을 고정시키게 했다. <노예 12년>! 이 짧은 제목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을지 가슴이 떨려왔다.

미국의 스티븐 맥퀸스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솔로몬 노섭의 자서전 『노예 12년』을 원작으로 노예 수입이 금지 되었던 1840년대 한 음악가가 타의에 강요된 노예로서의 삶을 통해 인권이 유린된 불합리한 미국의 노예제도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실화이다.

이 영화 속에는 노예로서 겪어야 했던 처절한 삶의 실상뿐만 아니라 남북전쟁의 근간이 되었던 미국의 노예제도와 이로 인한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문이 발표되기 전까지의 미국의 시대상황이 어떠했는지 공시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명화이다.

2. 편견과 차별 사이, 세습된 슬픈 신분의 담

사실 선사시대 이후부터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재산이나 가축처럼 취급하는 노예제도가 있었다. 미국에서도 독립 혁명 직후 노예 해방 법령을 적용시킨 북부와 다르게 아브라함 링컨이 1850년에 노예 해방을 선언하고 설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인력이 많이 필요했던 남부에서는 이에 반대하여 독립을 선언하였고 결국 남북전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영화 <노예 12년>은 미국 북부 자유주에 속해있던 뉴욕 주 사라토가에서 흑인이었지만 자유인으로 태어난 바이올린 연주가 솔로몬 노섭이 가족들과 즐거운 삶을 누리며 살다 1841년, 브라운과 해밀턴의 공연제안을 받고 3주 동안 워싱턴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서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노예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술에 취해 잠에서 깬 솔로몬의 손목과 발목에는 굵은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고 쇠창살이 쳐진 지하 감옥에 갇혀 알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네 놈은 조지아에서 도망친 노예”라며 몽둥이세례를 받게 된다. 즉, 악몽처럼 납치 감금되어 옷과 신발, 가방,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심지어 이름과 성, 태어난 고향마저도 뒤바뀐 채,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의 노예수용소로 보내진다. 그곳에서도 이유를 막론하고 질문이나 말대꾸, 반항이나 저항, 혹시라도 글을 알고 있다는 것(자신의 정체)을 나타내면 가차 없이 모진 폭력과 고문, 언제 총살을 당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순종과 복종만을 필요로 하는 백인 주인을 기다리며, 쇠사슬에 묶인 도망친 노예로 상품처럼, 가축처럼 노예시장의 가판대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많은 흑인들을 보게 되고 “제 감정은 돈에 따라 움직인다”며 가축을 팔 듯 두 아이의 엄마를 자식들과 뿔뿔이 흩어 팔아넘기는 노예매매상인의 파렴치함과 몰인정함을 목도하면서 어쩔 수 없이 악몽 같은 현실을 인식하고 수용하게 된다.

솔로몬은 ‘플랫’이라는 새 이름으로 하루종일 고된 일과에 시달렸지만 저녁에는 백인들의 파티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해야 했다. 그나마 바이올린을 선물로 주는 인간적인 백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첫 번째 주인의 형편이 어렵게 되어 다른 곳으로 팔려가게 된다. 두 번째 주인 에드윈 엡스(마이클 패스벤더)는 순간의 상황에 인내하지 못하고 돌발적인 행동과 충동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다혈질에 감정의 기복이 심한 술주정뱅이로 혹독하게 노예를 다룬 것으로 악명이 높은 자이다. 그는 노예들 중에서도 날마다 하루 500파운드 넘게 목화를 수확해내는 팻시(루피타 니옹)라는 여자 노예를 일방적으로 사랑한다며 그의 아내인 메리 엡스(사라 폴슨)로부터 질투와 시기를 받게 하여 팻시를 매번 곤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즉 이들 부부의 호화로운 저택에서의 생활과 노예들에게 대하는 거만한 태도와 일상속의 명령적인 언어들을 복종해야 하는 노예로서의 비참한 삶이 어떠한지 그 전형을 노예주와 대칭적인 구조로 보여준다. 노예들은 날마다 작열하는 목화밭에서 목화송이를 수확해야 하기에 그 노동의 피로를 잊고 서글픈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노동요’를 부르며 달랜다. 마치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이후부터 농어민들과 아녀자들이 즐겨 불렀던 그런 종류의 노동요를…….

예술가였기에 노동에 익숙하지 않는 플랫은 노예의 일일 평균 작업량인 200파운드에도 못 미친다며 수시로 온갖 채찍과 수모를 당하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자신을 괴롭히는 백인 감시관을 폭행했다며 뜨거운 뙤약볕 아래 온종일 밧줄에 목이 걸린 채 발만 겨우 닿는 높이의 나무에 매달려 죽음 직전까지 이른다. 그 잔혹한 장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인 모습 같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이 영화에는 다른 흑인 여자 노예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팻시 역시 남자 주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하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으니 플랫에게 죽여달라고 하기도 하고 더 기가 막힌 것은 안식일이어서 씻으려고 이웃 부인에게 비누를 빌리러 간 팻시를 탈출을 시도했다며 독이 오른 남자주인이 나체로 나무에 묶어 살점이 뜯겨져 나가도록 노예인 플랫에게 채찍질 하게 하는 장면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었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보고 찬송과 기도를 드리는 백인들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편견과 차별을 하고 똑 같은 인간을 노예로 부리고, 인권을 탄압하며, 자신들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폭력을 행사하고, 불순종과 탈출을 시도했다며 총살이나 교수(絞首)를 할 수 있는 백인들의 흑인 노예에 대한 인종차별!

솔로몬 노섭은 태어날 때부터 노예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납치·감금되어 팔려가 12년간의 슬픈 신분의 담에 갇혀 노예로서 생존하기 위해 혹독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는 불행 중 다행히도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캐나다인을 만나게 되면서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3. 무엇이 인간을 신분으로 구분하고 계층화 하여 탄압 하는가

마틴 루터 킹은 “사람은 품성으로 판단되어야지 피부색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한 이래 누구나 똑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신분으로 구분하고 계층화하여 탄압할 수 있단 말인가.

구석기 시대 이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잉여자본은 인간을 신분으로 구분하게 만들었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계층화 하는 모멘트가 되었다. 그런 것들이 시대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시장이 형성되고 많이 가진 자의 자본이 힘과 합해져서 권력과 명예를 가져 주종관계에 노예나 노비를 만들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진화되고 변질되어 이름과 형태만 바뀐 노사 지배구조 속에 갑과 을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는 백인들의 인종차별로 흑인노예에 대한 역사와 그 실상을 잘 알 수 있는 유명한 소설로 쿤타킨데의 후예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백인들의 핍박과 억압 속에 차별을 받고 살아왔는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영화 <헬프>나<굿바이 만델라>,<말콤 X>, 위인전『마틴 루터 킹』이나『간디』등에서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인권탄압에 대한 해방과 그 항거하는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지적장애인을 인신매매 하거나 가출청소년이나 카드나 사채 빚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볼모로 하여 ‘염전노예’ 나 ‘축사 노예’, ‘농가 노예’ 등 현대판 노예처럼 사회적 약자를 무임금으로 부려온 사람들의 부조리함을 TV나 인터넷뉴스를 통해 왕왕 보게 된다. 심지어는 ‘노예계약’이나 ‘열정페이’ ,‘앵벌이' 같은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이니 현대 우리 사회의 사각지역에서도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사실 노예는 서양의 고대 그리스 이전과 동양의 수메르 및 고대 이집트와 아시아 전역의 고대 문명과 인도의 카스트 제도 등에서도 발견되기도 한다. 성경에서도 히브리인들이 400년간 노예생활을 해서 모세를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출애굽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 한국사에서도 고조선의 8조법 중 ‘도둑질한 자는 종으로 삼는다’는 구절이 있으며, 삼국 시대에도 왕족과 귀족, 평민과 천민의 구분이 명확했고, 조선 시대에도 양반, 중인, 평민, 천민으로 신분이 구분되었다. 이러한 신분제는 갑오경장 때에 폐지되었다고 하나 실제 현대에서도 학벌과 직업과 경제력으로 형성된 권력과 명예와 지위로 인한 서열적 존재의 신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는 없다. 흑인이나 선천적인 질병과 장애, 혹은 추한 외모나 가난한 부모를 가진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도 없다.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인적, 물적 자원이 글로벌 시대에 맞게 네트워크화 되고 있는 요즘, 민족과 종교와 문화와 전통이 다르고 신념과 이상, 그리고 인종과 외모 등 선천적이고 환경적인 차이를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행해지는 편견과 차별에 대해 이 영화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본다.

이것은 곧 자유를 찾은 솔로몬 노섭이 악몽처럼 지옥과 같았던 노예생활의 기억을 더듬어『노예 12년』을 집필하게 된 이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출간된 이 책이 18개월 만에 2만 7천부가 판매될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도 백인들의 인권탄압의 실상과 노예제도의 불합리성에 인도주의적 가치와 그 정신을 회복해야 함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았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또한 『노예 12년』이 영화로까지 제작된 것도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당시 미국사회뿐만 아니라 현 시대에도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그 슬픈 인종과 신분의 담을 넘어 타인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여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스티브 맥퀸 감독이 솔로몬 노섭의 12년간의 노예로서의 삶을 통해 영화로 보여주고자 하는 제작 동기와 그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솔로몬 노섭의 부인이 12년 동안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도했던 것처럼 나도 모임에 나간 남편의 안전한 귀가를 기도했다.

전북문단, 제8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