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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꿈으로 남은 청춘의 초상, 그 부끄러움에 대하여
오경옥
1. 시대가 낳은 비운의 운명공동체
8.15광복절이어서인지 TV에서 영화 <동주>(2016)를 했다. 처음부터 시청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쉬웠지만 윤동주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한 명이어서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강하늘, 박정민 주연에 이준익 감독이 제작한 영화로 감독은 <왕의 남자>와 <사도> 와 같은 사극뿐만 아니라 <라디오스타>나 <님은 먼 곳에> 같은 현대극에서도 강한 메시지를 담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감독이 이 영화를 흑백영화로 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시인이 꿈이었던 윤동주가 시집 한번 제대로 출간해보지 못하고 꽃다운 청춘의 나이로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암울한 시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기 위한 연출법으로 해석된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한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소학교부터 일본 유학생활까지 같이 보낸 친구이자 고종사촌지간이다. 그들이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왔던 삶처럼 죽음도 같은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비슷한 시기에 죽었을 정도로 그들은 시대가 낳은 비운의 공동체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윤동주는 우리나라의 말과 글과 이름조차 쓸 수 없는 암울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시인을 꿈꾸었고, 송몽규는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어 시인이 되었지만 그런 비극의 시대를 바꾸어보려고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다녔던 독립투사였을 정도로 서로의 성향은 몹시 달랐다.
윤동주 하면‘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서시」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윤동주는 “부끄러움의 시인”으로 불려지곤 한다. 그만큼 윤동주가 자선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를 준비하면서 서문으로 썼던 이「서시」는 윤동주가 동시대적으로나 개인사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인생의 가치 이념과 철학이 녹녹히 배어 있으며 그것들을 마음대로 펼쳐볼 수 없을 때 느껴지는 생의 고뇌와 번민이 이 한 편의 짧은 시 속에 잘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2. 미완의 꿈으로 남은 청춘의 초상, 그 부끄러움
『윤동주 평전』을 쓴 송몽규의 조카인 소설가이면서 역사학자인 송우혜 선생은 ‘부끄럼이란 것은 인간이 지닌 일상적인 정서라기보다는 인간의 실존 그 자체에 관한 성찰의 양식’이며, ‘부끄럼이란 것은 모든 불완전한 존재들이 그들의 불완전함을 슬퍼하는 참회의 방식에 다름 아니’며 ‘그렇게 마주 서 본 경험이 없는 한 이토록 가슴을 치는 절창은 솟아날 수 없다’라고 했다.
윤동주 시인이 평양 숭실중학교에서 보낸 칠 개월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열여덟 살 사춘기 소년 시절로 정서적으로 성숙해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역사적으로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지배를 받는 입장에서 늘 경계의식을 갖고 눈치를 보고 긴장해 있어야 했으며, 개인적으로도 낯선 타지에서의 생활과 객지에서 느껴지는 이방인 같은 외로움과 편입시험에서의 좌절을 통해 심리적으로도 많이 위축되어 혼란과 불안이 팽배해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 그 역사적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총부리와 칼부림 앞에서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죽고 변절했던가. 그 가슴 아픈 울분을 가득 안고 어찌 하늘을 우러러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 나라와 민족과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 그리고 자유롭게 꿈을 펼치며 쓰고 싶은 시를 생각을 하며 어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루시 말로리는‘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것은 선한 감정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것은 더 한층 아름다운 감정이다’라고 했다. 탈무드에도‘부끄러움이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랑거리의 하나이다. 남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사람과 자기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거리가 있’으며,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여간해서 죄를 범하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다.
윤동주 시인은 자기 자신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암울한 시대에 식민지의 아들로 태어나 지식인으로 책상 앞에서 시를 쓰고 예수를 믿으며 살고 싶은 소박한 생각에 부끄러워했을 것이고, 사촌이기도 하지만 친구인 송몽규처럼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서 불철주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애국심 앞에서 열등감을 느끼며 부끄러워했을 것이며, 일제에 대항하며 비장하게 떠나는 또래의 학우들과 아무런 죄 없이 무참하게 죽어가는 민족의 동포들 앞에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져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국과 민족 앞에 그리고 시와 자기 자신의 한 가닥 남은 자유의지의 양심 앞에서나마 부끄러움 없이 남기 위해 서슬 퍼런 일본인들의 총칼의 위협에도 끝까지 친일을 하지 않고 결연한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순결한 의지를 보여준 몇 안 되는 지식인이었다.
그의 그런 부끄러움의 정서가「서시」외에도 여러 곳에서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씌여진 시」의 일부 –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중략>/ 내일이나 모레나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쓰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하고 -「참회록」의 일부 -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제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별 헤는 밤」의 일부 -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시인이 되지 못했고, 조국의 독립마저 보지 못했으며, 스물여덟 살이라는 젊은 청춘으로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한 타국 땅의 차가운 감옥에서 생체실험으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가엾은 청년, 현실적인 삶이 녹녹치가 않은데 시가 너무도 쉽게 써져 그것마저 부끄러웠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 창씨개명을 강요해서 일본 유학길에 올랐는데 그 유학한 연희전문학교에서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을 해야만 했던 윤동주! 어느 왕조의 유물처럼 오래된 역사 앞에 부끄러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참회의 마음을 풀어놓고 있다. 그래서 밤을 새워 우는 벌레처럼 그 부끄러운 이름 앞에서 한없이 슬퍼하며 울고 싶었던 것이리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상대하는 대상자가 인권을 탄압하고 폭력과 권력을 행사하는 지배자일 경우, 그 거대한 실체로부터 강한 억압과 감시와 통제 속에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되고 심리사회적 관계에서도 안으로 위축되어 낮은 자존감과 우울한 마음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우리의 말과 글도 사용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마저 사용하지 못하거나 호명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이루고자 하는 꿈과 소망과 창의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생산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자유롭게 먹지도 못하고 죄인 아닌 죄인으로 원형감옥 같은 삶속에서, 강한 통제와 검열을 받으며 어떻게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며 자유의지의 시를 쓸 수 있었겠는가.
더욱이 한집에서 자란 사촌이면서 친구인 몽규가 시인이 꿈이었던 동주보다 먼저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그것을 옆에서 지켜본 동주는 얼마나 열등감과 절망감을 느끼며 갈등과 번민에 휩싸였을까.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고도 시 쓰기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죄의식과 내면화 된 수치심에 얼마나 밤하늘을 우러르며 회의감과 고뇌에 찬 밤을 보냈을까. 오죽했으면 「십자가」라는 시에서“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든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어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라고 뼈에 저린 아픔과 슬픔과 무력감과 좌절을 시로 옮겼을까.
그만큼 영화 <동주>는 윤동주와 송몽규를 중심으로 그들의 현실과 이상, 꿈과 소망, 삶과 죽음,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펼쳐지는 과정과 그 활약상을 닮은 듯 서로 다른 성향까지 시대의 아픔과 절망과 못다 이룬 미완의 꿈과 청춘의 초상이 애틋한 한 편의 서정적인 시처럼 담담한 흑백화면 속 긴 울림과 함께 마음에 여백을 남긴 좋은 영화였다.
2018. 청사초롱 제 29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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