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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사랑
오경옥
연말이다. 따뜻한 것들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과 모사회복지단체가 기부금을 횡령하여 호화로운 생활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사건 때문에 기부문화가 위축되고 있는 요즘, 전주 노송동에는 18년째(2017년 기준) '얼굴 없는 천사'가 소외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수천만 원을 몰래 맡겨놓고 갔다는 훈훈한 소식이 전해져 감동적이다. 그 합한 금액이 무려 5억 5천만 원이 넘는다고 하니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정도의 금액을 기부할 정도이면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성경에는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힘들다’고 하지 않던가. ‘부란 바닷물과 비슷하여 마시면 마실수록 목구멍에 갈증이 오는 것이다’라고 쇼펜하우어도 말했다. 그만큼 99개 가진 사람은 1개 가지고 있는 것까지도 빼앗으려고 할 정도로 부자일수록 나누고 베푼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부란 분뇨와 같아서 그것이 축적되면 악취를 내지만 그것이 산포되면 땅을 비옥하게 한’다고 말했다. 우리 돈으로 약 38조 원 정도를 사회에 기부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주이면서 세계갑부 순위 1위~2위이고 기부재단 이사장인 빌 게이츠나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린 주식투자의 대가인 워런 버핏도 사후에 자신의 세 자녀에게는 300만 달러만 남기고 나머지 전 재산 470억 달러(약 60조원)를 자선재단에 기부한다고 선언했으며, 이미 상당수의 재산을 빌 게이츠가 설립한 게이츠 재단 등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외부 단체에 지속적으로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면세 체인사업체 듀티프리쇼퍼스(DFS)의 공동창업자인 척 피니는 25년간 약 2,900회나 기부했으며, 그 금액이 75억 달러(8조 213억원)이고 개인자산 대비 기부율 99%나 된다고 한다.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도 상속세 탈루 의혹이라는 논란이 있지만 딸의 출산과 동시에 자신의 페이스북 지분의 99%(당시 우리 돈으로 약 52조원)를 기부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록펠러가 ‘우리 시대에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에서 ‘위대한 기부자’로 제 탄생할 무렵,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도 ‘기부왕’으로 거듭났는데 그때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평소 소신대로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했고, 은퇴 후에는 자선 사업에 헌신했다. 그 외 고든 무어나 조지 소로스, 엘리 브로드, 월튼 가문, 알프레드 만, 허버트 샌들러, 테드 터너, 마이클 델 등도 2006년 기준 10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을 정도로 미국의 연간 자선금은 평균 2천억 달러로 우리 돈 240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이 전 재산 2,000억 원을 기부했으며, 가수 김장훈도 기부방법으로 논란이 된 적 있지만 지금까지 200억 정도를 기부 했고, 가수 션·정혜영 부부는 일상생활 속에서 늘 나눔과 기부와 봉사를 실천하며 가수가 아닌 사회복지사로 알려질 정도로 현재까지 45억 원 넘게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선행을 생각해보면 박제가의 말처럼 재물은 우물과 같을지도 모른다. 퍼 쓸수록 그들의 선행과 기부와 봉사는 자꾸 가득차고 넘친다. 그들은 사실 전셋집에 살면서도 100명의 후원으로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900명이 넘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으며, 매달 3,000여만 원이 후원금으로 나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얼굴 없는 천사'로 알려진 이남림 씨도 어렸을 적 너무도 가난하여 야학으로 공부를 했고 18살 때부터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볼펜과 만년필장사를 시작으로 여러 장사를 해서 노후에 살려고 1984년 용인 상현동과 수원 이의동에 땅 2,500평을 샀었는데 용인 상현동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건설업체에 1,800평을 팔아 땅값보상비로 받은 30억 원을 망설임 없이 불우이웃돕기 프로그램인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기부했다. 그런데 일 년 후 이번에는 수원동 이의동에 광교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땅값 보상비로 40억 원을 받게 되어 세금과 기타비용을 제외하고 30억 원을 다시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기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남림 씨는 그 전에도 태풍 루사와 매미로 큰 피해를 입은 수재민을 도와달라며 각각 1억 원씩 기부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했다. 그 외에도 파지 주워 모은 돈 1억을 대학교에 기부한 할머니의 일화나 평생 떡볶이나 새우젓을 팔아 모은 돈을 돈이 없어 못 배우는 설움이 없게 해달라며 학교에 기부한 사람도 있고 남몰래 수억 원을 구세군 모금함에 넣는 기업인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사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며 산 사람들이 많았다. 조선후기 때 가난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임상옥은 조선의 인삼 독점권을 따내 당대의 거부로 살면서도 죽을 때까지 빈민구제와 시(詩)를 쓰며 여생을 보냈고, 김만덕 역시 제주의 빈민들을 구제했으며, 일제 강점기 때 평양의 백선행도 기부왕으로 소문이 났다. 또한 경주 최준은 영남대학 전신인 청구대학에 많은 토지를 기부했고,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유일한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원칙과 정직으로 윤리경영을 실천한 존경받는 기업인이었다.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사장직을 물려주었고 딸의 학자금으로 쓰일 1만 불을 제외한 전 재산을 교육사업에 기부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인이나 정치인 및 유명 연예인들도 나라에 재해나 재난 사고 시 많은 기부금을 후원하는 경우를 왕왕 본다.
특히나 글로벌과 네트워크 시대인 요즘은 기업이나 개인 모두 자신들의 선한 봉사나 기부 및 나눔을 실천하는 일을 할 때 인증 샷이라도 찍듯 그런 사진과 함께 자신의 카카오톡이나 카카오스토리 및 밴드, 블로그, 카페, SNS 등에도 포스팅 하여 자신들의 선행과 후원내역이 신문과 방송 및 인터넷에 알려지길 원하고 또한 그 선한 이미지전환과 회복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
굳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을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좀 더 나은 미래와 행복한 삶을 위해 나의 가정을 비롯하여 친구나 지인 및 이웃과 직장 동료와 사회에 크고 작은 단체와 기업과 국가와의 지속적인 관심과 대화를 통해 서로 돕고 나누고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저출산 고령화와 조선업과 자동차 생산업의 폐쇄와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최악의 고용과 실업률로 부익부빈익빈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및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다니는 안정적인 직장인은 갈수록 생활이 나아지고 있지만 소상공인이나 자영업 및 비정규직과 계약직의 단기 직장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생활은 갈수록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칸트의 말처럼 재물은 생활을 위한 방편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사물의 진가는 그것을 지닐 때보다 사용할 때 제대로 발휘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이 칭찬하는 세 가지 일이 있는데 그것은 곧 가난한 사람이 물건을 주었어도 그것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일과 부자가 비밀히 자기 수입의 10%를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사람, 그리고 도시에 살고 있는 독신자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가하면 탈무드에도 이런 말이 있다. 자선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풍부한 부자일지라도 맛있는 요리가 즐비한 식탁에 소금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이다.
‘남몰래 하는 선행은 땅 속을 흐르며 대지를 푸르게 가꾸어 주는 지하수 줄기와 같은 것’이라고 토머스 칼라일은 말했다. 채근담에도 ‘착한 일을 하고 이익을 보지 않음은 풀 속에 난 동과와 같으니 모르는 가운데 절로 자란다’라는 말이 있다.
주베르의 『명상록』에는 ‘가난한 사람은 덕으로, 부자는 선으로 이름을 떨쳐라.’라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받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름대로 따뜻하고 선한 말과 행동과 봉사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면 좋을 것이다. 선은 또 다른 복을 부른다고 하지 않던가. 비록 기업이나 연예인들의 이미지 전환과 회복일지라도 많이 가진 자의 기부와 나눔과 베품과 봉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는 충분히 따뜻하고 값진 것이며, 삶에 소중한 활력소가 되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사람은 지갑이 텅 비었을 때 즉 가난해졌을 때 가장 상처 받기 쉽고 예민해지기 쉬우며 위축되는 것처럼 돈은 어떻게 쓰이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듯 선하게 쓰여져야 한다.
특히나 이런 익명의 사랑을 실천에 옮기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아진다면 우리들의 마음이 얼마나 행복하며 아름다운 사회가 되겠는가.
전주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는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처럼 남에게 알려지기를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선행을 하고 있다. 오로지 묵묵히 따뜻하고 선한 일을 잊지 않으면서 드러내어 표현하지도 않고 18년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익명의 사랑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물질적인 재물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며 보고 배워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9. 전북문단 제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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