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좀'(עָשׁ 애쉬, moth)이나 '썩이는 것'(רָקָב 라카브, rottenness, decay, 부패, 썩음)은 모두 처음엔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결국 완전히 없어집니다. 즉 좀이나 썩이는 것 같다는 말은 완전한 멸망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말을 따르는 자들(인본주의자, 우상숭배자) 즉 회개하지 않는 악인의 결과는 서서히 그러나 완전한 파멸을 가져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회개치 않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좀과 같은 존재에 불과해서 별볼일없이 생각하지만, 별볼일없어 보이는 좀으로 인해 그들의 결국은 멸망을 가져온다는 말입니다.
옷을 잘못 보관하여 좀이 먹으면 아무리 좋은 옷일지라도 좀이 먹은 부분 때문에 옷을 입지 못하고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곳은 멀쩡한데 좀이 먹은 부분은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깝지만 좀이 먹었기 때문에 옷 전체를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에브라임이나 유다가 자기의 병과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하여 앗수르로 찾아갔지만 결코 그들의 병과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병과 상처는 정치적인 문제를 비롯한 나라 안의 모든 문제들을 말합니다.
에브라임과 유다가 자기의 병과 상처를 "깨달았다"라고 번역되었는데, 여기에서 "깨달았다"라는 히브리어 '라아'(רָאָה)는 "보다'(see, look at)라는 동사입니다. 다시말해서 그들이 자기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앗수르 왕 야렙(king Jareb)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야렙'(יָרֵב 야레브)은 '주장하는 자, 싸우는 자(contender)'라는 뜻의 남성명사로 '싸우다(strive, contend)라는 '리이브'(רִיב)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을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과 NIV에서는 '대왕(the great king)'으로 번역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문제가 생기자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적으로 권세가 있는 대왕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는 오직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낫게 하실 수 있으시므로 아무리 강한 나라를 찾아갈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은과 금을 조공으로 앗수르에 바치면서 그들의 보살핌을 바라보았으나 유다는 앗수르에 의해 많은 고난을 당했고,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병과 상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므로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그것을 고칠 자가 없는 데, 그들은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실만 보았기 때문에 문제 해결도 현실적으로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만 바라보면 계속해서 우리에게는 현실적인 것들만 다가옵니다. 그리고 아무리 안간힘을 쓰고 노력해도 해결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더욱 악화되기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눈을 떼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현실과 다른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가 다가옵니다. 영의 세계는 지혜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지혜를 맛볼 수 있는 세계이므로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모든 것을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인내하며 절제하며 잘 견디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내의 결국은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사람은 구원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인내하거나 절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9)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11)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그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왔는지 또는 좀(moth)처럼 별볼일 없이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좀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안에서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여러분의 삶이 서서히 좀이 먹어서 썩어들어가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다다르지는 않았습니까?
좀먹은 옷처럼,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입을 수도 없는 그러한 상황...
또 썩어들어가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강구하지는 않았습니까? 해결을 해줄만한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성경과는 다르지만 좋은 방법일 것 같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잠시 외면하고 그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았습니까? 그것만 잘 되고 해결되면 다시 하나님을 찾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바로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남편을 버리고 바람을 피운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신랑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영적 간음을 하며 살아갔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의 생각이나 사람들의 명령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정조를 버린 것입니다.
일단 정조를 잃어버리면 남편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모든 것을 다 잊고 용서해 준다면서 달래도 요지부동일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남편을 배신했기 때문에 정말로 남편이 용서해 줄 것이라고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돌아갔더라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음란한 영에 사로잡힌 이들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음란한 영에 사로잡히면 제일 먼저 생각이 지배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더럽히고 망가뜨린 자들에게 다시 찾아가는 것입니다. 혹시나 하는 인간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닌 다른 이들은 자기의 욕심만 채우면 되기 때문에 스스로 은금을 갖고오는 여자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결국 있는 것을 다 소비하여 빼앗기게 되어 몸도 마음도 모두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렇게 누군가를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다가 낭패를 본 일은 없습니까? 정말 믿을만한 사람, 사업, 상황인 것 같았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속담처럼, 믿었던 사람과 일로부터 당해본 적은 없습니까?
여러분은 진실로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왕이시며 심판주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인간을 의지하지 말고 상황이나 현실을 믿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만 믿고 요단강에 발을 담그시기 바랍니다. 우리 앞에 출렁이고 있는 요단강물은 우리가 믿음의 행보를 할 때에 갈라지는 것이지, 믿음이 없이 바라보고만 있으면 결코 갈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발이 젖을까봐 걱정하는 사람은 긴 장화를 준비하고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느라 분주할 것입니다. 그리고 준비를 했어도 물에 젖으면 다시 밖으로 나가서 다른 것으로 준비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믿지않는 사람이며 사람의 생각과 명령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좀이나 썩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젖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온 우주의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할 때마다 법정에 불러서 재판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우리가 자발적으로 찾아가서 우리의 잘못을 시인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유다는 그렇게 하지 않아서 재판장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그들이 범한 죄를 물려받지 맙시다. 그들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맙시다.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만 바라보고, 잘못했을 때 무조건 하나님 앞에 엎드립시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며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했을 때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보혈의 공로로 무죄판결을 받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심판주이신 하나님께서 저의 아버지시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며 위대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외면하고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에게 가서 절하며 제사를 드리고 또 세상의 권력을 갖고있는 왕과 인간을 의지하며 그들의 말을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며 또한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수없이 듣고 배우지만, 미련한 저희는 그것을 저희의 삶 속에 적용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저 남 이야기 하는 것 정도로 듣고 흘려버릴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저희의 이야기이며 저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집 불구경 하듯 남 걱정만 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온 우주의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잘못할 때마다 일일이 심판하지 않으시고, 저희가 주님께 돌아올 때까지 오래 참으시는 인자하시며 은혜가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혹시 제가 주님을 좀이나 썩어질 것처럼 취급한 적은 없었는지요?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저에게 그러한 때를 생각나게 하셔서 주님께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옵소서.
매일 한 걸음씩 주님께 더욱 가까와지는 성화의 길을 걸어가면서 과거의 제 모습을 돌아볼 때면 "몰라도 너무 몰랐었구나"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보다 좀 더 주님을 알게 되고, 과거보다 죄를 더 많이 깨닫게 되고, 과거보다 저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화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에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저의 손을 놓지 마시고 저를 온전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나 더 따르는 것이 있다면 생각나게 하셔서 그 모든 것을 끊을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저의 생활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최우선 순위로 따르게 저를 이끌어주시고, 어떠한 문제가 닥쳐올 때에라도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만 믿고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저는 부족한 것 투성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미끄러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에게 가르쳐주시고 미끄러진 곳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심판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주님만 바라보는 이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며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심판을 하신다는 것은 상과 벌을 주신다는 것이므로 제 소망은 오직 주님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최고의 상인 구원과 영생을 받았사오니 오늘도 구원의 기쁨 속에서 뛰놀기를 원합니다.
저와 동행하여 주셔서 영생을 소유한 자로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저를 보는 사람들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