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힘을 모으자
중고등학교시절 이은상 선생님의 시조 ‘성불사의 밤’, ‘가고파’, ‘고향생각’등의 가곡을 좋아했던 나는 정년 후에 시조시인인 아내의 권유를 받아 습작을 시작했고 시조 전문지인 ‘현대시조’에 ‘억새’로 신인 문학상을 받아 2005년에 등단한 시조시인이다. 당시 등단의 길을 열어 주신 ‘현대시조’ 발행인 선정주 시인께서 “이다음 빈소 신주에 ‘학생부군’ 대신 ‘시조시인’ 아무개로 쓰면 얼마나 멋있습니까?”라던 우스갯소리가 지금도 귀에 맴돈다. 2005년에 등단했으니 시조를 써 온 지도 어언 17년이 되었다.
왜 나는 시조로 된 가곡을 어려서부터 좋아했을까요? 그건 노랫말도 좋지만 그 노래를 부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 지고 신명이 나기 때문이었다. 3.4 3.4조의 운율에 맞춰 시조 한 수를 읊어 보세요. 그러면 그대로 아름다운 한 곡의 음악이 됨을 느낄 것이다. 시조는 그래서 정형시이자 가장 대표적인 문학 장르이며 흥의 문학이라 불린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바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이다. 우리는 흥과 신명의 민족이다. 흥만 돋우어 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우리 민족이다. 사물노래패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신이 날수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것도 ‘잘 살아 보세’라는 잠재적 신명의 민족성이 불같이 일어났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확신한다. 시조창이 시조로 발전했고 사설시조가 현대시의 모태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우리나라 첫 시조집인 ‘청구영언(靑丘永言)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는 신문기사가 났다. 시조계로서는 대단히 반가운 소식이다. 청구영언은 1728년(조선 영조 4년) 김천택이 엮은 고시조집이다. 시조 998수와 가사 17편을 곡조에 따라 분류하고 정리하였으며 <해동가요>, <가곡원류>와 함께 3대 시조집으로 불린다. 청구는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의 별칭으로 쓰던 말이고 영언은 시와 노래라는 뜻이다. 시조는 3장 6구 12 음보의 우리나라 대표적 정형시로 초장·중장·종장의 45자 내외의 글로 만들어진 민족시로 멀리는 신라시대의 향가에 이어 고려 중기에 중흥하며 오늘에 이른 1000년 역사를 가진 민족문화 유산이다. 중국의 절구, 일본의 하이쿠, 서양의 소네트와 같이 나라별로 대표적인 정형시가 있듯이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정형시는 바로 시조다. 시조는 신라시대의 향가에 뿌리를 두고 1000여 년의 맥을 이어 온 민족시다. 이후 고려시대에 그 형식이 완성되고 이조시대의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함으로써 임금으로부터 정치가, 학자, 문인 등에 이르기까지 우국충정이나 효·우애·우정·희노애락을 한문이 아닌 한글로 표현하여 시조로 기록을 남기면서 시조문학의 중흥을 이루게 되었다. 한글이 있어 시조가 제 모습을 찾게 되었고 시조가 있어 한국문학이 계승 발전되어 온 것이다. 교육을 받은 국민이라면 고려충신 정몽주의 ‘이 몸이 죽고 죽어...’라는 ‘단심가‘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로 정몽주를 회유한 이성계의 아들인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와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그리고 이은상의 ‘내 고향 남쪽 바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조는 민족의 얼과 혼이 담겨있는 우리나라의 문학사다. 하지만 400년 역사의 일본 하이쿠는 작가만도 4백-5백 만 명에 달함은 물론 하이쿠에 매료된 외국인도 수십 만 명에 이르러 확실한 문학 장르의 하나로 세계화에 성공했는데 우리 시조는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시임에도 불구하고 시조시인이 고작 2,000여명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시조의 세계화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6년 문체부에서 선정한 「100대 민족문화상징」에도 시조는 없다. 또한 인터넷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도서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2005년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에서 주빈 국으로 선정되어 시조를 세계에 널리 알릴 절호의 기회가 있었으나 「한국의 책 100권」에 고우영의 만화 「일지매」도 있었는데 민족문학인 시조는 없었고 영어로 번역된 대표작에도 시조는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한국문학을 소개할 문인 62명에 시조시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니 이러고도 시조700년을 외칠 수 있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당시 문공부는 무엇을 했고 시조시인들은 무엇을 했는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시조는 민족문학의 뿌리이다. 시조가 부흥하려면 초·중·고 교과서에 60·70년대처럼 시조를 실리고 우대하는 등 교육부가 먼저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여기에 일간지와 TV 등 대중 매체가 지면과 시간을 과감하게 확대하고 기업체와 공무원 시험에 시조문제를 포함하는 등 민족시를 범국가적으로 키워나가면 된다. 지금도 대부분의 신문사가 시조 난을 두고 신춘문예에 시조를 포함시키는 등 시조창달에 동참하고 있지만 중앙일보사의 「시조 백일장」 같은 정부 주도의 전국시조백일장을 매년 개최하는 등 정부가 시조창달에 발 벗고 나서준다면 시조의 대중화가 요원의 불꽃처럼 일어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회장단이 발을 벗고 나서야 한다. 교육부와 언론사를 꾸준히 방문하여 활발한 로비를 해야 한다.
인류최초의 정형시인 한국 시조의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움직임이 「한국시조시인협회」와 「한국시조협회」 등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조를 일본 하이쿠에 대적할 세계적인 문학 장르로 키우기 위해서는 일본 천황처럼 대통령께서 보다 많은 관심을 갖으시고 신년 인사를 시조로 발표하는 “신의 한 수”를 두시면 온 국민은 물론 세계가 주목할 것이며 시조의 「세계기록유산등재」 운동에도 큰 탄력을 받을 것이다. BTS, 오징어게임 등 음악과 드라마로 한류의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최근 한국어가 7번째로 UN 공식 언어로 채택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한국어 사용자가 7천7백만(자국 비포함)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어 그들을 통한 시조보급 확산을 기대할 수도 있는 강점도 가지고 있다. 한국어의 세계화는 시조의 「세계기록유산등재」 운동에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물들어 올 때 노질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시조의 세계화와 세계기록유산등재의 기치를 내걸고 한국문인협회 시조 분과 회장에 당선된 김민정 시조시인의 노력으로 시조의 스페인어·영어·아랍어 번역본이 출판되어 세계유명대학 도서관에 배포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어느 중견 시조시인께서 "시조문학의 발전 없이는 인문학의 발전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한류로 인해 한글 위상이 어느 때 보다도 높은 지금이 시조를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추진할 적기다. 시조계가 하루바삐 의견을 통일하여 정부주관부처에 시조의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신청하는 등의 행동을 보여야 한다. 시조가 대중화되는 "시조 르네상스운동"이 "국민운동"으로 승화되고 더 나아가 하루빨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도록 시조계와 정부가 힘을 모으자!(2022.3.30. 서울 자치신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