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위'였습니다
'조지 워싱턴(1732-1789)' 전 대통령이 군에서 제대하고 민간인의 신분으로 있던 어느 여름날, 홍수가 범람하자 물 구경을 나갔습니다. 그때 육군중령 계급장을 단 군인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 노인, 미안합니다만 제가 군화를 벗기가 어려워서 그런데요. 제가 이 냇물을 건널 수 있도록 저를 업어 건네주실 수 있을까요? ― 뭐 그렇게 하시구려! 이리하여 중령은 워싱턴의 등에 업혀 그 시냇물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 노인께서도 군대에 다녀오셨나요,? ― 네, 다녀왔지요. ― 사병이셨습니까? ― 아닙니다. ― 혹시 위관급 (尉官級)이셨습니까? ― 조금 더 위였습니다. ― 아니 그러면 영관급 이셨나 보네요. 헌데 그 노인이 계속 더 위라고 대답하자 그는 약간 비웃는 투로 아예 급수를 훨씬 높여 ― 노인께서는 그럼 준장이셨습니까? ― 조금 더 위였습니다. ― 소장이셨나요? ― 조금 더 위였습니다. ― 그럼 최고의 계급인 대장이셨단 말씀이세요? ― 조금 더 위였습니다. 냇가를 건너 자신을 업어 준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육군 중령은.... 그 텁수룩한 노인이 당시 미합중국의 유일한 오성장군 (五星將軍)이던 '조지 워싱턴' 임을 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온라인에 올라온 글입니다. 내가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30년 전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출근길에 대학교 1년 후배이자 3선중진인 K국회의원을 만났습니다. 나는 본청에서 K의원은 의원회관에서 근무하던 시절입니다. 나는 하도 오랜만에 만난 기쁨에 무심코 “K의원! 안녕하십니까?” 하고 아침 인사를 했습니다. 당연히 ‘아~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하고 반가워 할 줄 알았던 K 의원은 못 만날 사람이라도 만난 듯이 ”아~ 네“하고 한마디 던지더니 악수도 없이 황급히 회전문 안으로 도망치듯 사라졌습니다. 나는 바람처럼 사라지는 K의원 뒤를 머쓱하게 바라보며 말없이 느끼는 열등감과 무안함 때문에 화끈 달아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 K의원은 같은 대학교 정경대 1년 후배로서 그는 정외과에, 나는 경제과에 재학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시 3학년으로 학보사 편집국장직을 맡고 있어서 일부 정치지향적인 학생들의 글도 자주 실어주고 교우하면서 학생활동 방향 등에 대한 의견교환을 자주 했습니다. 이 K의원도 그런 부류 학생 중의 한 사람이어서 같은 정외과 출신이자 대학신문 기자로 함께 근무했고 후에 국회의원을 지낸 J전의원, C전의원 등과 함께 신문사를 자주 드나든 3인방의 한 사람이었으며 나와도 선후배 사이로 아주 친하게 지낸 아끼는 후배였습니다. 나는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회전문 사이로 사라진 그 K의원에 대한 서운한 감정 때문에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야 당연히 “K의원님”이라고 존대 말로 불렀을 테지만 단 둘이 만났으니 반가운 나머지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님”자를 빼고 부른 것인데 악수도 없이 사라진 그 의원에 대해 심한 모욕감을 느낀 나머지 재학 중 그 K의원을 아는 선후배를 만나면 이 이야기를 하면서 선배도 몰라보는 후배라고 날선 비판의 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K의원은 두고두고 내 원망 때문에 귀가 따가웠을 것입니다. 아니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게 아닌가 싶어 이 사건 후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나마 상식을 얻은 게 있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우리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도 있으며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시정(市井)에서 숱하게 듣고 있습니다. 부모님에게서 수없이 들어온 가정교육이고 자식들에게도 늘 겸손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헌데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기저에 깔려 있는 유교의 반상(班常)사상과 관리를 으뜸으로 알았던 권위주의적 전통 때문에 잘 나가는 고위직 관리들의 목은 늘 뻣뻣하기만 했습니다. 소위 신분의 서열화로 초래되는 계층별 계급관계로 인하여 많은 보통사람들이 심한 위화감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현상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봉건사회에서 사회관계를 구성했던 카스트제도, 인종차별, 민족차별 등이 아직도 일부 존재하지만 제도적으로 등급에 따라 권리와 의무가 다르고 세습되던 원칙은 사라졌습니다. 겸손의 보편화 현상이 지도자의 제1의 덕목이 된 선진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문득 K의원을 또 한 번 떠올리는 것은 아직도 관존민비사상과 신 계급제도를 부활시키는 관리들의 ‘갑’ 질 횡포가 여전한 현실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국가 원수 직에서 물러나면 “잠이나 싫건 자야겠다”던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자유분방한 정신이 새삼 돋보입니다. 부러움을 너머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퇴직 후 조지 워싱턴 대통령처럼 인자하고 소탈한 보통사람으로 돌아간다면 인권과 권리가 존중되는 국가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입니다. 관청에 들어가는 민초들을 주눅 들게 하고 선후배 사이에 계급 차이로 인사나누기가 불편해저서야 어떻게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을지 그 때 생각만하면 지금도 입맛이 씁쓸하기만 합니다.(2022. 4. 26. 서울자치신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