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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베어진 옥수수 대궁 위에 내려앉은 고추잠자리의 나른한 오수에서
길가에 마냥 흐드러지게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의 청순한 자태에서
한낮의 여름을 식히듯 또랑또랑한 귀뚜라미 울음소리에서 묻어나는 가을을 느낍니다.
▲ 고추잠자리의 나른한 오수에서 우리는 가을을 맞는다.(수묵연화(그림 운곡 강장원 작가))
해는 점점 짧아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아직 여름이고 싶은 나무의 잎새를 재촉하는 서늘한 바람
여름내 숨어있던 새들도 햇살 아래로 나오는 걸 보니 가을이 오는 것 같습니다.
길쭉한 꽃송이를 하얗게 이고 있던 밤나무의 모습이 어제인 듯한 데
바늘 숭숭한 송이 안엔 속살이 굵어져 가고
성급하게 다가온 추석에 열매를 물들이기에 바쁜 대추나무
보름달 아래 휘영청 한 수숫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 감의 깊이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 밤송이 바늘 숭숭한 송이 안엔 속살이 굵어져 간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여름은 켜켜이 쌓인 소중한 추억과 함께
떠날 채비를 마치고
그 빈자리에 풍요를 구가하는 계절이 성큼 와 있습니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나뭇잎이 지는 계절, 이별의 계절, 비워냄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여름내 키워냈던 열매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개구리의 합창으로 요란했던 황금 들녘도 빈 들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가을은 비워냄을 학습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덜고 비워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가 가진 불필요한 욕망을 비워야
삶의 무거움을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어찌 되었든 가을입니다.
가을엔 낙엽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왜 사랑이 낮은 곳에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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