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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재 세일사(德川齋歲一祀)
김상민(金相珉)
(시조 34세손, 강호파)
1. 문제의 제기
오늘날과 같이 복잡다단한 사회 변혁기(變革期)에 제례(祭禮)를 전통예절에 맞게 거행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고례(古例)에 의하면 조상에 대한 제사는 기제사(忌祭祀)와 세일사(歲一祀)로 구분하여 지냈다. 기제사는 고조(高祖)까지 받드는 제사로 명절 등을 포함해 1년에 여러 번 모신다. 반면 세일사는 5대조 이상의 조상에 대한 제례로서 1년에 한차례 음력 10월 중에 날을 정하여 제물(祭物)을 정성껏 마련하여 묘지로 직접 찾아가서 제사를 지냈다. 이를 묘사(墓祀), 또는 시사(時祀), 시향(時享)이라고 한다.
경남 사천시 곤명면 본촌리에는 시조(始祖) 순충공(順忠公) 21세손 강호파 애일당(愛日堂) 성편(聲遍) 후손들이 자작 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과거에는 12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떠나 촌락이 피폐화 되었다. 그리고 고향을 지키는 후손들도 고령화되어 하는 수 없어 세일사(歲一祀)를 수년 전부터 전통예절에 맞지 않는 줄 알면서도 편의상 조상의 묘소가 아닌 재실(齋室)에서 지방(紙榜)을 봉안(奉安)하고 합사(合祀)를 한다. 세일사를 지내는 날짜는 매년 시월 보름이다.
이러한 고민은 아마 다른 집안에서도 동병상련(同病相憐)일 것 같아 혹시라도 참고가 될까봐 본촌 일족의 세일사 의례 진행 절차를 소개한다.
2. 세일사(歲一祀) 절차의 이원화(二元化)
본촌 문중(門中)의 경우 재실에서 세일사를 모시는 조상은 시조 21세손으로부터 시조 31세손까지 신위(神位) 101위다. 초창기에는 각 신위마다 전통예절의 절차에 따라 의식을 진행했다. 그랬더니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오후 5시가 넘어야 제례를 마칠 수 있었다. 경향 각지에서 참여한 후손들이 제례를 마치고 귀가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세일사 절차를 간소화하였다. 그랬더니 시간이 단축되어 세일사를 모시고 난 후 귀가하는데 불편이 줄어들었다.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모시는 신위를 대(代)에 따라 이원화(二元化) 하여 1부와 2부로 나눠서 모신다. 1부는 시조의 21세손부터 26세손까지 6대의 조상을 대상으로 합사(合祀)한다. 1부의 의식 절차는 가능한 전통예절에 가깝게 진행하고, 2부는 축약된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 제물도 각각 따로 마련하여 1부 제례가 끝나면 철상(撤床)을 하고 새로 진설(陳設)하여 2부를 진행한다.
가. 1부의 의례(儀禮) 절차
1부의 의례 절차는 먼저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축관, 집례, 좌 집사, 우 집사를 분장(分掌)한다. 그리고는 지방(紙榜)을 봉안(奉安)하고 제물을 차린 후 진설된 제물을 점검한다. 그런 후에 집례의 홀기(笏記)에 따라 제례를 진행한다. 집례의 홀기도 전통의 홀기 내용 중에서 번잡하면서도 시간이 지체될 수 있는 절차는 가능한 줄여 제례의 근본정신은 계승하는 범주 내에서 단순화시켰다.
헌작(獻爵)의 경우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헌작을 할 때 6대(代)의 신위(神位)가 모셔진 각각의 지방(紙榜) 앞에 잔을 따로 올리는데 대(代)를 구분 짓지 않고 한꺼번에 올리고 재배한다.
독촉을 할 때도 축문의 서두를 읽고 이어 지방(紙榜)에 명시된 조상을 일일이 밝힌 후에 후반부를 읽음으로써 한번으로 끝을 맺는다.
또, 세일사를 모시는 장소가 묘소에서 재실로 바뀌었기에 축문의 내용도 묘소에서 지내던 전통적인 내용을 근간(根幹)으로 하여 바뀐 장소에 합당하도록 개축(改祝)하였다.
1) 축약(縮約)한 홀기 내용
◑ 擧禮宣言(거례선언)
헌관과 집사 그리고 모든 자손은 옷깃을 바로하고 신위 전에 바로 서십시오.
◑ 享祀禮(향사례)
모든 참례자는 재배 하세요.
◑ 行陣饌禮(행진찬례)
진설을 살피고 향로와 향합을 놓으세요.
◑ 行降神禮(행강신례)
• 초헌관은 향로 앞으로 나아가세요.
• 향로에 향을 세 번 올리세요.
• 조금 물러서세요.
• 우 집사는 제주 병을 들고 헌관 오른쪽에 서세요.
• 좌 집사는 강신 잔을 받들고 헌관 왼쪽에 서세요.
• 헌관은 끓어 앉으세요.
• 제집사도 모두 꿇어앉으세요.
• 좌 집사는 잔반을 헌관에게 드리세요.
• 우 집사는 술을 따르세요.
• 헌관은 퇴주 그릇에 세 번 나누어 다 부으세요.
• 좌 집사는 잔반을 받아 제자리에 놓으세요.
• 헌관은 엎드려 재배하세요.
• 헌관은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 行參神禮(행참신례)
헌관이하 모두 재배하세요.
◑ 行初獻禮(행초헌례)
• 초헌관은 신위 앞에 나아가세요.
• 우 집사는 제주 병을 들고 헌관 오른쪽에 서세요.
• 헌관은 신위전의 잔반을 들어와 동쪽을 향해 서세요.
• 우 집사는 서쪽을 향해 술을 따르세요.
• 헌관은 잔을 받들어 제자리에 올리세요.
• 헌관은 북쪽을 향해 서세요.
• 양 집사는 신위전의 잔반을 받들어 와서 헌관 좌우에 서세요.
• 헌관은 꿇어앉으세요.
• 집사도 모두 꿇어앉으세요.
• 헌관은 잔을 받아 조금 기울여 퇴주그릇에 세 번 지우세요.
• 집사는 잔을 받아 제자리에 갖다 놓으세요.
• 헌관이하 모두 엎드리세요.
• 祝官(축관)은 헌관 왼쪽으로 나아가 동쪽을 향해 꿇어앉으세요.
• 축을 읽으세요.
• 헌관이하 모두 일어나 몸을 바로 펴세요.
• 헌관은 재배하세요.
•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 行亞獻禮(행아헌례) : 초헌례의 절차와 동일한 절차로 진행한다.
◑ 行終獻禮(행종헌례) : 아헌례의 절차와 동일한 절차로 진행한다.
◑ 行辭神禮(행사신례)
• 초헌관은 나아가 신위 앞에 서세요.
• 집사는 숙수를 올려 수저를 거두어 숙수에 담으세요.
• 헌관 이하 머리 숙이고 잠시 기다리세요.
• 집사는 수저를 거두어 제자리에 놓으세요.
• 헌관이하 참례자 모두 재배하세요.
◑ 禮畢(예필)
이상으로 시제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 飮福(음복)
음복은 음식을 맛봄으로 해서 복을 나눠 갖게 되는 것입니다.
2) 개축한 축문 내용 및 축문 해설
維歲次 戊戌 十月朔 甲辰 十五日 戊午
孝八代孫 尙熙 敢昭告于
顯 八 代 祖 考 通 政 大 夫 府 君
顯 八 代 祖 妣 淑 夫 人 完 山 李 氏
歲薦一祭 禮有中制 履茲霜露 宜禮墓祀
事勢不逮 設位奉行 不勝感慕
謹以菲儀 式陳祗薦 合祀 尙
饗
무술(戊戌)년 시월 초하루 일진(日辰)이 갑진(甲辰)이고, 보름날 무오(戊午)일에 8대손 상희는 삼가 신주(조상)님께 고합니다.
顯 八 代 祖 考 通 政 大 夫 府 君
顯 八 代 祖 妣 淑 夫 人 完 山 李 氏
일 년에 한차례씩 지내는 제(祭)를 지내려 합니다. 묘소에서 이슬과 서리를 밟고, 산소에서 제사를 지내야 함이 마땅하오나, 일의 형세가 미치기가 어려워 지위를 항렬에 따라 받들고 제사를 지냅니다.
사무쳐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삼가 보잘 것 없는 차림의 의례로 법도에 따라 진설하여 공손한 마음으로 합사(合祀)를 지내니 바라옵건대 흠향(歆饗)하옵소서.
나. 2부의 의례(儀禮)절차
2부에 편성하여 제사를 모시는 조상은 시조의 27세손으로부터 시조의 31세손까지 5대의 선조이다. 2부에서 모실 조상의 대수(代數)는 적어도 모셔야 할 신위(神位)의 수는 많다. 그래서 근친의 조상끼리 그룹을 만들어 네 파트로 나누어 축약한 의식절차에 따라 동시에 진행한다.
먼저 1부 제사의 제물을 철상하고 새로운 제물을 진설을 한 후 파트별로 나누어 지방(紙榜)을 모신다.
2부 제례의 절차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거례선언, 향사례, 진찬례, 강신례, 참신례까지는 1부의 절차와 동일하게 진행을 하고, 헌작(獻爵)과 독축(讀祝)부터 절차를 대폭 축약했다. 헌작은 초헌만 올리고 아헌과 종헌은 생략했다.
헌작의 경우 신위의 직계손이 대상 신위의 고비(考妣)에 대해 일괄적으로 헌작을 하고 나면 축관이 일괄적으로 독축을 하고 재배를 하면 한 집안의 제(祭)는 끝이 난다. 그리고는 다음 집안의 제례를 행하는데 절차는 동일하게 진행한다. 이러한 절차에 따라 네 파트가 동시에 진행한다. 조금 소란스럽고 혼잡하다. 그래도 이젠 정착이 되고 보니 혼잡한 가운데도 질서가 유지된다. 이렇게 헌작과 독축이 모두 끝나면 1부와 같은 절차에 따라 사신례와 음복례를 행한다.
3. 글을 맺으며
사람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효(孝)를 계속 이어가기 위함이다. 효는 자기를 존재하게 한 것에 대한 보답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효가 인간의 행실 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다. 정자(程子)는“살아계신 조상은 극진히 받들고, 돌아가셨다고 잊어버려 박하게 한다면 심히 옳지 못한 일이다.”라고 했다.
사람이 자기존재를 진실로 고맙게 여긴다면 자신을 이 세상에 탄생하게 한 근원(根源)인 먼 선조에게도 효를 이어가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 방안의 하나가 제사(祭祀)를 지내면서 조상의 유덕(遺德)을 기리는 일이다.
조선조의 경국대전에 의하면 3품관 이상은 고조부모까지 4대 봉사(奉祀)를, 6품관 이상은 증조까지 3대 봉사를, 7품관 이하 선비들은 조부모까지 2대 봉사를, 서인들은 부모까지만 제사를 지내도록 신분에 의한 차별을 두었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신분제도가 철폐됨에 따라 누구나 고조(高祖)까지 4대 봉사(奉祀)를 하고, 그 윗대의 조상에게는 세일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이 달라진다. 그러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시대의 변천에 순응하기 위해 변하기 마련이다. 제례도 같은 맥락이다. 제례가 너무 복잡하고 절차가 까다로우면 젊은이들 중에는 그것이 진부(陳腐)하고 고루(固陋)하다고 여겨 회피하려한다. 어차피 세일사(歲一祀)를 통해 계승해 가야 할 숭모정신(崇慕精神)은 우리 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후세에 까지 이어져야할 규범이다. 그래서 젊은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아무튼 세일사를 일족끼리 재실에서 합사를 하면 좋은 점도 있다. 일가라고 하더라도 평소에는 자주 만날 수 없는데 합사(合祀)를 함으로서 서로 만나 조상을 숭모(崇慕)하는 정신을 계승할 수 있고, 또 일족간의 정을 깊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세일사(歲一祀)는 결국 사람의 보본의식(報本儀式)의 발로다. 사람이 자기를 존재하게 한 조상의 은덕에 대한 보답의 마음이 응축된 제사는 참으로 온당한 인정의 발로라 할 것이다.
무술년 세일사를 지낸 후 필자가 지은 한시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德川齋 歲一祀
前屛祭物設陳成(전병제물설진성) : 제물을 병풍 앞에 법식에 따라 차려 놓고,
後裔階低立列橫(후예계저입렬횡) : 후손들은 계단 아래 횡으로 늘어섰다.
縷縷香煙向棟樑(누루향연향동량) : 향불은 실오라기로 피어올라 마룻대로 향하고,
祝官聲讀砌躇停(축관성독체저정) : 축관의 독축 소리는 섬돌을 넘어와 머문다.
宜當先塋進行祀(의당선영진행사) : 마땅히 산소에서 제사를 올려야 할 일이지만,
事勢不饒設位亨(사세불요설위향) : 일의 형편이 여의치 못해 지방을 모시고 제사를 올린다.
追遠感心留渺渺(추원감심유묘묘) :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은 아득히 먼 곳에 머물고,
問候談笑耳聽盈(문후담소이청영) : 안부를 묻는 담소 소리만 귀에 가득 들려온다.
첫댓글 평소에 본촌 순춘공후 가문에서 시행하고있다는 절사와 시제의 보다 발전된 절차를 소문으로 듣고
부러워 했던적이 있었는데 오늘 공의 대종회보에 보낸 원고를 접하고 자신에 찬 용기에 찬사를 보내오.
헌데 내 욕심(생각)은 획기적인 변화를 했으면 싶소 다음대의 후손들이 쉽고 편한 축제로 이어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