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이상" 형상과 모습을 버린 자리에 부처가 계신다는 것이다. 법당에 모셔진 형상의 부처님은 방편일뿐. 어디까지나 "색"이고 "상"일뿐이다..
색즉시공. "본질"은 색과 상을 떠나있다. 예불하고 절을 하면서도 항상 이런 참된 본질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수많은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전해줄수있는 방법은 언어(법)를 사용해야 하고 그 언어가 구족한몸 그족한 상 이라고 표현하고 있는것이다.
부처님이란 진리 그 자체이며 생명 그 자체이며 우주 그 자체이며 허공 그 자체이며 완전한 "무" "공" 그 자체이다.
크고 작고 잘나고 못난것도 아니며 남자 여자도 아니고 그어떤 한정이나 표현으로도 나타낼수가 없다.
여래가 말씀하신 구족(모두갖춘)한 색신은 이미 "색신"을 다 버렸기 때문에 생하고 멸함이 없이 구족한 색신이 아닌 부처의 "법신"이다. 그래서 금강경의 말씀이 중요한 것이다.
부처님은 "법신"으로 보아야 하며 상호를 갖춘 색신 ''겉모양"으로 보지말라 부처의 진실한 모습은 겉모양에는 없다. "법신불" 자리가 진정한 여래이다.
학자들은 실존인물인 "석가모니"가 진정한 부처라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관세음보살 님을 친견했다고 하고 참선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부처라고 한다.
그렇다면 진짜 부처는 무엇일까? 이런 혼동을 없애기위해 "삼신불"의 개념이 정립된 것이다. 부처님은 크게 세가지 몸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의 개념이다.
법신불은 "법".말씀을 상징하고 보신불은 "마음" 화신불은 몸뚱이로 나투신 부처라 한다. 그래서 법신불이 진짜 부처님이고 보신불이나 화신불은 중생제도를 위해서 마음과 몸으로 나투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말한다. 부처님은 여러가지 지혜와 모습으로 "화현"하므로 그어떤 한가지 만으로 부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것이다
부처님의 "법신"은 모양이 없다. 일체법이 모두 "인연"에 속한것 이라면 실체가 없는 존재임을 알수있다. 실체가 없는것이 바로 "공"의 뜻이다.
거울에 비친 상이나 물속에 비친 달과같이 비록 실체는 아니지만 인연이 모이다보면 나타나지 않을수가 없다는것이다.
불교는 "인연법"으로 종지를 삼는다. 소승의 "생멸"이나 대승의 "무성"이 비록 얕고 깊은 차이는 있으나 통론하면 모두가 "인연"인 것은 마찬가지 이다.
우리는 절에가서 불상이나 탱화를보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느끼는것은 부처를 "겉모양"으로 관념화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불상안에 부처없고 종교안에 부처없고 온 법계에 부처가 있다는 것이다.
길가에 돌맹이 하나 풀 한포기 에서도 나에게 깨달음을 줄수있는 부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참된 불교의 정신은 "불교"라는 틀에서 벗어날수 있어야한다. 다만 그 이름이 "불교"인 것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