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속 주인공을 그리고
수를 놓는 밤 ㆍ
작년 가을에 프랑스 자수를 배운 후로는 무지의 옷이나 가방만 보이면 수를 놓는다ㆍ검정의 패딩에는 손목과 허리선에 두 줄의 선을 백스피치로 수를 놓았다ㆍ노란 색실과 연두색과 초록 잎새로 바느질을 했더니 전혀 색다른 옷으로 바뀌었다ㆍ참 신나는 일이다ㆍ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구나 싶어
수 놓는 일에 몰입하게 된다ㆍ
이제 도서관에 들리면 자수에
관련 책자를 먼저 고른다ㆍ10여권의 책을 제치고 프랑스자수 책을 가장 먼저 읽으면서 예시된 도안을 보고, 그리고 바느질을 하게 되었다ㆍ얼마나 즐거운지! 시간이 흐르는 줄 모르고 몰두하게 되었다
처음 글자를 배운 아이가 여백만 있으면 벽이건 바닥이건 익삐뚤빼뚤 글자를 쓰는 것처럼 내가 그렇게 되었다ㆍ엉글지만 하얀 광목천에 꽃ㆍ나비ㆍ주전자ㆍ나무를 수놓았다
남편의 검정조끼에 오리 두 마리,
얇은 티셔츠에 병아리가 모이를 먹는
모습. 해바라기ㆍ제비꽃ㆍㆍㆍㆍ
새로운 것들이 바늘 하나로
자꾸자꾸 태어났다ㆍ세상에 없는 것을 내어 놓는 일은 그 기쁨이 상당하다ㆍ창조하는 기쁨이 바로 이런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ㆍ틈새만 생기면 바닥에 펴놓은 둥근책상 앞에 앉았다ㆍ
아! 그러다가 생각했다
동화책과 이야기속에서 살아 온 오랜 세월ㆍㆍ 동화책 속의 주인공들을 송환해서 수를 놓기로 했다ㆍ누구보다 동화속 친구들을 잘 알고 있으니 직접 바느질로 탄생 시키는 일은 혼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ㆍ린넨천에 하나씩 하나씩 스케치 하고 수를 놓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쓰지 않는 2024년 다이어리는
' 자수스케치 노트'로 바뀌었다ㆍ
읽고 쓰고 걷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손을 움직이며 수를 놓으니, 꽃이 피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심겨졌다
소년에게 사과를 주고 시원한 그늘을 주던 나무는 다 베어져 간이의자처럼 작아진 자신의 몸까지 내어준다ㆍ
다 늙어 돌아온 소년에게 앉아서 쉬라고 밑둥까지 내어주던 성인 같은
사ㆍ과ㆍ나무도 멋지게 수를 놓아야지!
예전에 아들 형제와 머리 맞대고
숙제도 하고 책을 읽던 둥근상을 창고에서 끄집어 내 수를 놓는 책상으로 만들었다ㆍ
없던 것들을 만드는 창조적인 행위는
사람을 참 기쁘게 한다ㆍ
'얼른 설거지를 끝내고 오즈의 마법사의 요정인 도로시를 그려야지'
'어린왕자의 머풀러는 무슨 색깔로
수를 놓을까?'
'꽃은 체인스티치로 하면 예쁠꺼야'
뒤늦게 사물을 스케치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그런다ㆍ'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빨간머리 앤 같다고 그림을 일찍부터 그렸으면 천경자 화가가 울고 같을 거라고ㆍㆍㆍ
과분한 칭찬을 한다 ㆍ
고래보다 더 즐거워져서 흥얼흥얼
노래까지 부르며 수를 놓는다ㆍ
벌써 자정이 다가오는 데, 라푼젤의 긴머리를 그리기에 몰입한다
머지않아 거실의 케튼에 동화속 아이들이 살아 움직이겠지.
꿈은 한 땀의 바느질로서 시작된다
2024.1.25
김치곱창찌개를 먹던 저녁에
첫댓글 미소가 저절로 생기는
어린왕자ㆍ빨간머리 앤 ㆍ도로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