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으니까 가슴이 뛰는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가슴이 뛰는게 거린다. 설렘도 기대도 없는데 뛰는건 병이니까. 8번쯤 일어나 화장실엘 간것같다. 이쯤이면 병 맞아? 노인들의 삶이란게 늘 요동을 친다. 어제하고 오늘이 같을수가 없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니까. ' 전에는 안그랬는데' 이 말처럼 허망한 말도 없다. 아무 의미가 없기때문이다. 비는 그친건가? 어제는 하루종일 왔다. 엄청 쏟아지기도 했고,,, 개천에 징검다리는 벌써 잠겼고, 산책길에 육박하고 있었다. 비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물은 맑지가 않았다. 씻어낼 불결함이 여전한 것인가. 다 씻겨나갔을법도 한데,,, 다리밑에 걸린 잡동상이들을 보면 끝도 없다. 인간은 쓰레기와 동거하는 존제라는게 수긍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나부터가 냄새에 자유로울수가 없다. 어떤 순간에 돌변해서 안면을 바꾸게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어제도 그랬다. 며늘이 일이있어서 8시 반에나 들어온다며 미리 가도 된다나. 작은애가 들어오는 시간은 7시반이다. 작은애 씻는거 보고나서 내가 나온게 8시 전이었다. 30분. 그 30분을 기다려주지않고 나왔다. (며늘의 30분은 1시간이 되는것은 다반사이지만) 애들만 두고서 그냥 아무염려없이 나와버린것은 도대체 뭘까? 그 30분이 대체 뭐라고. 그런데 이제 내 한계이다. 참아내는게 너무 싫다. 나를 용서하자! 더는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마음가는데로 살라'는 말에 한편으로는 동의하면서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게 된다. 가능하다면 그리사는것도 좋겠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가능할까. 나는 늘 바닥에서 살아서 다른것은 모른다. 바닥은 언제나 내 의사와는 다르게 강요되거나 떠밀리게 되는것을 어쩌지 못한다. 헤어나는 길이 분명 있을텐데도 그걸 알지못하고 살았다. 구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살았다. 살고 또 사니까 또 살아지더라. 그게 나고 내 인생이었다. 한편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누구에게 억울하다는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공평하지않는 세상을 살려면 감수해야하는 부분이 분명 있지않겠는가. 항변이 무슨 소용이며 무슨 효력이 있을까. 내가 이해할수있는 것보다 이해할수없는 부분이 더 많음을 알기만 하면 ,,, 순응은 순종과는 분명 다르다. 허지만 또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냥 살았다. 그냥 사니, 또 살아지더라. 대게는 그렇게 살고있지 않는가. 미미한 사람들 말이다. 아니, 나만 그런가.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