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영 선조는 순조 24년인 1824년에 현재의 평택시 행락동에 탄생하셔서
광무 5년인 1901년 향년 78세로 별세하였다.
78세라면 당시로선 장수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한마디로 80평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오랜 세월을 생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적에 대해선 사실상 벼슬이외
아는 내용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동영 선조를 전하고 있는 기록도 진주강문참판공파 족보, 승정원 일기, 궁내부문서,
대한제국 관보에 나오는 기록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동안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강동영 선조는 문과에 응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진주강문과 승정원 일기에 근거하여 첫 벼슬을 선공감 감역을 제수받은 것으로 보인다.
선공감 감역은 종9품 벼슬로서 궁궐이나 토목공사를 감독하는 직분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직접 현장에 나가서 감독을 하였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1889년 승정원 일기에 감역으로서 30개월의 소임을 마친 이후 정3품인 통정대부의
품계를 제수받은 사실이 나오는데 종9품에서 여러단계를 뛰어넘은 파격적인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894년 승정원 일기에는 군부의 벼슬이라 할 수 있는 종4품의 부호군에 제수되었다
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그의 벼슬중에서 핵심 관직이라 할 수 있는 돈녕부 도정과 동지돈녕부사를 언급하
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왕족들을 관리하는 관청을 종친부라 하고 왕실의 인척들을 관리하는 관청을 돈녕부
라 하는데 강동영 선조는 이러한 관청에서 도정과 동지돈녕부사를 제수받았다는 것이다.
도정은 품계로는 정3품 통정대부이고 동지돈녕부사는 종2품 가선대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강동영 선조가 정확히 어느 시기에 이 벼슬들을 제수받은 것인지 여부는 공식적으
로 밝혀지지 않았다.
벼슬 시기와 관련해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가 있는데 돈녕부가 1894년 종정부에 병합되
었다고 하니 돈녕부는 이 시기를 전후해 사실상 그 기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일단 추
정컨대, 1889년 ~ 1893년 사이에 돈녕부에 재임한 것으로 본다.
80평생에 이르는 강동영 선조의 생애에 있어서 그나마 확인된 내용이 벼슬과 관련된 내용
인데, 그렇다면 첫 벼슬의 소임을 받기 전인 60년의 그 많은 생애에 그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인지 대단히 궁금한데 현재로선 밝혀진 사실이 없다는 점에 후손으로서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밝혀진 것이 없다고 해서 그 생애를 규명하는 작업을 결코 중단할 수 없다
는 결연한 의지를 천명하면서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24년에 강동영 선조의 생애를 기필
코 쓸 것이다.
2023년 7월 13일(목) 문암 역사작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