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은 정6품의 관직으로서 사실 품계는 높다고 할 수 없으나
그 역할에 비추어 볼 때 권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감찰이 속한 기관은 사헌부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사정기관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검찰을 비롯해 경찰,감사원,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사헌부라는 호칭은 고려 공민왕 대에 정식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시 사헌부에서 감찰어사대로 그 호칭이
변화하였다가 조선이 개국된 이후 사헌부로 변경되어 그 이후
수백년동안 조선의 핵심 사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였던
것이다.
덧붙이면 고려시대에 감찰과 비슷한 관직명이 있었는데, 감찰사와
감찰어사가 있었다는 것인데, 이러한 관직이 조선이 개국된 이후
감찰로 변모하였다는 것이다.
필자의 요새 최대 관심사는 단연코 감찰공 박여해 선조의 생애라
할 수 있는데 감찰공의 친가 가문을 비롯해 인척 가문들의 역사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찰공의 생몰년도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을 포함해 교류한
인물을 비롯해 어떤 경위로 감찰의 관직을 제수받게 되었는지 그
내력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소 진전된 사항이 있다면 감찰공이 족보에 관직이외에
기록이 전혀 없는 이유가 가문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은거"와 관련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었다.
감찰공의 외숙이 1396년 사헌부 장령에 제수되었으나 경상도 지역에
은거한 사실은 이미 소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감찰공도 이러한 외숙의 영향을 받아 감찰의 직분은
제수받았지만 은거의 길을 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족보 이외에 박여해 선조가 감찰을 지내신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당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때 그 경위는 모르나 감찰의
관직을 제수받은 것은 팩트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본다.
2024년 6월 1일(토) 문 암 올 림.
첫댓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감찰[監察]국어 뜻 . 공무상의 비위나 비행에 대하여 조사 또는 감독하는 일>이라고 나옵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글에 대하여는 이해를 하기가 편하니 글을 읽어 보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 자료는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쉽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에 대한 댓 글도 쓰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나 역시 읽고 있으나 관심사를 언급하기는 쉽지 않음이 사실입니다.
여하간 역사를 연구하는 자세는 평생공부에 해당하는 좋은 일일 것입니다.
2024.6.2
카페지기 박창서
"역사를 연구하는 자세는 평생공부에 해당하는 좋은 일일
것입니다" 제하의 댓글에 문암 또한 공감합니다.
끝으로 좋은 댓글을 올려주신 대부님께 감사드립니다.
2024년 6월 2일(일) 문 암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