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깔라(김 웅)님의 교우단상 : 짠돌이의 좌충우돌 네팔 여행기 2- 공항 해프닝 편 ◈
체중계의 바늘이 눈금 ‘6kg’을 가리키는 순간 그제야 여행의 준비는 끝을 보였다. 나와 동행할 짐의 무게 바늘이 움직이듯 곧 내 여정의 나침반 또한 목적지를 향해 있을 것이다.
가방의 지퍼를 힘겹게 잠그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거실을 비추는 남향의 햇살을 향해 고개를 돌려 작별 인사를 나누고 집을 나왔다.
돈을 아끼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의 두뇌활동은 여행 첫 날부터 빛을 발했다. 직접 인천공항까지 가는 리무진버스에 비해, 인천종합터미널 행 고속버스를 타고 도착 후, 인천-인천공항행 시내버스를 타는 것의 비용이 만원이나 저렴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요 시간도 같다.
죽어라 일만 했던 두뇌공장의 수백억 개의 고급인력(?)들에게, 연말 성과급으로 만원어치 햄버거 회식비를 쥐어주면 된다고 나름 합리화(Rationalization)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
버스에 몸을 싣고 나니 긴장이 풀려왔다. 인천을 향해 출발함과 동시에 나의 수백억 직원들을 퇴근 시키고, 뇌신경망 스위치를 내린 후 상안검 셔터마저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제동과 가속의 반복됨이 느껴지는 순간,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예정된 도착 시간이 넘었다. 차량 정체가 심하여 서행을 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지도 어플로 나의 위치를 확인해보니 평택-시흥간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있고, 여기에서 인천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는 측정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변수에 당황도 잠시, 일정을 다시 확인하며 다행임을 느꼈다. 비행기 탑승수속 절차 시간을 제외하고 공항 내에서 한 시간의 여유시간을 잡아놨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통정체로 인해 소요된 시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는 문제가 되었슴)
인천에 도착 후 바로 앞 정류장에서 신속히 시내버스로 갈아탔다. 기나긴 인천대교를 지날 때 쯤 조금씩 여행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8시 35분이었다. 10시 45분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두 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탑승수속절차에 소요하는 시간이 두 시간으로 굳게 믿고 있었기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지 못한 채 일정을 진행했다.
무수히 많은 탑승수속 카운터들이 마치 대형마트 계산대처럼 늘어져있음에 숨이 막혔다. 무료 인쇄가 되는 두 곳 중 하나인 체크인 카운터 C번에 갔지만 먼저 온 외국인이 인쇄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붙잡고 있어서 L번 카운터로 향했다.
가는 도중 옆의 서점부스에서 장당 100원으로 프린트가 가능했지만 지갑을 열어보니 현금이 없어 곧장 L번으로 달려갔지만 비치된 인쇄기가 없었다. 무언가 잘못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심호흡을 하고 근처 ATM 기계를 찾아다니며 급히 현금을 인출하여 서점부스로 뛰었다. 허나 방금까지 열려있던 서점이 닫혀있었다. 운영시간이 지났음을 직감했다.
시계는 9시 2분을 가리키자 머릿속으로 기습한 불안이 나를 지배하고 이성을 마비시켰다. C에서 L번까지 카운터를 왕복하는 시간은 빠른 걸음으로 10분, 다시 C번 카운터로 뛰어갔지만, ‘인쇄기 고장’이라는 문구가 시신경을 타고 문자로 해석됨과 동시에, 교감신경이 내 심장을 지휘하여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자각했다.
불안이 만든 무력감을 이겨내기 위해 안내 데스크로 찾아갔다. 2층의 간이 카페에서 인쇄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잽싸게 달려 마침내 E-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화가 난 심장을 달래주니 전두엽이 활성화되어 감정을 억제하고 ‘시간 계산’을 인지했다.
현재 9시 25분이다. 체크인 수속을 밟고 탑승권을 받아 게이트번호와 탑승시간을 확인하였다. 127번 게이트에서 10시15분 탑승시작, 출발 15분전 게이트를 마감한다.
절차는 체크인(탑승권, 수화물)-출국장(보안검사, 출국심사)-게이트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이제 겨우 체크인을 끝냈을 뿐인데 시간이 촉박했다. 여섯 개의 출국장 중에서 지금 위치와 가까운 3번 출국장으로 가보니 수백 명이나 줄을 서 있었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뿐이었다. 안내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세 곳의 출국장이 영업종료, 한 곳은 공사 중이며 남은 두 곳은 3번과 5번 출국장이었다. 5번 출국장으로 뛰어갔다. 120여명의 승객들이 대기하고 있어서인지 10시 정각이 되도록 좀처럼 줄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의 시간은 점점 세상과 시차를 두고 멀어져만 갔다. 급히 서둘러야 했지만 그럼에도 직원의 말 “4번 출국장이 공사 중이니 다른 곳으로 가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내가 바보 같았다. 이 미련한 곰(웅)에게 아직 심장은 화가 풀리지 않은 듯 했다. 아니 오히려 화를 돋군 셈이다. 자아가 극도의 불안을 일으키며 잘못을 따지기 시작했다. 인쇄물의 부재, 버스의 교통체증, 부정확한 정보, 시간분배 문제 등 나의 무의식은 전적으로 상황 탓을 하는 투사(Projection)를 겪다가 결국 논리과정의 주지화(Intellectualization)를 택했다.
이 인지과정은 스마트폰의 인터넷 검색란에 ‘비행기 환불’ 이라는 단어를 쓰게끔 하였다.
마음속 나침반이 집을 향하고 있을 때쯤 보안검사를 시작하였다. 잔뜩 긴장한 나머지, 손가락의 미세운동이 잘 되지 않아 겉옷을 벗는데 애를 먹었다.
10시 15분을 지나고 있었다. 머릿속엔 127번 게이트에서 사람들이 비행기 내부로 들어가는 형상이 아른거렸다. 대기 줄이 끝을 보였을 때가 10시 24분으로 게이트 마감시간까지 앞으로 6분 남짓 했다. 그 곳까진 셔틀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기에 사실 상 소용없을 것으로 여행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출국심사관에게 여권을 건네주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순간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전화가 울렸다. 서둘러 뛰어오라는 공항직원의 라스트 콜이었다.
다시 한 번 나의 좌심실은 온 몸을 향해 피를 격하게 토하기 시작했다. 돌려받은 여권을 겉 옷 안쪽 주머니 깊게 넣는 동안 내 몸은 전투 준비가 끝났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렸다.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29분, 두 번째 라스트 콜이었다.
“어디세요? 이제 셔틀지하철 기다리시면 어떡해요. 빨리 오셔야 되요. 빨리”
외항사 비행기의 탑승 건물은 면세지역에서 지하철 행 2~3분이 소요되는 곳에 위치해있다. 셔틀을 이용하여 이 곳에 막 내렸을 때 울려오는 세 번째 전화가 몸에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해주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뛰는 도중 꽤나 가까운 거리에 127번이 보였다. 마지막 전화가 왔다.
“어디에요? 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마지막 콜입니다. 네? 다왔다구요?”
수신목록에 기록된 시간은 10시 35분이였다. 30분에 비행기 문이 닫혔어야 했지만, 나 때문에 5분을 더 연장해준 것이다. 그리하여 10시 45분 출발 비행기의 10분전에 탑승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진성대가 서로 붙지 못한 채 쉰 목소리를 내며 게이트를 통과하였다. 지정한 좌석에 앉아 숨을 고르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금 무사히 비행기 탔어요. 잘 갔다 올게요.”
비행기의 엔진은 점등이 되어 이륙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의 정신은 추락을 하고 있었다.
멍한 듯 창가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여행 1일차를 마무리 지었다.
중국 국적의 이 비행기는 쿤밍(곤명)을 경유하여 네팔에 도착하며 귀국 시 쿤밍과 상하이를 경유한다. 쿤밍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은 새벽 3시로 10 시간 대기 후에 같은 날 점심 쯤 네팔로 출발한다.
숙박의 문제를 해결 해야 할 것이다. 허나 난 공항에서 노숙하기로 계획했다. 이미 국내에서 노숙한 경험이 꽤 있고, 가뜩이나 혼자 여행하는데 공항 밖 호텔예약, 택시잡기, 위안 환전, 공항의 비싼 물가 등 나의 정신에너지를 중국에 쏟고 싶지 않았다.
쿤밍공항에 도착했다. 손가락 지문을 등록하고 입국카드를 작성하여 여권과 함께 심사관에게 주었다. 심사관이 내 단수여권을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머리를 긁적이다가 결국엔 여권에 경유비자 도장을 찍어주었다. (심사관의 이 제스처는 후에 있을 여권문제를 암시함)
입국장을 나와 노숙 라운지에 찾아갔다. 듣던 대로 수많은 중국인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보안직원들이 수시로 경계를 지키니 안심이 되고, 온수 정수기가 있어 노숙할 맛이 났다.
의자에 앉아 5시간의 쪽잠을 자고 일어나 인천에서 미리 산 쿠키로 아침 끼니를 달랬다.
어제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오후 1시 25분 비행편의 3시간 전, 10시 25분에 출발 층으로 올라왔다. 일찍 왔는지, 11시가 돼서야 체크인 카운터가 확정되어 전광판에 안내되었다. 일찍 절차를 진행하니 오늘은 기필코 여유 롭게 비행기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하지만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하였다. 단수여권이 문제였다. 직원이 내 여권이 12면 밖에 없다며 나머진 어딨냐고 추궁하는데, 그들은 내가 단수여권의 의미와 여권 면수가 몇 개 없는 이유를 해명하길 원하는 것 같았다.
영어를 할 수 있냐는 질문에 아주 조금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하니, 직원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나조차도 ‘단수여권’이면 다 똑같은 여권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를 소명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보다 그들이 더 잘 알 것 아닌가!
또 다시 다급함은 나의 판단을 흐리고 감정이 뇌를 깨웠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일단 여권 안에 ‘PS’라는 글자를 보여줬다. ‘PM’의 복수 여권과 구별된다. 그들도 내 여권을 사진 찍어서 스마트폰으로 다른 담당자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또한 그들은 네팔 당국에도 전화를 하여 이 여권이 유효한지의 여부를 물었다.
한 시간의 실랑이 끝에 이 여권은 문제가 없다며 나에게 체크인 수속을 허락하였다. 받은 탑승권의 보딩 타임 12시 45분에 이어 1시10분이 게이트 마감, 25분이 출발시각이다.
시간은 현재 12시 5분이다. 온 몸에 긴장상태가 유지되며 절차를 진행했다. 12시 48분쯤 내 뒤에 있던 외국인이 티켓에 적힌 보딩 타임 12:50의 글자를 보여주며 양보를 요구했지만, 나도 찡그린 얼굴과 내 티켓의 숫자 12:45 로 응수하니 내게 사과를 하는 해프닝도 겪었다.
오늘의 한바탕 엎치락뒤치락하는 분위기에도 1시 5분에 네팔 행 탑승에 성공했다.
내 나침반의 바늘은 한국과 네팔을 왔다갔다 반복하다가 결국엔 네팔의 히말라야를 가리킨 것이었다.
신속히 내릴 것을 감안하여 내 가방을 다리 밑에 두고 옆 창문의 햇살을 보고 있는데, 저기 앞에서 한국말을 하는 두 분이 내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는데....
다음 편이 궁금하지 않은가?
다음 주에는 본격적인 히말라야와 그곳 인연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