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옥상에 작은 나무 상자로 마련한 텃밭이 있다. 꽃을 심으면 화분인데 채소를 심으니 텃밭이라 부른다. 시비하는 사람도 없고 나무라는 이웃이라야 새들과 바람뿐이니 문패도 따로 붙이지 않아도 괜찮다. 동네 화원에서 봄이면 꽃샘추위에 푸른 얼굴로 손짓하는 상추나 고추 모종을 사와 심는다. 음식물 쓰레기도 가끔 썩혀 퇴비로도 활용할 수 있으니 쓸모가 꽤 쏠쏠한 나름 텃밭이다.
태양이 게으르지 않게 볕을 쏘고 하늘은 성실하게 수분 하강의 임무를 수행하면 바람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씨 승객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가벼운 보퉁이를 풀고 개성적 면상을 펼친다. 개중엔 바람 항공 노선을 착각한 나무 씨앗도 있고, 주인의 사랑을 받고 내쳐진 과일 씨앗까지 새 삶터에서 본능적 의욕을 보인다. 제 각각 차려 입은 전래 의상은 해와 낯을 익혀가면서 고유한 낯빛으로 옥상 세계를 밝힌다. 매무새는 달라도 식물 나라의 고유 색상인 연초록 일색. 서로 어울려 초록 공화국을 꾸려 간다. 자유로운 민주 식물 나라.
봄철 채소 모종이 입장하기 전인데 초대하지 않은 손들이 이곳을 일찍 찾아오기도 한다. 3층 건물 옥상인데 먼 길도 마다 않고 높이마저 넘어 찾아온 무작정 손들이다. 무비자 입국인데다 수속도 자유로운 개방형이라서 내전으로 모국을 떠난 난민부터 자유를 찾아 남행한 탈북민 씨앗들이다. 주인이 까다롭지 않은 텃밭 나라를 경영한다는 풍문이 아마도 식물 세계로 널리 퍼진 게 아닌지 모르겠다. 떠도는 소문은 늘 진실을 배반한다는 현실을 그들이 알 리 없는 게 다행인가. 이미 날아와 월세는커녕 세금도 낼 생각 없이 주저앉는다. 원주민 고추와 상추 모종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지 망설이게 한다.
“떡잎부터 다르다”는 전해 오는 옛말. 생물학에서 본다면 유전자 작용이겠지만 두 개 떡잎이 나오면 꽃인지 풀인지 나무인지 다르다. 세상 출발선부터 그들 삶이 다른 것을 옥상 작은 텃밭에서도 확인한다. 소질대로 처음 맞는 세상을 한 뼘씩 헤쳐 나간다. 떡잎끼리는 이웃사촌 떡잎을 곁눈질할 틈새가 없어 보인다. 전신으로 햇살 맞이하고 뿌리로 양분 빨아올리느라 하루하루가 바쁘기 때문인가. 인간처럼 금수저 흙수저 타령으로 생명 존엄을 손가락질 아니 하고, 떡잎사귀는 거주를 허락한 주인에게 아침마다 살랑대는 감사 인사를 거르지 않는다.
어린 아기는 바로 사람 떡잎이 아닐 텐가. 떡잎에 이가 나오고 머리칼이 자라며 옹알이를 하면서 말의 세계로 입장한다. 아기 떡잎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며 인간의 삶을 시작하는 셈. 한 치씩 커가면서 말이 늘어나고 그 말뜻을 하나씩 실감하며 채소와 나무처럼 제가끔 생을 꾸려간다. 식물은 인간처럼 수저를 들먹이며 출생 타령하기보다 떡잎에 새겨진 저마다의 유전지도를 해독하며 자란다. 떡잎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탓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퍽 고단할 지도 모르는 세상살이 발길을 떼나 싶다. 사람이건 식물이건 같은 생명체로 지구별에 떡잎으로 안착하여 어른이 되고 나무가 되고 채소가 된다.
조상 말씀은 그들이 살면서 체험한 것을 응축한 유익한 삶의 정보다. 살아보면 그 말과 삶의 실상이 같다는 걸 자주 깨우친다. 떡잎이 다르듯 사람도 저마다 타고난 바가 각각이다. 출신을 탓하기보다 햇볕 따라 얼굴 돌리고 물을 쫓아 뿌리를 펴는 일에 충심衷心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떡잎을 가까이 바라볼 텃밭에 찾아올 봄을 기다린다. 겨울 햇살이 하늘 저편에서 갸웃한다.(안산도서관소식지. 2018년 겨울호,14-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