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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지의 반란
이복희
“모영아...”
액정에 뜬 글자를 보고 또 혀를 차고 만다. “소영”이라고 쓴다는 것이 그리 된 것이다. 카톡을 보낼 때 자주 겪는 일이다. 두 번 연거푸 터치를 해야 하는데 그만 또 잊은 것이다. 늘 그런 식이다.
‘ㅁ’과 ‘ㅅ’ 은 한 집에 산다. ‘ㅅ’을 불러내려면 초인종을 두 번 눌러야 한다. 내 스마트폰의 자판 배열은 경제논리에 지배되고 있다. 한 집에 둘씩 산다. 문패를 내걸지 못한 된소리도 있다. 그럴 때는 세 번까지 터치해줘야 한다.
그런데 또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 앞글자의 받침이 바로 뒷글자의 첫소리가 되는 단어를 써야 할 때다. 그것들은 잠깐의 시간차를 두지 않으면 전혀 다른 단어가 되고 만다. ‘엄마’를 쓰려고 했는데 ‘어마’가 떠 있는 경우 같은 것이다.
‘ㅁ,ㅅ’ 말고도 내가 자주 걸려드는 것 중 하나가 ‘ㅇ’과 ‘ㅎ’이다. 둘이 동거하는 집이기 때문이다. 첫소리가 ‘ㅎ’으로 시작되는 글자를 써야 하는데 또 한 번만 누른다. ‘ㅎ’은 당연히 묵묵부답일 수밖에. 그래서 ‘합니다’가 ‘압니다’가 되어버린다. 얼른 알아차리고 고칠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확인도 하지 않고 보내 버릴 때가 더 많으니 어쩌랴.
반대로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한 번만 터치해야 할 때 두 번 하기도 한다. ‘ㅂ,ㅍ’이 같이 사는 집에서 주로 그런 일이 생긴다. 거기만 가면 나도 모르게 두 번 누른다. 그럴 때는 둔하던 손가락이 쓸데없이 재바르다. “밥 먹었어?” 해놓고 보면 곧잘 “팝 먹었어?”로 떠 있다. 팝콘도 아니고…. 왜 그렇게 학습이 안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마치 주술에라도 걸린 듯 그렇게 특정 자판에서 실수를 저지르기 일쑤다.
카톡이나 문자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일이 부쩍 늘었다. 말로 하는 통화보다 문자로 오고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오타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친절하게 오타였음을 다시 알려오는 경우도 많지만 웬만해서는 서로 그러려니 하고 만다. 대화 할 때도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들어라’고 하지 않던가.
터치를 제대로 해서 무사히 통과해도 오타는 또 나온다. 분명 제자리를 찾아 누른 줄 알았는데 비껴나가 옆집이나 아랫집 초인종을 건드릴 때도 많다. 그런 영역침범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애꿎은 손가락에 혐의를 두곤 한다.
‘내 손가락은 아무래도 너무 짧고 굵어.’
더 큰 문제는 미처 수정도 안 되었고, 쓰고자 하는 문장도 다 끝내지 못했는데 전송이 되어버린 경우다. 그럴 때는 자판의 과민한 터치 본능이 얄밉기 짝이 없다.
처음엔 의아했다. 난 아직 <전송> 근처에도 갈 생각이 없는데 제멋대로 날아가다니. 왜 그런 일이 자주 생기는지 그저 둔한 내 손놀림 탓만 했다.
그날도 내 검지와 장지는 모음 자음을 찾아 열심히 자판을 헤매고 있었다. 젊은 애들처럼 두 손으로 잡고 양쪽 엄지로 춤추듯 날렵하게 자판을 오르내리고 싶지만 언감생심. 왼 손으로 들고 오른 손 검지나 장지만 쓰는 독수리타법이다. 그런데 언뜻 눈에 들어오는 손가락 하나, 무명지였다. 그것은 <전송> 표시 바로 가까이에 능청스럽게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어느 순간 슬쩍 <전송>을 건드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액정화면에는 미완성의 문장이 떴다.
“바로 이 놈이었어”
마치 현행범이라도 잡아낸 것처럼 득의만만했다. 그런데 뒤 미쳐 드는 이상한 생각 하나. 아하, 무명지가 화가 난 게로구나. 도대체 나는 언제쯤 써줄까, 기다리다 못해 반란을 일으킨 게야. 그래도 컴 자판기에서는 할 일이 있는데 여기만 오면 버림받은 신세라니…. 존재감 없는 무명지의 불만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러자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아는 분이 색다른 음악회에 초대를 해주었다. 비록 유명한 오케스트라는 아니지만 특이했던 것은 관객 모두, 와인과 식사를 즐기며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음악회였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폰을 꺼내들었다. 더 늦기 전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멋진 음악회에 초대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하려는데 다 쓰기도 전에 그만 전송이 되어 버렸다. 미진한 마음에 다시 나머지를 쓰려고 보내진 글을 살펴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 멋진 음악회에 초대해주셔서 개감사…."
덜 된 문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화면에 뜬 글은 내가 봐도 해괴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사과의 글을 곧 보냈지만 개감사라니, 어째 이런 일이….
일의 전말을 되짚어 보니 알만 했다. ‘감사’가 또 문제였다. ‘감’을 쓰고 시간차를 약간 둔 후 ‘ㅅ’을 불러와야 했다. 그 규칙을 잊고 급하게 눌렀더니 ‘감’의 ‘ㅁ’이 받침의 사명을 내버리고 냉큼 올라앉아 ‘가마’를 만들었다. 지우고 수정하려는 순간 마침 전철이 덜컹거렸다. 어김없이 빗나가는 손가락. ‘개’는 그때 끼어들었을 것이다. 돌연변이라 쳐도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설사 그리 되었어도 그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무명지가 나서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날릴 수는 없었을 터.
그러니 별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실수를 되풀이할 것이며 손가락이 별안간 길고 날씬해질 리는 더더욱 없다. 따라서 옹색한 자판을 정확히 짚을 수 있다는 기대 같은 것도 갖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무명지, 제멋대로 다크호스를 자처하고 나서는 그 무명지야 말로 버릴 수 없는 내 육신의 일부분인 것을.
온기를 지닌 음성을 대신해 비집고 들어선 문자의 소통 방식도 어쩌면 일종의 반란이 아닐까. 그냥 흩어져 사라지는 목소리로 만족할 수 없어, 흔적으로 남고 싶은 모종의 갈망이 일으킨 반란. 그것은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몸짓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까톡!’
또 신호가 온다. 나도 이 시류의 한 가운데에 실려 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도 ‘개감사’ 같은 인사는 다시 하고 싶지 않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첫댓글 준빠님 또 찾는다고 고생하실까봐 올립니다. 다 읽은 글일 듯싶어 올릴 마음이 없었는디....
또 워드 치실까봐서....
덕분에 다시한번 웃네요. 개감사! ㅎㅎㅎ
이러지 않았더라면 내가 또 높은 돋보기 끼고 죽자사자 찾아 올리려고 했는데, 오! 주여.
작가 자신이 손수올리게 하셨나이다.
오 마이 가드, 하우머치 개감사 아이돈노.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