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눈은 바깥만 보게 되어 있다.
거울 속에 있는 내 안의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데.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과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큰 차이가 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의 삶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동반 한다.
권력을 얻으면 더 큰 권력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 하면 더 큰 고통이
따른다.
삶을 버려라.
모든 것을 인정하고 체념해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
요즘 시대에는 조그만 티끌도 용서하지 않는다.
어떤 부분에 대해선 자신이 깨끗할지 모르지만 다른 부분에선 결점이 많을
수도 있다.
아득한 절망 속에서도 봄은 왔습니다.
얼어버렸던 땅에도 온기를 더해주고, 우리에게도 따뜻한 사랑을 내어주니
벅찬 약동의 숨결을 출렁이게 한다.
매화꽃은 진즉 달려 갔고...
요즘의 계절은 봄처녀의 변덕스런 마음마냥 걷잡을 수 없을만큼 마음대로니
짐작하기가 어렵다.
화단에 철쭉 꽃몽올이 솟아오르고 모과나무 새순이 오돌오돌 파란눈을 뜨고 있다.
자연은 묵은 것을 다 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매년 보여 주는데
썩을(?) 인간들은 작년이나 올해나 변한게 없다.
토양에 수분이 많아야 식물에 뿌리를 통해 수분을 공급하게 된다.
토양에 수분이 부족하여 식물에 수분을 공급하지 못하면
식물은 말라 죽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과학시간에 배운 수분포텐샬의 법칙으로 수분은 많은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나 특히 정치권에서는 국민들에게 나눠줄 양심이나 사랑,
포용과 배려심이 부족하여 국민에게 보내주질 못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목말라 하고 있다.
언제쯤이면 우리에게도 해뜰날이 올지 착찹하기만 하다.
양심있고 용기있는 사람은 점점 뒤로 숨고 자기 밥그릇 지키기와 권력에만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우린 너무 자신의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주위에 귀 기울리고, 하하에 가서 교수님의 좋은 말씀도 듣고 책을 읽어서
생각의 유연성을 더 키워 주위에 소리와 사랑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를 만들고
새로운 싹을 틔워 건강한 후예를 위한 씨앗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만큼 자연이 보내주는 만큼이라도 인간들이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봄이 끊임없이 우리를 초록으로 신비함으로 인도합니다.
봄을 향해 소리 질러 보세요!
따뜻게 쓰다듬어 주시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봄에 향기를
주머니 가득 담아봅니다.
첫댓글 촉촉한 봄비가마음 푹 적십니다.
주변에 식물들이 봄이 왔다고 속삭여요.
하하님들 활기찬 봄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선영씨! 힘 내세요~!
myfrend 님, 3월에도 어김없이 편지 올려 주셨군요. 꽃이 없는 계절은 없지만
유독 봄꽃이 반가운 것은 겨울을 지나온 시간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봄은, 봄꽃은 우리에게 희망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싹을 발견한 듯 반가운 하루, 희망이 꿈틀거리는 하루 시작하면서 아기편지 읽으니 감사합니다.
변덕스런 날씨라도 기후가 예전같지 않더라도 변함없이 순환하는 자연, 자연처럼 자연스런 세상이 되어야할텐데~
아득합니다.
myfrend 님,
2024년 새 봄 소식 주셔서 감사합니다.
봄 예찬은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것같아요.
따스한 봄날처럼 마음도 따스해지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