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사랑과 청춘과 / 최민자
'사랑은 교통사고와 같다 .'라고 누군가 말하였다 . 예고도 없이 , 마음의 준비도 없이 방심하고 있는 순간 , 별안간 맞닥뜨리게 된다는 뜻이다 .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느닷없이 찾아드는 드라마틱한 사랑은 아닌 게 아니라 사고라 할만하다 .
피할 수도 , 거부할 수도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 알 수 없는 운명의 휘둘림 속에 속수무책으로 이끌려들게 된다 . 느닷없이 , 아무런 준비도 없이 , 봄도 그렇게 사랑처럼 온다 . 소매 끝을 붇잡는 겨울의 등쌀에 꽃망울이 주춤거려 올해는 봄이 좀 늦을 거라 하였다 . 삼월 말인데도 춘설이 분분하여 겨울옷을 채 들여놓지 못했다 . 겨우 며칠 햇살이 좋았던가 .
꽃송이가 벙글고 꽃잎이 터지더니 사위는 온통 꽃구름 속이다 . 팝콘이 터지듯 폭발해버린 봄 , 근엄한 얼굴에 일순 번지는 파안대소처럼 갑자기 풀려버린 날씨 속에서 사람들은 조금 들떠 보인다 . 노란 개나리 , 하얀 목련 , 연보라 빛 라일락 …
겨우내 조신하게 처신을 하던 마당의 나무들이 온갖 색깔들을 요란하게 뿜어낸다 . 왁자지껄한 생명의 향연 , 절정을 향한 내달리기이다 . 어디 그렇듯 아름다운 빛깔이 숨어 있었던가 . 흑백 일색이던 세상이 며칠 사이 빛으로 가득차고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
무채색의 살풍경을 순식간에 빛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봄과 사랑은 많이 닮아 있다 . 활기와 희망과 설렘으로 다가오는 점에서조차 그 둘은 닮은꼴이다 . 사랑이 예기치 않을 운명이라면 봄은 예정된 순리라는 점이 둘 사이의 다른 점일 뿐 ,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엄밀히 다르지는 않다 . 노인들이 봄을 기다리듯이 젊은 사람들은 사랑을 기다린다 . 예고 없이 일어나는 게 사랑이라지만 청춘 남녀의 가슴 밑바닥엔 언제나 저제나 하는 , 막연한 기다림이 숨쉬고 있다 .
봄도 사랑도 기다리는 자에게만 오는 것이다 . 창밖이 아무리 화창해도 마음 문이 닫혀 있으면 어느 틈새로 봄이 올 것인가 . 미풍이 대지를 일깨우듯 감추어진 여혼의 현을 퉁겨줄 긴긴 기다림이 있기에 사랑의 기적도 일어나는 것이다 .
봄과 사랑이 함께 어우러지는 눈부시게 푸른 이름 , 그것을 이름 하여 청춘이라 하지 않던가 . 꽃바람이 불고 꽃비가 내리더니 어느새 봄이 뒤태를 보인다 . 꿈속의 여인처럼 그림자도 안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리려 한다 .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닳아지고 , 산화되고 , 공중분해 되어버리는 우리네 젊음처럼 , 사랑처럼 .
봄은 짧다 . 사랑도 짧다 . 청춘 또한 그렇게 짧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