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기독신춘문예 / 남금희
재의 수요일 / 남금희
종려나무 잎을 태워
머리에 뿌리며
주여, 우리 죄를 고백하나이다
티끌같이 가벼운 우리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다만 살아있는 동안
주의 불꽃 아래서
재처럼 순하고 정결하게
해마다 찾아오시는
부활의 봄
손잡게 하소서
내 그리움이 달려간 곳
지금도 갈릴리 바다 출렁이고 있겠지
그 푸른 물결 속 깊이 흐르듯
이천년 전 오신 그 분
내 가슴에 있네
모인 무리에게
평안을 나누이며
물고기처럼 작은 아이들 무릎에 앉히셨네
큰 풍랑 일어 사나울 때
잔잔하라시던 낮은 목소리
은물결 되어 퍼져나겠네
놀란 어부들 바다로 나가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네
지금도 겟세마네 동산 바위섶
그 자리 비어 있겠지
밤 맞도록 흘리신 땀방울에
감람나무 잎사귀들
하늘로 흩어졌네
빈 들의 새벽 편지
호올로 땅끝까지 메아리쳤네
슬픔은 기쁨의 감추인 얼굴
감람나무 더 이상 꽃피지 않아
깊이 잠든 외로운 세상을
맨발로 걸어오시는 주님
푸른 종소리 꽃으로 피네
[당선소감] "보다 낮은 곳으로"
내가 일 주일에 한 번 만나는 신학대학 목회교육원에는 산간벽지에서 오랫동안 전도사로 헌신해 온 목회자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주일 설교 뿐만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 마을의 길흉사에 몸을 아끼지 않으며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애쓰시는, 이 땅 복음화에 초석이 되는 분들이다. 그들의 고뇌와 헌신을 나는 사랑한다. 잘 가꾸어진 화려한 꽃들보다 야생의 풀꽃들이 더 많은 열매를 맺듯이, 그들은 스스로 썩어져서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원한다. 소외된 땅에서 이름없이 가난한 이웃들의 발을 씻겨주는 그들의 사역 곁에 나도 머물고 싶다. 모두 제 목소리를 내기 바쁜 세상에서 보다 낮은 곳으로 스며들어가 소금이 되고 빛이 되리라.
신학대학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기독공보와의 만남이 상을 안겨줘서 기쁘다. 나보다 젊고 싱싱한 문학도들에게 미안하다.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서릿발같은 시정신을 지니신 존경하는 이진흥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심사평] "담담한 詩語의 날개 달아준 수준높은 신앙시"
응모작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는 시어(詩語)의 조락과 진지성이 잘 어우러진 것이었다.
선자들의 기준은 신앙시를 가려내는 것이지만 우선 문학성을 갖춘 신앙시이어야 한다는 점에 원칙을 삼았다.
대부분 목회자이거나 신앙의 연조가 깊은 분들의 작품으로 느꼈다.
신앙의 길이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문학작품을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성서의 지식이나 신앙심의 과정 등이 어떻게 변용되어 드러났는지, 얼마나 시적(詩的)으로 표현되었는지 그래서 시적인 생식성을 갖추었는지가 심사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금희씨의 `재의 수요일'과 `내 그리움이 달려간 곳'을 당선작으로 합의했다.
위의 기준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예수의 행적을 다루면서 전혀 고정관념이나 신앙적 감흥에 도취되지 않고 담담하고 가벼운 시어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
`내 그리움이 달려간 곳'의 `모인 무리에게 / 평안을 나누이며' 에서 `나누이며'는 구문상의 하자는 없으나
순 우리말의 어법은 아니라는 점을 작자는 곰곰히 생각해 주길 바란다.
최종심사에서 아쉽게 밀린 작품 중에는 최용호씨의 `올봄에는' `잔설' 등 일련의 작품과
이인덕씨의 `사순절의 기도' `바람과 구름'등의 두 분은 매우 진지한 자세에 장점이 있었다.
또 최평호씨의 단시(短詩)들은 기지(機智)가 넘치는 작품들이다.
정명애씨의 `나는 보았네'는 제목이 평범하게 떨어졌다.
또 제목과 같은 시구가 2번이나 들어 있어 높은 형상성에도 불구, 아쉬움이 남는다.
이밖에도 성경 구절에 맞춰, 서사적인 시형(詩形)을 취했거나 신앙 고백적인 전개 등 진지하고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았음을 부기한다
- 심사위원 이성교. 박이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