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84) 시 쓰기 상상 테마 2 - ⑧ 연극적 요소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
시 쓰기 상상 테마 2
텐아시아 http://v.media.daum.net/v/ 연동원의 씨네컬 문화 읽기 '보이첵', 연극적인 요소를 만끽하는 공연
2014.10.24
⑧ 연극적 요소로 상상하며 시 쓰기
㉮ 소재나 모티브가 갖는 특징과 상상 적용 방법
연극과 시는 극적 장면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여기서 극적이라는 말은 연극의 클라이맥스처럼 팽팽한 긴장감과 감동적 요소를 품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클라이맥스 같은 장면이 좋은 시에는 많이 있다.
또 하나 더 유사한 점이 둘 다 삶의 중요한 국면이나 정황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연극을 흔히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시를 삶을 암시한 이미지의 축소판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시와 유사점이 있는 연극적 요소에 상상을 덧입힌 후 시를 쓰게 되면
삶의 국면과 삶의 정황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시가 형성된다.
시를 쓰기 전에 이런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이 주인공인 무대’ ‘○○이 조연인 무대’ ‘○○이 소품인 무대’ ‘○○이 연출한 무대’ 등등.
그럴 때 ○○의 자리에 슬픔, 고독, 고양이를 사랑한 고양이, 불면, 계단, 구름, 나무, 징검돌,
바이러스, 의자 등등을 넣어보자.
고독이 주인공인 무대, 고양이를 사랑한 고양이가 조연인 무대,
불면이 조연인 무대, 바이러스가 소품인 무대 등이 형성돼서
문구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 영감이 떠오르게 된다.
이런 상상 말고도 ‘A 극장’과 관련된 상상도 해봐도 좋다.
A의 자리에 다양한 의미를 암시한 단어를 넣어보자.
이별 극장, 아버지 극장, 창문 극장, 힙합 극장, B급 극장, 마우스 극장 등이 형성되어
의미 있고 신선한 시가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 찾아오게 된다.
필자의 시를 통해 그 소재가 어떻게 상상과 만나 펼쳐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엔딩극장
그 시절 난 매일 시체였지
시체를 흉내 내지 않고 그냥 시체
시체를 사랑하는 건 관 뚜껑
관 뚜껑 바닥에 시체가 조시(弔詩)를 쓰지
12월 다음에 12월이 반복될 때
우리의 이별은 완벽해진다
죽은 감각이 부글거리고
나는 기꺼이 까마귀에게 내 급소를 들킨다
첫 행은 지극히 밋밋했고
마지막 행은 극단적으로 맥박이 없었지
시를 보존할 방부제가 필요했지
모든 창문을 밀봉할 암막 커튼이 필요한 것처럼
어떤 움직임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미열처럼 손가락만 겨우 살아있도록
골고루 외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
시에 미친놈, 간명하게 욕이 뱉어졌지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혁명을 흉내 내던 요절’이라고 하면 좋으련만
별들의 통곡은 쏟아지지 않았고
글자들을 갉아먹던 벌레들은 비웃음으로 일관했지
마침내 나는 용의주도하게 자학을 뒤집어썼지
아침마다 태양은 끝까지 파국을 확신했고…
―『1초 동안의 긴 고백』, 문학수첩, 2019.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주목받지 못한 시만 쓰는 화자가 있다.
스스로 자학과 자폐를 일삼다가 죽음에 당도하려 한다.
그런 화자의 비극적인 몸짓과 심리 상태를 「엔딩극장」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자폐나 자학은 진지함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긴 쉽다.
그런데 시적 즐거움(비유, 상징, 알레고리, 아이러니, 역설 등으로 얽어내는)은 많이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연극적 요소를 개입시켜 상황을 극적으로 읽어내는 즐거움을 주기로 했다.
시 속 화자의 상황이 꼭 자신만의 ‘극장’과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따라서 이 시에 드러난 장점은 극적 요소를 활용해 자살 심리를 긴장감 있게 표출한 점이다.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의 객관적 상관물과 상관 현상은 관처럼 느껴지는 방과 시 쓰는 행위다.
두 가지 요소가 자폐 의식과 죽음 의식을 강화하고 있다.
방이 관이 될 때 화자는 곧 시체가 된다.
그래서 시 쓰는 행위도 “관 뚜껑 바닥에 시체가 조시(弔詩)를 쓰”는 행위로 전환된다.
“시체를 흉내 내지 않고 그냥 시체”처럼 살아가는 존재를 위해 방이 ‘죽음 극장’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 극장에서 1인이 할 수 있는 행위와 사유를 바탕으로 극단성을 연출했다.
따라서 객관적 상관물인 방은 화자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엔딩극장」은 자폐 의식과 죽음 의식에 대해 극단적으로 체험한 후 쓴 시다.
그런 설정을 하기 위해서는 ‘왜? 자살을 해야만 해’라는 의문을 먼저 해결해야만 했다.
화자가 왜 그런 심리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시적 논리를 형성하기 위해 “시에 미친놈”이란 간명한 이력을 제시했다.
시인 화자가 쓸 법한 “12월 다음에 12월이 반복될 때/ 우리의 이별은 완벽해진다/
죽은 감각이 부글거리고/ 나는 기꺼이 까마귀에게 내 급소를 들킨다”란 시의 구절도 첨부했다.
극도로 피폐화된 자의식을 상상을 통해 갖게 만든 것이다.
‘혁명을 흉내 내던 요절’이라고 하며,
단 한 명이라도 화자의 시에 의미를 부여해주면 좋으련만 외부인들은
그저 단편적으로 화자가 시나 쓰는 미친 존재로 규정한다.
그래서 마침내 화자는 “용의주도하게 자학을 뒤집어” 쓰고 ‘파국’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 또 다른 예문 (예문 내용 기재는 생략함-옮긴이)
· 손미의 「동화극장」 (《시와 함께》 2020년 가을호)
· 성은주의 「자발적 인형극장」 (《현대시》 2010년 11월호)
· 김나비의 「비오는 날의 미장센」 (《시인광장》 2020년 10월호)
<직접 써 보세요>
* 여기서 제시하는 단어나 구절을 바탕으로 시 쓰기 3단계를 채워 넣은 다음 시를 한 편 창작하시오.
- 제시 단어: 가면, 비극, 1막1장, 파국, 소품, 클라이맥스, 카타르시스, 1인 극장 등의 단어로 쓰거나 ‘
○○이 주인공인 무대’ ‘○○이 조연인 무대’ ‘○○이 소품인 무대’ ‘○○이 연출한 무대’ 등에서
‘○○’을 독특하게 설정한 다음 쓰시오.
| 시 쓰기 3단계 적용 |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
|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
|
3단계 확장하기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
|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하린, 더푸른출판사, 2021)’에서 옮겨 적음. (2022.10.31.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84) 시 쓰기 상상 테마 2 - ⑧ 연극적 요소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