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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다가 뒤돌아보면 역시 백두대간 매봉산으로 잇는
금대봉과 비단봉도 하얗게 덮여있다.
보이는 곳마다 온통 설국이다. 간간이 물감을 뿌려
물체를 표현한 것처럼 세상은 대다수 흰 여백이다.
“이번 주말에 함백산 어때?”
“거긴 작년에 다녀왔는데.”
“태백산은?”
“태백산은 많이 가봤지.”
“그래? 그럼 함백산이랑 태백산을 연계해서 가는 건?”
“그거 괜찮은데.”
함백산과 태백산은 각각 산행한 바 있지만 두 산을 연계해서 갈 기회를 산 좋아하는 친구 성수와 동택이가 마련했다. S산악회의 신년 기획산행을 예약한 것이다. 정초에 강원도 겨울 산의 랜드 마크, 그 하얀 품에 안기고자 주말 이른 아침에 산악회버스에 오른다. 기온이 뚝 떨어져 들어서면 무심히 외면할 것처럼 시린 설산이지만 보면 볼수록 그 비탈에 야박함이라곤 전혀 없이 널찍한 풍모를 지닌 산, 그 두 곳의 산으로 향하는 중이다.
서울을 출발한지 세 시간여가 지난 10시 경 함백산 두문동재에 도착하자 날선 칼바람에 쌓였던 눈들이 휘날려 몸을 움츠리게 한다.
보이는 곳마다 설국이요, 세상은 온통 흰 여백이다
크고 밝은 뫼라는 의미로 대박산大朴山이라고도 불린 함백산은 국내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두문동재, 적조암 입구, 만항재의 세 곳 중 어디를 들머리로 하든지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에 산행에는 큰 무리가 없다.
함백산을 태백산의 한 봉우리쯤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태백산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함백산에 만항재와 두문동재를 잇는 장쾌한 능선이 백두대간종주 붐을 타면서 독립된 산행지로 탄탄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오늘은 남한강으로 흐르는 지장천 상류의 두문동재(해발 1268m)를 산행기점으로 잡았다. 태백시 삼수동과 정선군 고한읍의 경계인 큰 고갯길에 백두대간 두문동재라고 새겨진 석비가 세워져있다. 백두대간의 이음이자 상함백, 은대봉으로 가는 등산로입구다.
“무어라? 폐하께서 돌아가셨다고?”
조선건국 후 벼슬을 마다하고 경기도 두문동에 기거하던 고려 유신 몇몇이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을 만나기 위해 유배지 삼척에 왔다가 공양왕이 타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분노에 떨다가 실의에 잠긴 이들은 태백 건의령 아래 정선에 터를 잡아 두문동杜門洞이라고 칭한다.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어 세상과 등지고 살겠다는 두문분출杜門不出의 사자성어가 여기서 유래되었다.
함백산이 품고 있는 정선 정암사의 적멸보궁은 국내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이다. 적멸보궁주변의 주목을 선장단이라 일컫는데 자장율사가 꽂아둔 지팡이가 살아났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지팡이로 바다를 가른 모세, 그리고 자장율사는 그런 신비한 지팡이를 어디서 구했을까, 의구심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면 안되는 게 없어.”
동택이 특유의 조크에 튀어나온 웃음이 하얗게 김이 서려 흩날리는 눈발에 섞인다. 오늘 가는 길은 시점부터 태백산 부소봉까지 대부분의 산행로가 백두대간으로 이어진다. 산길 들어서면서부터 깊은 곳은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이다.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역시 백두대간 매봉산으로 잇는 금대봉과 비단봉도 하얗게 덮여있다. 보이는 곳마다 온통 설국이다. 간간이 물감을 뿌려 물체를 표현한 것처럼 세상은 대다수 흰 여백이다.
1.3km 거리의 은대봉(해발 1442.3m)은 헬기장이 있는 평평하고 널찍한 고원이다. 함백산 정상까지 4.3km, 두툼한 눈길인지라 실제거리 이상의 체력이 소모될 것이다.
“동택이 체력에 끝까지 잘 걸을 수 있으려나.”
“처지면 우리끼리 가지, 뭐.”
“사돈 남 말하네. 지나 나나 도토리 키 재기지.”
적조암 갈림길을 지나 중함백으로 살짝 고도가 높아진다. 고사되기 직전의 고목과 고사목들은 적설의 공간조차 없어 처량 맞아 보인다. 왼편부터 시계방향으로 매봉산, 백운산, 백덕산, 민둥산, 가리왕산 등 강원도의 내로라하는 고산들이 굽이굽이 늘어섰다. 매봉산 왼편으로는 더 멀리 두타산과 청옥산, 고적대를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이어짐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눈길 지르밟으면서 중함백(해발 1505m)에 도착한다.
저만치 모습 드러낸 함백산 정상도 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다
중함백을 조금 지난 전망대에서는 거의 수평으로 함백산 정상을 볼 수 있고 그 뒤로 태백산의 살짝 드러난 옆구리도 보인다. 숱한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뎌온 주목 몇 그루가 아직 살아 천년을 이어가는 중이라는 양 기운찬 모습으로 시린 눈밭을 밟고 올라서서 설분을 뿌린다.
함백산 정상(해발 1572.9m)에 이르자 작년 봄에 보았던 돌탑이 여전히 건장하게 버텨서있고 KBS중계소, 함백산 표지석 아래로 태백선수촌도 그대로다.
태백시와 정선군 고한읍 경계에 있는 함백산咸白山 일대는 우리나라의 주요 탄전지대라 석탄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산업철도와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특히 북사면에는 철도터널길이 4505m로 국내에서 가장 긴 태백선의 정암터널이 뚫려 있으며,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철도역으로 알려진 추전역이 인근에 있다. 또 서쪽사면으로는 해발 1200m 부근으로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다.
“함백 어르신, 오늘은 바빠서 이만. 훗날 기회 되면 또 뵙기로 하고 물러가겠습니다.”
“동상 걸리지 않게 다들 조심하게. 다음엔 여름에 오게나. 보여줄 게 많다네.”
추워서 오래 머물 수가 없다. 그러마고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창옥봉 방향으로 내려선다. 옛날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민간신앙의 성지였다는 함백산 기원단이 사각으로 돌을 쌓아 민간자연 유산임을 표시하고 있다. 과거 석탄을 채굴하는 광부가족들이 함백산주변으로 이주했는데 지하막장에서 석탄을 생산하던 광부들이 잦은 지반붕괴사고로 목숨을 잃자 가족들이 이곳에 찾아와 무사안전을 위해 기도했던 곳이라고 한다.
함백산과 만항재 사이의 창옥봉이라고 불리는 야트막한 봉우리를 내려서자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갯길인 만항재(해발 1330m)에 도착한다.
만항재는 늦은목이재라고 불리던 한자지명이다. 지금은 그저 하얀 눈밭이지만 만항재 산상의 화원 표지판에 국내최대규모의 야생화군락지(300여 종)라고 적혀있다. 여름에 오라고 했던 이유가 있었다. 화원을 둘러보면서 수많은 야생화가 만개했을 여름철에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먹고 가자.”
만항재에서 따끈한 고기국물을 마시니 한결 추위가 덜하다. 짧은 시간에 요기를 하고 수리봉으로 향한다. 군부대가 보이고 그 왼쪽으로 백두대간이 이어진다.
우람한 낙엽송들에 얹혔다가 바람에 흩어지는 눈가루가 햇빛을 받아 은색으로 나부낀다. 이 구간부터는 좁은 등산로에 길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하얀 포장길을 발자국 만들어가며 걷다보니 수리봉 정상(해발 1214m)이다. 여기서도 지체하지 않고 화방재로 간다.
태백산의 겨울은 철철 창의가 넘쳐난다
화방재, 함백산 날머리이자 태백산 들머리인 셈이다. 화방재로 내려서자 많은 등산객들과 그들을 태우고 온 산행버스들이 주차되어 있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다가 막 내려온 함백산을 휙 둘러보고 태백산 유일사로 걸음을 옮긴다.
1989년부터 강원도 도립공원이었다가 2016년 8월, 2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도립공원일 때보다 4배가량이나 넓어진 공원면적을 지니게 되었다. 한강발원지인 검룡소와 국내최대의 야생화군락지인 금대봉 지역이 태백산국립공원에 속하게 되었다.
또 달라진 점은 입장료징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길령을 들머리로 했던 태백산행을 화방재에서 시작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권력을 쥐면 돈 욕심이 줄어드나봐.”
“그것도 산과 사람이 다른 점 아니겠어? 사람은 권력이 생기면 돈 욕심이 더 커지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대표적이잖아.”
국립공원제도가 생기면서 국립공원의 입장료징수가 사라졌다. 입장료를 재징수하여 국립공원의 시설관리나 생태계보전에 사용하자는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다. 어쨌거나 오늘은 지갑을 열지 않고 사길령까지 왔다.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주요통로 중 하나인 사길령은 수많은 보부상들이 길게 대열을 이루며 넘나들던 고개로 맹수와 산적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태백산신령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산령각이 세워져있다.
사길령을 거쳐 유일사 쉼터를 지나면서 겨울태백을 즐기려는 산객들이 붐빌 정도로 많아졌다. 단풍철 설악산 흘림골 만큼이나 많은 산객들로 인해 길이 막히는 곳이다.
“남녀노소가 모두 모였네.”
“이 초등학생 꼬마는 많이 힘들 텐데.”
“저 잘 걸어요. 곧 중학교 들어가요.”
동택이가 걱정스러워 한 마디 던졌다가 앞서 걷던 예비중학생한테 한방 먹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태백산설화가 떠오르는군.”
신라 때 자장율사가 태백산자락에서 문수보살을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던 중 누더기차림의 노인이 칡 삼태기에 죽은 개를 담아들고 와서는 자장을 찾는 것이었다. 자장은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여 내쫓았다.
“자장이 해탈의 경지에 든 사람인 줄 알고 찾아왔는데 아직 멀었구나. 그냥 가련다.”
삼태기를 땅에 내려놓자 죽은 개가 살아나 사자로 변하는 것이었다. 사자 등에 올라탄 노인은 빛을 뿜으며 빠른 속도로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자장이 빛을 좇아 남령까지 올라갔지만 사라진 문수보살을 만나지 못했지.”
“겉만 보고 판단해서 반성하는 중이야.”
“신라 10성聖의 한사람인 자장율사도 그랬는데 뭘.”
예비중학생은 더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 태백산은 예로부터 삼한의 명산, 전국 12대 명산으로 꼽으며 민족의 영산이라 칭해왔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태백산, 토함산, 계룡산, 지리산, 팔공산의 신라 오악 중 태백산을 북악北岳으로 받들어 가을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고도에 비해 완만한 육산이라 산행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다녀갈 수 있다. 태백산일대는 산림자원이 풍부하였다. 특히 춘양목 등 양질의 소나무가 많았는데 이 지역이 석탄산지로 개발되면서 광산갱목용으로 벌채하고 대신 낙엽송을 식재하여 이 일대에 낙엽송군락이 많아졌다.
정상부근에는 고산식물이 자생하고 봄철이면 만개한 산철쭉을, 여름에 울창한 수목과 차고 투명한 명경옥수를 접할 수 있으며 가을단풍도 무척 곱고 아름답다. 뭐니 뭐니 해도 태백산은 겨울정경을 백미로 꼽는다. 하얀 눈과 조화를 이루는 주목군락을 비롯해 그 눈을 덮고 평화로이 누운 산등성이 마루금들의 설경이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최대한 높이 올라 멀리 내다볼수록 겨울태백산에서는 겨울이 얼마나 창의적 계절인지를 느끼게 한다.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소재로서의 눈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곳이 태백산이다.
태백주목은 유난히 꿋꿋하고 튼실해 보인다
역시 주목이다. 속살을 비워내고도 창창하고 풍성한 이파리를 생성해낸다. 풍파의 세월을 겪은 삶이 풍미할만한 연륜으로 다져졌음을 느끼게 한다. 그 연륜에 의해 후덕하게 드러난 거목을 보고 있노라니 결코 나이 드는 게 노쇠해진다는 것과는 절대 다르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너희들도 죽어서 주목처럼 살길 바란다.”
“동택이 좀 놓고 가면 안 될까. 산에서 내려가면 십년은 수명이 줄어들 거 같아.”
눈꽃가지 주렁주렁한 주목군락지를 통과해 장군봉에 닿으니 여기도 인산인해다.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줄을 늘어서있다. 태백산은 일곱 번째로 높은 고도(해발 1567m)지만 겨울산행에 어려움이 있다면 붐비는 등산객들 틈을 빠져나오는 정도이다.
곧 이어서 천제단.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자연석으로 쌓은 20평가량의 원형 돌 제단인데 태고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왔다. 삼국사기에 왕이 친히 천제를 올렸다고 하니 성산이자 영산으로 자존감이 강할 법하다.
1991년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된 천제단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수령과 백성들이 천제를 지냈고, 조선후기에는 쇠약해지는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지사들이, 일제강점기에는 조국을 되찾기 위한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렸던 성스러운 곳이다. 이곳 정상일대를 망경대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처럼 신년 초에는 일출을 보며 새해소망을 기원하고자 전국각지의 산객들이 모여든다. 석비에 붉은 글씨로 한배검이라고 새겨놓았는데 단군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단군제를 올리는 석단에서 많은 산악모임이 시산제를 지내기도 한다.
“전하! 어디로 가시나이까?”
조선 세조 3년 가을 저녁나절, 태백산자락인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에 사는 주민들은 영월의 관아에 일이 있어 가던 길에 흰 말을 타고 오는 단종을 만났다.
“태백산에 놀러 가느니라.”
단종이 말을 탄 채 대답하고 홀연히 앞서갔다. 영월에 도착한 석포마을 주민들은 그날 낮에 이미 단종이 죽임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을 무척 동정했던 석포마을주민들은 조금 전 길에서 만난 단종이 그의 영혼이며, 죽은 단종이 태백산에 입산한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까지도 무속신앙을 믿는 이들은 태백산꼭대기와 산 아래 춘양면 석벽리 등지에 단종의 비각 또는 화폭을 걸어놓고 단종의 신령을 섬긴다. 망경사 부근의 단종비각端宗碑閣을 보면서 백마를 타고 태백산 산신이 된 단종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이래저래 제사 지낼 일이 많은 산임은 분명해.”
“태백산에서 자연인생활하면 밥 해먹는 수고는 덜겠군.”
“역시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비상한 동택이야.”
망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전설에 의하면 태백산 정암사에서 말년을 보내던 자장율사가 이곳에 문수보살의 석상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찾아와 절을 지어 석상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경내에 멋지게 용의 형상을 조각한 석조 아래 둥그런 돌샘 두 개가 있고 파란색 플라스틱바가지가 놓여있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제일 먼저 받아 우리나라 명수백선名水百選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는 용정龍井으로 낙동강의 원천이 된다고 한다.
“크아, 이렇게 시원할 수가.”
마시는 이들마다 이구동성으로 그 시원함에 감탄한다. 태백산정기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그 정기가 짜릿하게 식도를 타고 장까지 스미는 걸 느끼게 된다. 천제를 지낼 때 제수로 썼다는 해발 1467m의 샘물을 마시고 부쇠봉으로 힘찬 걸음을 내딛는다.
부쇠봉으로 향하면서는 인파가 눈에 띄게 줄었다. 대다수 반재 하산로를 택해 내려가기 때문이다. 천제단 아래쪽 또 다른 제단인 하단을 지나 부쇠봉 가는 좁은 길은 더 많은 눈이 단단하게 굳어있다.
부쇠봉(해발 1547m)에 올랐다가 오른쪽 백두대간이 이어지는 길 반대편의 문수봉으로 향한다. 바위봉우리들이 하나의 산세를 이루는 북한산 문수봉과 달리 이곳의 문수봉(해발 1517m)은 바위덩어리들이 마당을 이룬 곳곳에 세 개의 커다란 돌탑이 세워져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면 크기가 다른 각각의 돌들이 섬세하게 채워져 탑을 형성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봉우리주변에 깔린 퇴적암들을 보니 아주 옛날엔 여기까지 바닷물이 차올랐거나 바다였을 거란 생각이 스친다. 천제단과 그 밑으로 망경사를 내려다보고 문수봉과 작별한다.
소문수봉은 조망 면에서 문수봉보다 낫다. 백두대간을 타고 경상북도와 경계를 이루는 산등이 길고 넓게 펼쳐있다. 비닐포대를 깔고 미끄럼 타며 내려갔던 때를 떠올리면서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당골로 하산하는 중 다리 밑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눈과 함께 꽁꽁 얼어붙었다. 조금 지나면 차디찬 옥수가 청아한 흐름소리를 낼 것이다. 숲길을 지나 당골광장에 닿으면서 함백산부터의 산행을 마치게 된다.
산은 도심 속 공원이 아니다. 산은 자연의 비중이 문명에 밀리는 순간부터 속세가 된다. 광장에 설치된 무수한 인위적 시설들을 보노라니 혹여 국립공원으로서의 자존감이나 명예로움에 묻은 티끌이 큰 자국의 생채기로 이어질까 노파심이 생긴다.
“태백이시여! 국립공원의 명함을 하나 더 지녔지만 부디 더 이상은 사람들 손길 닿는 군더더기 치장만큼은 마다했으면 좋겠군요.”
때 / 겨울
곳 / 두문동재 - 금대봉 - 은대봉 - 중함백산 - 함백산 - 만항재 - 수리봉 - 화방재 - 유일사 - 태백산 장군봉 - 천제단 - 부쇠봉 - 문수봉 - 소문수봉 - 당골 석탄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