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 깨달음 그리고 길
저희 교회 다니는 학생이 어느 날 친구 따라 다른 교회를 다녀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목사님! 다른 교회 갔는데 예수님만 믿어야 착한 사람이래요. 맞아요? 예수님 믿어야 착한 사람이고 예수님 안 믿으면 나쁜 사람이예요? 그리고 예수님 안 믿으면 지옥 간데요. 이상해요. 예수님이 좋은 분이라는 건 알겠는데 예수님 안 믿는다고 지옥가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비단 이 학생만이 느끼는 걸까? 지하철이나 광장을 지날 때 공원 가로수 길이나 상가 빌딩 숲을 지날 때 소위 노방 전도를 하러 다니는 많은 분들을 만난다. 그리고 교회 다니시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다니지 않으면 교회 다닐 것을 권유받는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때 가끔식 뒤통수를 통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 안 믿으면 지옥가는데...” 그럴까 정말 그럴까?......
예수님을 믿으라는 신앙이야기는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된 유일한 하느님의 아들이고, 그는 우리 죄를 위해서 오셨고, 그분을 믿어야 우리가 죄로부터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로 전개된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마태의 기록은 당시 초기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예수라는 분이 특별했다라는 표현이다. 김알지가 알에서 태어나고 석가모니가 엄마 옆구리에서 태어나자마자 두발로 서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는 기록을 읽을 때는 사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성서 이야기를 읽을 땐 유독 사실성에 민감하다. 과학 이전의 옛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 분들을 표현할 때 쓰는 문학양식이다.
하느님의 아들도 마찬가지다. 예수님 당시 하느님(신), 하느님(신)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로마의 황제에게 쓰는 언어였다. 즉 예수님이 황제라는 고백이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란 고백은 제국의 황제에 충성하지 않고 예수의 가르침과 그분의 삶, 그분이 꿈꾸셨던 세상에 충성하겠다고 하는 초기 크리스챤의 신앙적 열정(파토스)을 담고 있다.
죄에 대한 이야기는 상식선에서 해보자. 내가 옆집 가게에서 배고파서 빵을 훔쳐 먹었다. 그런데 친구가 와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빈다. 그리고 빵 값도 지불한다. 그럼 내 잘못은 없어지는 것인가? 가끔씩 드라마에서 자식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부모가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다. 몰랐을 때의 이야기다. 누구도 대신 죄값을 치를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푼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저지른 죄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서도 푼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장 먼저 전한 복음은 “회개하라 천국(하나님 나라)이 가까웠느니라”이다. 예수님의 첫 복음은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메시지였다. 양과 소와 비둘기를 제사장에게 갖다 바쳐도 내가 지은 죄 값을 대신 치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회개하고 변하지 않으면 말이다. 예수님은 제사장 중심의 성전희생 제사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돌이키고 회개하라 가르치신다. 죄를 지으면 잘못했다고 사죄하고 대가를 지불하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게 상식이다. 종교도 상식 위에 있다.
기독교는 이 상식 밖의 이야기를 믿으라 한다. 그래서 믿지 못하면 믿음이 없다 한다. 어떻게 처녀가 애를 낳아요?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라한다. 역사적 예수 연구가인 마커스 보그에 의하면 지적 동의를 잘 하는 사람이 믿음이 좋고 신앙이 좋다는 이야기다. 그럼 그렇게 해서 지적으로 이런 이야기에 동의를 하고 믿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 좋은 거고 내가 지은 죄를 누군가 대신 죄를 사해주고,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내 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삶을 살게 하고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잘 믿으면 그가 우리에게 복과 은혜를 내려주신다는 것에 의지해서 마치 예수님을 부적처럼 주술화하고 도깨비 방망이화 하는 것이 좋은 신앙을 가지며 사는 것인가? 기독교신앙은 그리고 예수의 삶은 그렇게 값싼 게 아니다.
다시 질문해 보자. 그럼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가? 아니 신앙이란 무엇인가?
창세기에는 천지 창조 이야기가 두 가지 버전으로 나온다. 세상이 두 번 창조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두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역사적인 상황에서 쓰여졌다. 첫 번째 이야기(창1장 1-2장 4절)는 만물이 창조되고 제일 나중에 사람이 창조된다.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창조된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사람이 창조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또 하루가 지났다>, <보시기에 좋았다> 등의 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7일째는 하느님도 쉬셨다. 이 이야기는 원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이 죄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복된 은총의 존재라 고백하고 있다. 원죄론에 빠져있는 우리를 무척이나 당황하게 하는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창 2장 4절 이하)는 사람이 자연보다 먼저 창조된다. 남자가 먼저 창조되고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신다.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다. 사람은 생명의 영에 의해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 그런 사람이 불순종, 책임회피, 질투, 교만의 바벨탑을 쌓아가면서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진다. 첫 번째 이야기가 복의 이야기라면 두 번째 이야기는 죄(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짐, 인간의 유한성 혹은 약함이라고 말하고 싶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바벨론 포로기에서 돌아온 유대민족이 민족을 재건하면서 기록한 이야기다. 이들은 바벨론의 무지막지한 전쟁의 신 마르둑의 창조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 이 창조이야기에 의하면 전쟁을 통해 서로 죽고 죽이고 그 죽인 시체로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을 만든다.
창조는 전쟁에서 이긴 힘있는 자들의 몫이다. 그런데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유대민족은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에 그들의 정신이 흡수당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쟁에 패하고 포로로 끌려갔다 왔을지라도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여전히 선하시며 모든 사람 안에는 하느님의 형상이 있고 이 세상은 여전히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일뿐이다. 인간이 악과 전쟁을 일삼고 창조세계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첫 번째 창조이야기는 창조(생명-인간,자연)세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한편의 시요, 교독문이다. 길을 걷다가 길가에 피어있는 꽃을 보면서 감탄해 본적이 있는가? 산에 오르며 산들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새소리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에 온 마음을 빼앗겨 본적이 있는가? 마치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만 같은 삶의 순간을 살아가다가 이미 나보다 먼저 나의 삶을 깊이 위로하고 따스하게 감싸고 계시는 그분의 손길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정신없이 바쁘게 쫒기며 살다가 어느 순간 그렇게 찾아 헤매던 봄이 내 집안에 와있음을 깨닫고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신앙은 깨달음이다.
도로테 죌레는 신비는 곧 하나 됨이라 했다.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나와 자연이 나와 타인이 둘이 아님을 깨닫는 삶의 순간이 있다. 톨스토이가 말한 것처럼 타인을 위한 선행이 곧 자기를 위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소통과 공감과 고통을 함께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대상화했던 그것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신비주의자가 된다. 신앙은 하느님이 우리 안에 이루신 신비와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 하나 됨을 인식하고 깨닫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변화이다. 하느님의 형상, 에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부버가 이야기 한 것처럼 나와 그것의 관계가 인격적이고 사랑의 관계인 나와 너의 관계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거짓 나에서 참 나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예수의 길을 따라 옛 자아가 죽고 참 자아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다. 마커스 보그에 의하면 두 번째 창조이야기의 핵심은 눈멀고 귀먹고 그래서 길을 잃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우리가(내가, 우리가, 우리 사회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여로에 들어서는 것 그것이 곧 신앙이며 그 길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참 생명(사람, 존재)이 된다고 말한다. 즉 신앙은 신비와 사랑의 힘으로 참 인간의 길 그리고 예수님이 꿈꾼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길(道)이다.
준영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옥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참 나를 잃고 살아가는 곳, 그런 세상이 바로 곧 지옥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길벗 삼아 참 삶을 위한 길(道)을 걷는 사람들이라고.
질문 1 : 내가 생각하는 신앙,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질문 2 :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신앙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