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當今之時勢
李 珥
손님이, “오늘날에도 삼대(三代)의 치화(治化)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주인이, “할 수 있습니다.”
손님이 맥없이 웃으며 말하기를, “어찌 그리 지나친 말을 하십니까? 왕도가 실행되지 않은 것은 한(漢)나라 때부터인데 하물며 지금 사람은 한나라 사람보다도 훨씬 못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기자(箕子) 이후로는 다시 선정(善政)이 없었고, 요즈음의 세속(世俗)을 말하자면, 반드시 전조(前朝 고려(高麗))도 따라가지 못하니 만일에 형세가 조금 좋아지는 것을 바란다면 몰라도 왕도를 행하고자 한다면 한갓 선비의 헛된 큰소리만 되지 않겠습니까?”
주인이 안타까워하며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안타깝습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도 혀를 따르지 못한다.’ 하니, 그대의 말대로 한다면 반드시 온 천하(天下)가 도깨비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대체로 왕도가 실행되지 못한 것은 다만 임금과 재상이 적격인 사람이 아닌데 원인이 있는 것이지, 시대가 내려왔다고 해서 회복하고 싶어도 안 되는 것이겠습니까? 그만한 임금이 있고 그만한 재상이 있으면 이때가 왕도를 회복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정자(程子)의 말에, ‘사람이 없는 것이지 어찌 그때가 없는 것이겠는가. 그 일을 하면 반드시 그 공이 있는 법이니 그 일을 하고 그 공이 없었다는 것은 고금(古今)에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대가 ‘요즈음의 세속이 전조만 못하다.’라고 말한 것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전조의 세속은 오랑캐의 풍습을 면하지 못하였으나 우리 조정은 예로써 백성을 인도하여 자못 아름다운 풍속이 있으니, 상사(喪事)에 《가례(家禮)》를 쓰고, 여자가 한 사람의 지아비를 섬긴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어찌 전조만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에 왕도를 행할 만한 좋은 형편이 두 가지 있고, 할 수 없는 형편이 역시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할 만한 형편이냐 하면, 위에 성명(聖明)하신 임금이 계신 것이 할 수 있는 좋은 형편이요, 아래로 임금의 권한을 빼앗는 간신(奸臣)이 없음이 할 수 있는 좋은 형편입니다. 무엇이 할 수 없는 형편인가 하면, 하나는 인심이 함익(陷溺)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기(士氣)가 꺾임이 심하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손님이 말하기를 “상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임금의 용안이 빼어나시고, 자질이 영특하시며 총명하여 학문을 좋아하시고, 공손하고 겸손함으로 선비를 사랑하시고, 양전(兩殿)에 효성을 다하시고, 모든 일에 마음을 쓰시니 이것은 참으로 불세출(不世出)의 성군(聖君)입니다. 치도(治道)가 서지 않은 데 대한 걱정은 오로지 임금다운 임금이 없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임금이 계시니 어찌 다스려지지 않음을 걱정하겠습니까? 이것이 할 수 있는 형편의 하나이고, 옛날부터 임금이 정치 잘하기에 뜻을 두었더라도, 임금의 권한을 빼앗는 권신(權臣)이 있어 임금을 위협하면, 아무리 해 보려고 애써도 할 수 없게 되는데, 우리나라가 사병(私兵)을 폐지한 이후로 소위 권신이란 자들이 모두 임금의 은총(恩寵)에 의지하여 위엄을 부릴 뿐 감히 임금을 업신여기고 정도의 기강(紀綱)을 범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남곤(南袞) 같은 간특(姦慝)함과 김안로(金安老) 같은 사험(邪險)함과 이기(李芑) 같은 흉악함과 정순붕(鄭順崩) 같은 음휼(陰譎)함과 윤원형(尹元衡) 같은 험독(憸毒)함과 이량(李樑) 같은 패망(悖妄)함으로도 임금이 부르면 오고 내쫓으면 물러가서 오직 임금의 명령대로만 하였는데, 하물며 지금은 그런 간신들이 조정에 없으니 임금님께서 만약 큰일을 하고자 한다면 누가 감히 화를 일으킬 마음을 품고 성상을 현혹시키겠습니까? 이것이 그 할 수 있는 형편의 둘째입니다.
소위 인심이 함익(陷溺)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대개 보통 사람들의 감정은 아침저녁으로 보는 물건은 익숙하여 괴상하게 여기지 않지만, 먼 지역의 괴상하고 이상한 물건이라면 뭇사람이 놀라고 손가락질하며 웃을 것입니다. 왕도가 이 세상에 행해지지 않은 지가 벌써 수천 년이 되었으니, 왕도를 알고서 숭상할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저 무지해서 견식이 없는 무리 들이 세상 풍속에 젖어 있고 관습에 익어져서 하루아침에 왕도가 회복되어 이 세상에 행하여지는 것을 보면 반드시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서, 먼 곳의 괴이한 물건을 본 듯한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온 세상이 떠들썩하여 그 시끄러움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임금의 마음도 견정(堅定)된다고 보장할 수 없고, 똑똑하다는 사대부(士大夫)들도 작은 것에는 밝아도 큰 것에는 어두워서 안정을 좋아하고 개혁을 꺼려서, 장차 일어나서 유속(流俗)의 앞잡이가 될 것이니, 개혁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 죄를 얻지 않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니 어찌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큰일을 할 수 없는 형편의 하나입니다.
소위 사기(士氣)가 몹시 꺾였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국초(國初)에는 전조(前朝)보다 인재 교육(人材敎育)이 훨씬 성했으나, 연산(燕山) 시대에 임사홍(任士洪)이 불측(不測)한 마음을 품고 사림(士林)을 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남은 기운이 아직도 대단해서 기묘년에 잔인하게 짓밟았고, 그래도 실오리같이 이어 오던 숨결이 있었는데 을사년에 베고 끊어 버렸기에, 그 후부터 선(善)을 하는 자는 서로 경계하고 악을 하는 자는 서로 권장을 하여 만약 두각(頭角)을 나타내는 것이 조금 남다르고 논의(論議)가 조금 바른 선비가 있으면, 부형(父兄)의 책망을 받게 되고 이웃과 마을에서 배척을 당하게 되고 오직 모호한 태도로 부귀만을 탐내는 자가 잘 먹고 편히 앉아 벼슬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정의 대소 신하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심조심하여 기묘년과 을사년의 전철을 밟을까 경계하여 감히 정기(正氣)를 돕는 소리를 한마디도 내지 못하고, 다만 여우처럼 의심하고 쥐처럼 주저하며 오히려 세상 풍속을 조장할 뿐이니, 이것이 큰일을 할 수 없는 좋지 못한 형편의 또 한 가지입니다.”라고 하였다.
손님이 말하기를 “할 수 없는 형편이 이와 같다면 삼대의 정치를 회복하려 하여도 때가 이미 아닌데,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니,
주인이 말하기를 “정치가 잘되고 문란하게 되는 것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고, 때와는 관계되지 않는 것입니다. 때란 것은 윗자리에 있는 이가 만드는 것이니 만약에 우리의 임금이 분연(奮然)히 일어나서 옛 정치를 회복하고자 하신다면 함익(陷溺)된 인심은 건져 낼 수 있을 것이며 사기(士氣)를 꺾인 끝에서라도 진작시킬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때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