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36일간의 짧은 법무장관 재임을 전후로 장관지명, 청문회, 검찰조사, 정경심 교수의 기소, 가족의 수난, 검찰개혁, 검언유착 등에 대한 사실과 의견을 정리한 책이다. 논평은 할 필요가 없고, 몇 군데만 발췌 인용해서 조국의 생각을 이해하려 해 본다.
1. 대국민사과문
젊은 시절부터 정의와 인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며 학문과 사회활동을 펼쳐왔고, 민정수석으로서는 권력기관 개혁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 인생을 통째로 반성하며 준엄하게 되돌아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개혁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이 문제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음을 겸허히 고백합니다.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들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말았습니다. 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고, 기존의 법과 제도에 따르는 것이 기득권 유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송구합니다. (195~196쪽)
2. SBS의 놀라운 '예언' 보도
9월 6일 자정 인사청문회가 끝나갈 무렵, 검찰은 동양대 정경심 교수를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다음날 9월 7일 SBS는 정 교수가 연구실 PC를 이용해 위조한 표창장 파일이 나왔다고 '단독' 보도했다. ... 그런데 검찰이 '강사휴게실PC'를 임의제출 형식을 빌려 확보한 것은 9월 10일 저녁이었고, 포렌식을 한 것은 9월 11일이었다. SBS는 무려 나흘 전에 '예언보도"를 한 것이다. 의아하고 궁금하다. 이 보도의 최초 정보제공자는 누구였을까. 첫째, 표창장이 (재)발급되었음을 알고 있고, 둘째, 표창장이 '위조'되었다고 알리고 싶은 사람만이 검찰 또는 언론에 제보할 수 있다. 검찰은 강사휴게실PC를 확보하기 전이다. 누구일까. 동양대관계자 외에는 없다. (24쪽)
3. 윤석열의 조국불가론
조국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하면 안 된다. 내가 봤는데 몇 가지는 아주 심각하다. 법대로 하면 사법처리감이다. 내가 사모펀드 쪽을 좀 아는데, 이거 완전 나쁜 놈이다. 대통령께 말씀드려서 임명 안 되게 해야 한다.(53쪽)
4. 한국 검찰은 준정치조직
저에게 이런 얘기 하더라고요. '김기자도 옛날에는 모택동의 모순론 읽어봤지? 모택동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지금은 권력은 칼끝에서 나와'라고요. '예전에는 군, 중앙정보부, 경찰 등의 물리적 폭력, 즉 총구에서 권력이 창출되었지만 이제는 법리적인 검사의 칼끝에서 나오는 거다. 정권을 만들고 보위하는 일에까지 검사가 전면에 나서게 됐다'라고 표현하더라고요.(115쪽)
5. 검찰과 언론의 표적사냥
윤석열 검찰이 조국 전 장관을 허위작성공문서행사, 업무방해, 뇌물수수 등 모두 12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8월 27일 강제수사에 들어간지 126일만에 100명이 넘는 수사진을 투입한 결과다.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88일)를 넘어 박근혜 전 대통령(151일)에 버금가는 기간이고 수사진 규모다. 과연 이 사안이 '인디언 기우제'를 벌이듯 혐의가 나올 떄까지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인력을 투입할 만한 수사였나? 근본적으로 특수부가 맡아야 하는 권력형 비리의 인지수사인가? 환부만 도려낸 수사였나? 모두가 알듯이 오장육부까지 다 파헤쳤다. 정경심 교수 조사로 안 되니 아들에 딸에 사돈의 팔촌까지 뒤지다시피 했다. 유재수 사건, 울산 사건 등 별건수사와 별건의 별건수사까지, 곁가지를 치는 수준을 넘어 옆 나뭇가지까지 수사를 펼쳤다. (167쪽)
6. 검언정 유착의 프레임
검찰은 공식적으로 수사가 개시되면 미리 준비한 작은 건수들을 모아 검찰 출입기자 누군가에게 던져준다. 그러면 그 기자는 '단독'이라고 보도한다. 그리고 그 단독 기사를 모든 언론이 다 따라 쓴다. 얼마간 있다가 다른 검찰 출입기자에게 다른 자료를 준다. 이런 식으로 몇 개의 단독을 몇 개의 언론이 돌아가면서 터뜨리고 나면 한국당이 조국 장관 지명 철회를 요구한다. 의혹은 검찰이 일방적으로 만들고, 언론이 보도함으로써 그 의혹의 근거가 된다. 한국당은 마침내 조국 가족을 검찰에 고발하고 그러자 언론은 마치 그것이 범죄가 확정된 것으로 과장해 보도한다. 이어서 검찰은 전격적으로 조국 가족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고, 그 수사정보를 언론에 흘린다. 기자들의 손끝에서 조국과 그 가족은 파렴치한, 위선자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범법자로 전락한다. (182쪽)
조성식 전 신동아 기자가 사용한 개념을 빌리면, '검찰이 흘리고 언론이 받아 키우며 검찰이 힘을 받는 이른바 '검언검 3단계 순환형 검언유착 패턴'이었다. 여기에 정치권이 가세하면 '검언정언검 5단계 패턴이 작동한 것이다. (183쪽)
7. '살아 있는 권력 수사(살권수)'는 가짜 개혁이다.
첫째, 누가 살아 있는 권력인가. 나와 내 가족의 혐의가 권력형 비리가 아님은 법원에서 계속 확인되고 있다.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권력이 범한 범죄가 아니다. 특히 가족이 검찰의 수사대상이 되는 순간부터 나는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권력은 가족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표적수사, 저인망수사, 별건수사, 별별건수사를 벌인 검찰이었다. 게다가 윤석열 총장은 현직에 있을 때부터 수구보수진영의 가장 강력한 대권후보였다. (312쪽)... 불가리아의 전 검찰총장 이반 타타르셰프는 말했다. "내 위에 있는 건 신뿐이다" 이러한 호언장담을 할 수 있는 검찰총장은 불가리아 외에 한국 정도가 있을 것이다. (312쪽)
둘째, 살권수의 동기와 목적은 무엇인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든, 죽은 권력을 수사하든, 중요한 건 수사의 동기와 목적이다. 산 권력을 대상으로 삼는다고 해서 모든 수사가 정당하고 정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나와 내 가족 사건에서 살권수는 검찰개혁을 무산시키려는 동기와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한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조정이 법률로 확정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검찰 내부에 형성되어 있었다. (313쪽)
셋째, 살권수의 대상은 공정하게 선택되는가. 2014년 정윤회 문건 보도로 박근햬,최순실 국정농단의 단초가 포착되었을 때, 검찰은 이를 깊게 수사하기는커녕 이를 작성한 박관천씨를 구속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박근혜, 최순실이라는 살아있는 권력을 칠 생각이 없었다. 실제 검찰은 권력수사에서는 죽은 권력 또는 죽을 권력을 물어뜯는 하이에나 수사를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2019년 하반기 이후 전개된 일련의 검찰수사는 검찰의 쿠데타 또는 검란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당시 검찰은 문재인 정부를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라 곧 죽을 권력 또는 죽어야 할 권력으로 판단했다고 본다.
8. 안대희를 넘어
두 명의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윤석열은 '조국 수사'와 검찰개혁 공방이 진행되는 어느 시점에 문재인 대통령도 '잠재적 피의자'로 인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울산 사건의 공소장이 그 방증이다. 그 즈음 '미래 권력'의 꿈을 꾸기 시작했을 것이다. 검찰 조직 안팎에서 '대망'을 가지라는 조언이 답지했을 것이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된 그는 문재인 정부를 곧 죽을권력이라고 판단하고, 자신이 지휘하는 고강도 표적수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를 압박해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320쪽)
9. 대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사권력
다른 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검찰,법조 쿠데타'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는 브라질에서 룰라 대통령이 어떻게 구속되는지, 후임자 지우마 대통령이 어떻게 탄핵되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결정적 역할을 한 세르지우 모우 연방판사(한국의 검사와 유사한 역할)는 "세차작전"으로 불린 수사를 한다. 이 수사와 기소로 룰라,지우마 두 대통령이 이끌던 노동당 정부가 무너지고 극우파 정치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집권했으며 모우는 법무장관이 된다. 이후 모우는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불화로 사임했고, 현재는 2022년 대선 철마를 고려하고 있다. (342쪽)
룰라는 실형선고를 받고 복역하다가 대법원 심리에 들어가면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 세차작전에서 모루와 연방검사들이 룰라 기소에 앞서 텔레그램을 이용한 비밀대화를 통해 의견을 조율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2021년 3월 연방대법원은 모루의 재판 진행과 판결이 부당하고 수사과정에서 수집한 룰라 관련 증거를 재판에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내렸고, 4월 15일 연방대법원 전원회의는 룰라에 대한 실형선고 무효 결정을 다수의견으로 재확인했다. (343쪽)
나는 브라질(룰라 구속)이나 이집트(무바라크 사후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무르시 구속 및 옥사)의 사례 이외에, 윤석열 총장의 모습에서 미국 FBI 초대국장 존 에드가 후버의 모습을 보았다. 후버는 48년 동안 국장 자리에 있으면서 트루먼, 닉슨, 케네디 등 대통령들을 협박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트루먼 대통령이 국외 첩보를 전담하는 CIA를 창설한 것도 후버의 막강한 권려글 막기 위함이다. 후버는 선출되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그는 수사권 남용을 넘어 허위정보를 언론에 흘려 무고한 사람들을 탄압했다.
10. 나를 밟고 가시기 바랍니다.
"나의 가장 중대한 잘못 탓입니다." (Mea Maxima Culpa).
나를 밟고 전진하시기 바란다. 다만, 나에 대한 비판이 검찰에 대한 맹목적 옹호나 윤석열 총장에 대한 숭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경고한다. 정치적 편항이 드러나는 수사, 안면몰수하고 제 식구 감싸는 조직 이기주의, 인권 침해를 야기하는 과잉, 별건수사 등 검찰권 남용이 있어서는 안 된다.
법치는 절대 검치가 아니다. 법치도 민주와의 조화 속에서 작동해야 한다. 검찰은 정치권력을 넘어서는 강고한 기득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제권력과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362쪽)
공증인가 법무법인 세인 대표변호사 강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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