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2008년 9월27일 - 경기평화통일마라톤(임진각)
깊어가는 가을 임진각을 오전 9시에 출발하여 통일대교를 건너 5Km 민통선 구간을 달려가니 북녘 산하가 손에 잡힐 듯 보이고, 판문점 7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오고가는 사람도 없는 모퉁이에 서 있다. 5분 쯤을 북쪽으로 더 달리고, 출발 35분이 지날 무렵 선두가 대열의 방향을 남쪽으로 바꾸면서 나는 2008년 9월27일 평화통일마라톤 풀코스 대장정에 들어서 있다. 임진각에서 출발한 지 40여분이 지나면서 주자들의 발걸음은 경쾌하고 빠르게 달려온 회색의 하프코스 주자들과 보라색의 풀코스 주자들이 마치 남,북이 하나가 된 것처럼 어울려 앞으로 나가고 있다. 불편한 몸으로 넘어질 듯 달려가는 장애인, 노모의 휠체어를 밀며 달리는 젊은이 그리고 누런 들판에서 추수하는 가을 농부와 그 위를 맴도는 잠자리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오늘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조용한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평화롭기가 이를 데 없고 어쩌다 마주치는 정복 차림의 군인이 여기가 적과 대치하고 있는 군부대 지역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정도다. 초반의 코스가 열십자 모양이라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이었는데 선두가 사목교 끝을 돌아 임진강역을 좌측에 두고 문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면서 일직선 도로를 달리고 본격적인 레이스에 접어든다. 형형색색 주자들과 가장자리 경의선 열차가 평행선을 이루며 1시간 이상을 달려온 15Km 마정교차로, 하프코스 주자들이 반환점을 돌아 왔던 길을 가고 풀코스 주자들은 완만한 곡선이 길게 이어진 여우고개를 넘어선다. 언덕을 넘어 오른쪽으로 돌아 20킬로 문산 시내로 접어드니 한적한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낡은 버스 안의 표정 없는 승객들 뿐이다.
11시30분 25Km 지점을 통과하고 왼쪽으로 보이는 반달같이 세련된 파주역을 바라보며 남북으로 환하게 트인 시골길을 달려 월롱교차로를 지나니 30Km 안내판이 자리를 하고 있다. 주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꼭 완주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아담한 내포리 마을을 벗어나는데 극심한 통증으로 발을 내딛기가 어려울 정도로 고통이 시작된다. 파이팅을 외치는 주변의 소리조차 귀에 들리지 않고 시야조차 흐릿해 질 무렵 지나간 일들이 스쳐간다. 전날 밤까지 통화를 한 큰형을 아침에 급작스런 죽음으로 맞이한 슬픔, 2007년 투자한 사업의 부도와 거동을 못하시는 어머니에 대한 충격, 20년을 넘게 매진해 온 강의 현장을 떠난 공허감, 절친한 친구이자 사업동료의 죽음, 패기와 자신감이 충만했던 내 모습을 상실하고 40대 후반을 살아가는 무기력한 현재의 삶까지.
육체적 한계가 있을 것인데 정신력으로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것인지 넋두리를 하면서 한참을 달려 35Km 급수대 앞에 섰다. 머리에서부터 목욕하듯 물을 적시고 다시 얼마쯤 뛰었을까, 여우고개를 반대쪽에서 오르는 험난한 코스에 접어들고 있다. 머리를 숙이고 발가락만으로 제자리를 뛰듯 오르니 백발이 성성한 노(老) 주자가 화이팅을 외치며 나를 추월해 나가고 그를 따를 양으로 속도를 내보았지만 체력은 여기가 한계다. 고개를 넘으며 뒤를 돌아보니 멀리 달려오는 주자들이 자신과 싸우며 언덕을 오르는데 5시간이든 6시간이든 저들은 분명 위대한 승리자들이다. 고개 아래로 내리막을 지나 삼거리 왼쪽으로 돌아드니 멀리 희망의 골인 아치가 보이고 갈증과 피로는 극도에 달한다.
일찍 완주한 사람들이 자리를 뜨기에 충분한 시간, 골인 아치에 들어서니 시간은 4시간 59분을 지나고 환호도 없는 텅 빈 공간에 딸과 아내가 허수아비처럼 제자리에서 나를 보고 있다. 완주보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책감과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42.195Km의 두려움을 지워 나간 한강을 달린 시간은 행복한 자국으로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임진각을 빠져 나올 무렵 얼마를 달렸는지 멀리서 휠체어에 노모를 모시고 달리던 주자가 마지막으로 들어오고 서쪽의 저녁노을은 그를 비치고 있다. 유난히 맑고 청명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가을나무 사이로 호흡을 모으고 풀코스 출발선에 다시 서게 될 당당한 내 모습이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