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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
어제보다 허리의 통증이 많이 나아졌다. 병원이나 약국을 다니는 대신 물리치료를 한다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체육관에서 보낼 것이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 학교에 도착하니 7시10분이 되었고 입실시간이 촉박하여 아들은 차에서 달려나가기에 정신이 없다. 아침에 조금만 일찍 일어나면 좋겠는데 중학교 시절이나 지금이나 교문에서 아들을 보내고 마음을 졸이기는 마찬가지다. 시간뿐 아니라 무엇을 하든 게으름을 피우다가 맨 마지막에 가까스로 처리하는 일상은 아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버려야 할 습관이다. 집으로 돌아와 딸을 학교로 보내고 오전 중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은 해가 뜨고 하늘이 맑아 마치 청명한 가을날 같기도 한데 바람이 차가워 봄이라기에는 이르고 아직도 겨울의 끝자락임이 분명하다. 닭죽으로 점심을 먹고 안방에서 일요일에 수업할 교재를 보는 사이에 산에 갔던 아내가 돌아와 바로 논술교실에 올라간다. 오후가 되어 사업이 어렵다는 영식이의 하소연하는 전화가 왔고 서초동에서 보자는 것을 허리 컨디션을 이유로 다음으로 미루었다. 집에 혼자 있으면서 떡을 물에 담갔다가 파와 계란을 넣어 간식으로 떡국을 만들어 먹었더니 맛이 있어 좋았다. 컨디션도 그렇지만 일요일 강의를 생각하여 오늘은 외출도 하지 않고 집에서 보냈는데 한가함과 답답함이 동시에 생겼다. 일찍 수업을 마쳤다는 아내가 돌아와 저녁식사로 생선매운탕을 만들어 모처럼 이른 시간에 함께 저녁을 먹었다. 거실에서 TV를 보는 중에 평소에 말도 안하는 아들이 들어오더니 불쑥 배드민턴 라켓을 사 달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무작정 요구만 하니 무슨 용도로 어떤 라켓을 구입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대답을 못한 나는 순간 벙어리가 되었다.
17일 서울의 새벽 기온이 영하 2도까지 내려간 쌀쌀한 아침에 아내는 딸과 거실에서 자고 나만 안방에 혼자 있다. 6시50분 아파트 아래에서 아들을 기다리다 오늘도 가까스로 수업시작 직전에 교문에 도착했고 허둥대며 달려가는 모습도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무국으로 식사를 하고 체육관에 나가 운동을 마친 뒤에 바로 성북동학원으로 달려갔다. 어제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나간 것인데 서류와 수업일정까지 역시 처리할 일들이 많았고 점심도 학원근처에서 사 먹었다. 오후에 아들의 배드민턴 라켓을 구입하라는 아내의 문자가 와서 집에 있는 것도 괜찮다고 했더니 더 좋은 것을 사 주라고 여러 번 강조를 한다. 눈이 내리는 초저녁에 영어와 수학선생에게 강사료를 지불했는데 금액에 관게없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더 없이 고마웠다. 학원을 마치고 남영동에 10시에 도착하여 영식이와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눈이 펑펑 내리는 깊은 밤에 들어왔다.
18일 늦게 들어와 자는 바람에 아들의 등교시간을 맞출 수 없었고 10시에 일어나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만 하고 돌아온 오전이다. 아들이 다니는 이대부고 공개수업을 하는 날이라 아내와 함께 도착하여 교실에 들어가니 음악수업 중이었고 번호가 2번인 아들은 껑충하게 맨 앞쪽에 앉아 있다. 오늘 딸의 학교에서도 공개수업과 학부모 총회가 있다기에 수업을 참관하는 아내를 이대부고에 두고 멀지 않은 동명여중으로 차를 몰았다. 처음 들어간 중학교에서 학부모총회까지 한다니 내용도 긍금했지만 딸을 위해서도 부모 중 누군가는 참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이동한 것이다. 차를 운동장에 주차하고 강당 3층으로 올라가니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어머니들 뿐이고 아버지는 나 혼자라서 당황스러웠다. 그런가하면 나를 선생으로 아는지 보는 사람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심지어 자리까지 양보하는 열성을 보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색한 시간이 흐르는 사이 친구한테 전화가 와서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밖으로 나왔다. 딸의 담임을 만날 생각도 못하고 이대부고로 돌아와 총회가 있는 강당으로 들어가니 2010년 이대부고 수업계획과 일정을 학교측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늘 이대부고 총회에 참가한 학부모는 강당에 가득할 정도의 300여명이나 되는데 여기도 모두 어머니들이고 아버지는 맨 뒤에 있는 나를 포함하여 다섯 명이다. 총회를 마치고 6반 교실로 이동하여 내 나이와 비슷해 보이는 시인같은 담임 유영근 선생과 인사를 나누었더니 반장인 아들 칭찬부터 늘어 놓는다. 5시경 집에 아내를 내려주고 입원한 친구 남석이를 만나러 신정동 고려병원으로 갔다가 밤에는 보름 전 어머니를 여읜 형준이와 술을 마시다가 늦게 돌아왔다.
19일 이틀 연속 너무 늦게 들어와 가족들에게 미안했고 10시까지 자다 보니 아침에 학교에 가는 아들과 딸도 배웅하지 못했다. 허리가 아프다는 아내는 계속 누워서 보내고 나 역시 아직도 통증이 완전 가시지 않아 우리가 나이든 사람이었다면 집이 요양원이 된 꼴이다. 오전에 술도 깨지 않은 상태로 안산에 올라 정신없이 걷다가 가져간 과일을 먹고 내려왔는데 찬 바람에 코끝이 시릴 정도였다. 집에서 점심을 하고 학원에 나가려고 준비하는 사이에 논술교실로 간다는 아내가 아픈 허리를 붙잡고 먼저 현관을 나선다.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지만 혼자서 갈 수 있다기에 조심하라는 말만 하고 나도 편하지 않은 몸으로 차를 몰고 학원으로 출발했다. 도착하여 차를 주차하고 나오려니 허리의 통증이 심해져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에 들어가 X레이 촬영을 하고 진단을 받았다. 검사결과는 근육이 놀랐을 뿐 큰 문제는 없고 물리치료라며 전기충격만 10분을 했는데 비용이 7천8백원 나왔다. 수업을 하면서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평소처럼 마치고 어제 그제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오늘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집으로 향했다.
20일 일찍 일어나 감리교 재단인 학교에서 예배를 본다는 아들을 태우고 8시에 아파트를 출발했다. 토요일이라서 여유있게 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아들이 특활시간에 사용할 프라이팬을 두고 갔다며 다시 학교에 가라고 한다. 특활활동 시간에 음식을 하는가 생각이 되었고 아무튼 반장이 준비물도 챙기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바로 가서 입구에 있는 경비실에 맡기고 돌아왔다. 어제 아들이 회장 임명장을 받아와 담임 몫까지 37명분 햄버거를 산다고 하여 10만원으로 예약을 해 둔 상태다. 오전에 학교로 직접 배달이 될 것인데 학급 분위기나 친구관계를 위해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늘은 최근 몇 년 사이 날아온 황사 중에서 가장 심하다고 방송마다 다투어 보도룰 하는데 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12시에 고속터미널 근처로 나가서 시골에서 올라오는 친구와 점심을 먹었고 오후에는 사업의 어려움으로 충무로에서 술을 마시는 영식이를 만났다. 착하고 인내심 많은 친구지만 금전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하니 괴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런 압박감 때문에 김성우나 큰 형님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쌀쌀한 저녁에 지하철을 이용하여 집에 들어오니 아무도 없어 주방장 차림으로 자장밥을 만들어 저녁을 먹었다.
21일 잠을 못 잔 것처럼 몸이 무거웠지만 어제 심했던 황사가 한반도를 벗어났는지 밝아온 하늘은 유난히 청명하다. 8시경 식사를 하고 교회에 가면서 광화문 덕성여고 뒤편 정독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간다는 아내와 딸을 태워다 주었다. 처음 와 보는 곳인데 과거 명문고등학교 터라서 그런가 보기만 해도 면학의 분위기였고 반듯하고 고즈넉한 건물이 도심 속 여기에 있다. 도서관을 나와 광화문을 통과하는데 오늘 동아마라톤이 열리는 날이라고 통제가 심하여 가까스로 빠져나와 금화터널을 지나 10분이나 늦게 교회에 도착했다. 시작을 알리는 성가대 찬송가에 이어 목사님의 기도가 진행중인 가운데 엉금엉금 기어 맨 뒤에 자리를 잡았다. 설교를 들으면서 1시간을 보내고 다시 논술교실에 돌아와 고1 A반 수업을 마친 뒤에 집으로 내려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고1 B반 수업을 하려고 교실에 다시 갔는데 중간고사 범위라고 결석하지 마라는 문자를 오전에 보냈음에도 아들만 결석을 했다. 수학학원과 겹친다는 것이지만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고 저녁이 되어서는 아침에 간 아내와 딸을 태우기 위하여 정독도서관으로 갔다. 땅거미가 밀려오는 시간 함께 은평구 E마트에 가서 삼겹살과 배드민턴 라켓을 구입하여 돌아왔지만 오늘 결석한 아들 때문에 즐겁지가 않았다.
22일 거실에서 자는 아내와 딸을 두고 안방에서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니 어제의 달리 상쾌하고 개운한 새벽이다. 잔뜩 흐린 아침에 아들을 기다리다 함께 학교로 출발했고 돌아오면서는 등교하는 딸을 아파트 입구에서 만났는데 어디를 보나 나를 닮아 좋았다. 공부도 잘 해야겠지만 특히 뚱뚱해지면 보기에 좋지 않으니 자기관리를 하여 자신감을 유지하는 당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오전에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하고 돌아오니 허리가 불편하다는 아내가 다행히 오늘은 수업이 없다며 누워서 보내고 있다. 점심을 함께 먹고 학원으로 나가서 수업을 하는 저녁쯤에는 눈이 펑펑 내려 다시 겨울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3월 하순에 미친 날씨라고 인터넷에서는 난리지만 작년 3월20일에도 폭설이 내렸기에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오히려 네티즌들이 미친 상태가 아닐까. 다행히 도로에 내린 눈은 녹아서 문제가 없지만 교무실 5층에서 바라본 성북동 주변의 모습은 생소한 설국으로 변해 버렸다. 눈의 영향으로 기온이 내려간 밤에 학원에서 이대부고 앞으로 단숨에 달려가 10시에 수업을 마친 아들을 기다리다 태우고 집으로 왔다.
23일 평소처럼 학교에 가려고 준비하는 중에 아들이 혼자서 간다는 것을 쌀쌀한 3월까지는 태워준다고 약속을 했다. 함께 출발했다가 집에 돌아오니 딸이 학교에 가려고 거실을 나서고 오늘은 교복 위에 단정하게 김민경 이름표까지 달았다. 효도하는 심청이를 닮으라고 내가 김청이로 지으려던 것을 아내가 반대했고 4월 어느 날 옥돌민珉 서울경京이 좋겠다고 청주 복대동 마루에서 장인어른께서 정해준 것이다. 오전에 외출을 하면서 경비실에 들렀더니 홍제원 아파트에 사는 차용곤 채무인이 금전적인 이자를 대신하여 금목걸이 2개를 봉투에 담아 맡기고 갔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성의는 고마웠지만 당황스러워 바로 전화를 했더니 세공비를 제외하면 2개월분 50만원은 될 것이라 이야기를 한다. 체육관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돌아오니 아직도 허리가 불편하다는 아내가 거실에 누워 있어 어제처럼 라면을 끓여 점심으로 함께 먹었다. 오후에 성북동학원에 가서 서류정리와 수업준비를 하고 저녁에는 내부순환도로를 이용하여 성산동 근처에 갔다가 후배와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밤에 아들 방에 들어가 엊그제 담임이 쓴 편지를 펼쳐보니 자기관리를 잘 해야 수업능력이 생긴다는 내용으로 아마 학생 모두에게 준 글이 아닌가 싶었다. 당연 옳은 말씀으로 문제는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방법을 가르쳐 주는 일이 더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이대부고 운영위원회 활동으로 경기도 이천에서 교감으로 있는 친구에게 얼마 전 학교와 학부모의 입장을 물은 적이 있는데 오늘 전화를 하더니 상세하게 설명을 해 준다.
24일 이른 시간 아들과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 9시경 아침식사를 하고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운동을 마쳤더니 오전이 지났다. 오후에는 학급회장 대표로 학부모회의에 참석하는 아내를 태우고 아들의 학교로 갔고 그와 별개로 나는 학교운영위원회 출범에 참석을 했다. 운영위 모임은 2층 교직원 식당에서 교감선생의 사회로 열려 교장선생의 말씀과 나를 포함한 운영위원들의 인사로 진행되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자사고가 된 이대부고는 수업료가 일반고에 비하여 3배나 되고 학부모와 학교가 자율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2,3학년과 차원이 다른 교육과정을 펼쳐야 한다. 입시 중심으로 시간표를 만들고 예체능 시간을 줄이는 것까지 자체적으로 결정할 사항이 많아 교육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여 나도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를 했다. 학교는 교육의 현장이라고 해도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는 교장과 부장 그리고 선생들까지 위계질서가 엄격하여 민주방식의 운영은 생각지도 못 한다. 오늘 열심히 하겠다는 교장선생의 인사가 있었지만 운영비용이나 능률학습을 위한 방안 등 학생들의 권익을 위해 학부모인 내가 강력하게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학부모회의에 참석한 아내가 임원에 포함되었는지 늦는다는 문자가 와서 먼저 학교를 나왔지만 아들로 인하여 우리가 더 바쁜 시간이 되었다. 오후에 수업을 하다가 학교 상황이 궁금하여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회의가 길어서 이제야 마쳤다고 하는데 자사고 출발의 진통이 있었을 것이다. 밤 10시에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오늘 학부모대표 회의와 운영위원회의 토의내용을 바탕으로 이대부고의 내일을 논의하였다.
25일 아파트 아래에서 아들을 기다리는데 수학학원에서 새벽 3시30분에 왔다며 눈을 비비고 내려온다. 열심히 가르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음 날 학교에 가는 학생을 거의 아침이 되어 보내다니 그로 인하여 학교 수업이 망가지는 것까지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학교에 가는 도중 아들에게 이대부고 운영위원으로 아빠가 활동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약간 놀라는 눈치였지만 나로서는 더 가까이서 아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오랫동안 대학입시를 담당한 내가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자사고 이대부고에 어떤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입한 것이다. 집으로 와서 식사를 하고 모처럼 산행을 하려고 배낭을 메고 정릉에서 청수장으로 향하여 북한산에 올랐다. 오랜만에 걸어가는 북한산 보국문 길은 앙상한 나뭇가지 뿐으로 봄이 오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아직 들을 수가 없었다. 정상에 올랐다가 칼바위로 이동하여 집에서 가져온 따뜻한 국물을 마시는 중에 함박눈이 쏟아져 식사를 멈추고 하산을 시작했다. 정릉에서 미아리고개를 넘어 가까이에 있는 학원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아 잠깐 졸다가 저녁에 수업을 시작했다. 밤에는 날이 추워 곧바로 집으로 와서 삼겹살로 저녁을 먹었고 오늘 자율학습이 없었다는 아들은 대화할 여유도 없이 일찍부터 잠만 자고 있다. 학원에서 새벽에 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현명한 사람은 남들 자는 시간에 자고 일찍 일어나 낮 시간을 잘 활용하며 생활하는 사람이다.
26일 거실에서 자다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환경이 바뀌면 잠을 잘 자지 못하는데 외부보다는 집이 좋고 거실보다는 평소 자는 방이 더 좋다. 이른 아침 학교에 가는 도중 아들은 이대부고 공지사항을 보니 운영위원회에 내 이름이 있었다며 이제부터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학교에서의 태도나 성적을 담임이나 교감을 통해 내가 항상 점검할 수 있으니 말로만 그러지 말고 작은 것부터 성실하게 처리하라고 당부했다. 집으로 돌아와 감기 몸살이 있다는 딸을 태우고 학교에 가려는데 세피아는 타지 않겠다고 하여 BMW를 몰고 다녀왔다. 평소에 아들도 낡은 세피아를 몰고 가면 자존심이 상하는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차를 요구했는데 이제부터는 차도 구별하여 등교시킬 것이다. 아들과 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나도 어린 시절 흙투성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친구들 앞에서 부끄럽게 여긴 적이 많았다. 당시에는 학교 정문 앞의 논이 우리 것이라서 모내기를 하거나 추수할 때 친구들이 보이는 논에서 농부들과 점심을 먹는 일이 고역이었다. 아내가 일찍 안산에 올랐고 식사를 마친 나는 체육관에서 가서 운동을 하고 돌아올 때는 무 5개 파 3단 토종닭 등을 구입하여 왔다. 아내의 부탁이 있었던 것이지만 부엌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야단을 맞았던 과거와 다르게 남녀평등 시대를 살아가는 현실에 적응해 가는 내 모습이었다. 오후에는 비바람과 함께 눈까지 날려 3월 하순까지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고 학원수업을 마치고는 바로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었다. 늦은 밤 치킨을 배달시켜 아내와 딸과 먹는 중에 연평도 근처에서 우리 초계함이 침몰되어 다수의 실종자가 발생했다는 속보가 나오며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갔다.
27일 새벽에 일어나 뉴스를 보니 어제 초계함 사고로 46명의 장병이 사망 또는 실종이 되었다. 배와 함께 침몰했다니 생존의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북한의 소행인지 아니면 전복으로 인한 사고인지 꿈도 펼치지 못한 젊은이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전국이 비상으로 뒤숭숭한 토요일, 비가 오후부터 온다는 흐린 날씨임에도 딸은 봉사활동으로 비석을 닦으러 국립묘지에 간다며 집을 나선다. 오늘은 긴장의 시간이고 어차피 비라도 내리면 헛일이니 단체문자로 행사 취소를 알렸으면 좋으련만 학교측은 그런 융통성이 없을 것이다. 아침 9시에 식사를 마친 아들은 수학학원에 아내도 논술교실에 올라가고 나는 초계함 수습과정을 TV로 지켜보다가 장병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안산에 올랐다. 기온이 낮고 시국이 어수선해서인지 산행하는 사람들도 없어 휑한 정상을 거쳐 남동쪽 방향으로 한걸음에 내려왔다. 집에 도착하여 자장면을 만들어 점심을 먹고 다시 TV를 켰더니 함정은 서해안을 수호하는 천안함으로 북한의 잠수함이 어뢰정을 발사했다는 보도를 한다. 4시경 학원에 갔던 아들이 돌아와 지난 번 결석으로 못한 국어를 보충하자 했더니 학교에서 이미 배웠다면서 배드민턴 연습을 하겠다고 현관을 나간다. 과제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말만 앞세우고 오늘도 덤빌 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아들로 인하여 저녁이 우울하기만 했다.
28일 새벽 1시경 잠이 들었다가 이번에는 아내의 콧소리에 잠자리를 거실로 옮겼고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을 맞이했다. 어제 하루 종일 쉬었고 술도 마시지 않았음에도 몸이 무거운 것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결과인데 잠자는 과정이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식사를 마치고 공부를 하러 간다는 딸을 엊그제와 같이 광화문을 지나 정독독서실에 내려주고 교회에 들어가니 오늘은 종려주일이라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설교를 한다. 기도와 찬송까지 엄숙한 시간을 보낸 뒤에 우현이와 만나 다음 주를 기약하고 논술교실에 돌아와 고1 A반 수업을 시작했다. 오후에 집으로 와서 점심을 먹고 쉬는 중에 종로에 모임이 있어 나간다는 아내가 중등반 감독을 부탁하여 곧장 교실로 올라갔다. 오후 4시부터 고1 B반 수업을 하려니 영어 수학과 시간이 겹친다는 아들이 또 결석을 했는데 다른 학생들과 달리 유독 이런저런 이유가 많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사실을 수강생들이 모두 알고 있는 터에 아들만 지각과 결석을 수시로 하다보니 나로서는 입장이 여간 민망하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정독도서관에 있는 딸을 태우러 갔다가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군것질 거리를 사 주었고 저녁식사를 하려고 삼겹살도 구입했다.
29일 새롭게 한 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새벽 2시가 지나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아 화가 나서 학원에 문자를 보내라고 시켰더니 아내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자다 일어난 내가 아침에 일찍 학교에 가야 하는데 지금처럼 새벽에 보내면 낮시간 학습의 효율성이 떨어지니 토요일은 모르지만 평일에는 12시까지 집으로 보내라고 감정을 담아 문자를 보냈다. 얼마 후 아들이 돌아왔지만 이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반가움보다 엉망진창이 될 내일의 학교생활이 더 염려가 되었다. 아침에 아들의 일요일 국어수업이 다른 과목과 겹쳐 방법을 모색했는데 처음부터 반드시 필요한 아버지의 수업이라고 주장하여 조율할 배짱은 없었을까. 학교에 갈 생각도 잊고 누워만 있다가 오전에 운동을 마치고 어제 이사한 퇴계원 처제한테 아내와 함께 가서 필요한 식탁과 의자를 구입하라고 비용을 전달했다. 오늘은 기온이 올라 봄날이 된 것처럼 따뜻했는데 천안함 침몰로 어수선하고 설상가상 몇 년 전 여배우 최진실의 죽음에 이어 그의 남동생까지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들려 충격이 컸다. 뿐만아니라 지금 한국은 법정스님의 입적과 공무원들의 죽음까지 날마다 초상을 치루는 형국인데 불안과 혼돈의 3월이 아닐 수 없다. 저녁에 학원으로 가서 수업을 하고 10시에 집에 돌아오니 아내와 딸은 오늘도 거실에서 잘 요량으로 미리부터 다정히 누워 있다.
30일 화창한 화요일 낮 기온이 영상 10도까지 오른다니 이제는 분명히 봄이 오려나 보다. 새벽에 온 아들이 학교에 가고 아내도 산에 올라간 뒤에 대학로에 나가서 후배와 병문안으로 서울대 병원에 들어갔다. 빈틈이 없는 주차장에 본관 입구까지 사람들이 많아 병원인지 시장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그렇다고 봄같은 모습은 누구의 얼굴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점심쯤 영식이가 전화를 하여 부산 선박사업과 필리핀 영어사업 등 어려운 작금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또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설령 방법을 말한다 해도 친구와 생각 차이가 있어 의미가 없다. 병원을 나와 고등어조림으로 점심을 사 먹고 집으로 왔더니 술을 마셨는지 영식이가 다시 전화를 하여 오늘이 부인의 생일인데 해 줄 것도 없다며 절망의 심경을 토로한다. 사업을 하다가 금전적인 손실이 생기면 얼마간 버티다가 결국은 이성을 잃게 되는데 친구 영식이도 현재는 사느냐 죽는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밤에 달력을 보니 벌써 3월이 가고 어머니와 고통을 나누었던 작년과 비교하니 빠르게 흐르는 세월 속에서 그나마 나는 평상심이 많이 생겨나 있다.
31일 새벽에 일어나니 밖에 비가 내리고 아내는 아들을 태우고 가라며 나를 깨운다. 대꾸도 안 하고 요구한 생활비만 230만원 보낸 뒤에 생각하니 세월은 인정도 없이 4월의 문턱으로 나를 옮겨 두었다. 오전에 영어를 배운다는 아내가 동사무소에 간다기에 체육관에 가서 에어로빅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건강과 외적인 아름다움에 치중하라고 또 당부를 했다. 외국에 살 것도 아니면서 또한 외국에 산다고 해도 현장에서 필요한 약간의 회화만 하면 될 것을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중학영어를 배우러 다닌다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오전에 체육관 운동을 마치고 곧바로 성북동 학원으로 가서 수업을 준비하며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점심으로 먹었더니 맛도 있지만 시간이 넉넉해서 좋았다. 오후를 보내다가 문득 바라본 3월의 창밖은 줄기차게 오가는 사람과 차량들이 마치 두 줄기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끝이 없었다. 저녁에 학원을 나와 남영동으로 이동하여 고통에 쌓여 있는 영식이를 만났고 형제같은 그를 바라본 내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성회관 2층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위로했지만 냉엄한 현실은 어찌해 볼 수가 없고 밤은 깊어만 갔다. 내일은 잔인한 4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