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고통이라고 하는 건 개인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그 고통은 전달되지 않아요. 그래서 누구나 외롭고 힘든 면이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다는 것이 실제로는 그렇게 놀랍지 않고, 오히려 당연 하다는 걸 전제로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자꾸 실망하게 되고 세상을 경멸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한 개인의 몸 안에 있는 고통, 슬픔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회적 고통이 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고통에 누군가가 응답하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해요." P309
'고통이라고 하는 건 개인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그 고통은 전달되지 않아요.' 라는 첫 문장은 당연합니다. 남의 아픔과 고통이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일지라도 말입니다. 아이가 아픈 것이 내 몸이 아픈 것처럼 아픈것일지라도 그 고통과 아픔을 지나는 시간은 오롯이 그 사람의 몫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내가 동일하게 느낄 수는 없지만, 그들의 고통에 응답하는 순간, 개인의 몸에서 일어난 고통, 아픔이 사회적 고통으로 확대된다고 저자 김승섭 교수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책의 제목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가 된 것이로군요.
작년에 김승섭 교수님의 책을 두 권 읽었습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둘 다 좋았지만 조금 더 보편적 주제를 담은 <아픔은 길이 되려면>은 정말 좋았습니다. 2023년 제가 읽은 6권의 별 다섯개 책 중 하나였으니 말입니다. 작년 연말에 이 책이 출간되어 바로 사놓고는 2024년의 시작 쯤에 읽고자 했습니다. 어찌저찌하여-실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난관을 돌파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서 ㅠ- 1월의 마지막 책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훌륭한 문장, 훌륭한 사고, 냉정한 시선, 따뜻한 마음, 그를 바탕으로 우리를 깨우는 도끼와 같은 책입니다.
"한 인간이 이상을 좇아 떨쳐 일어날 때마다, 다른 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할 때마다, 불의에 맞서 싸울 때마다, 희망의 작은 물결ripple of hope이 세상에 보내진다. 그렇게 쌓인 물결들은 억압과 차별이라는 가장 강력한 장벽조차 무너뜨리는 파도를 만들어 낸다." - 로버트 케네디 p67
저는 비교적 진보주의의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보란,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체제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사람보다 목적이 우선되는 경우를 보이는데 제가 제일 싫어하는 행태입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뭣이 중헌디'를 놓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오미 울프의 이 말이 저에게는 제 삶의 방향타가 되어줍니다.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 나오미 울프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으면서, 김승섭 교수님과 많은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그건 아마 90년대 초반 학번의 대학생들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을 지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몸부림치고 해답을 찾아가는 눈물 겨운 시간을 공유하였기 때문 일 것입니다.
“사회를 전체적으로 바꾸어내는 '혁명'의 전망 없이 나는 어떻게 해야 진보적으로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제게는 20대 내내 큰 화두였어요. 좀 더 근원적으로 말하면,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 없이 어떻게 나는 계속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어요...(중략)... 사회가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는 꿈이 없다면, 남은 길은 자신의 삶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진보적인 실천을 하도록 하고 그럴 수 있게 준비를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 p299
바로 이 고민 말입니다. '남은 길은 자신의 삶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진보적인 실천을 하도록 하고 그럴 수 있게 준비를 하자는 생각' 이라는 해결책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요즘의 저는 그리하여, 몇가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진보적인 실천'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 두 가지 생각으로 모아졌습니다. 하나는 차별 없는 사회. 다른 하나는 자살하지 않는 사회. 아마도 앞으로의 저의 운동의 방향은 이 두가지로의 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의 그런 생각을 강화시키는데 이 책은 정말 좋은 지침입니다.
'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한다.'는 문장이 선명하게 떠올라 여러개로 복제되어 공기 중으로 확산됩니다. 저도 사실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걸, 여러 경험을 통해 느꼈고, 그것을 김지혜 선생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절대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응급실에 방문한 환자에게 진통제 처방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인종이었다고 합니다. 같은 질환으로 왔을 때 백인 환자에 비해 히스패닉 환자들은 진통제 처방을 훨씬 덜 받았다고 합니다. 이 연구가 발표되었을 때 의사들의 반응은 '황당하다'였답니다. 자신들은 실제로 환자를 볼때 객관적이고도 의학적인 판단에 기초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니 말입니다.
내가 타인을 차별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를 차별한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 이야말로 차별적인 행동을 하기에 최적화된 사람일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편견은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풀 때 더 쉽게 나타난다.p76
이것을 명시적 편견과 구분하여 암묵적 편견이라고 합니다.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의 잠재적인 문제행동을 찾으라고 하며 보여준 비디오에서 선생님들은 흑인 남성 아이를 가장 오래 쳐다 본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암묵적 편견의 무서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김승섭 교수님은 한국 사회가 암묵적 편견을 떠나 명시적 편견도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모습에 무서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난민 신청을 하며 제주도로 들어온 예맨인들에게 우리가 취했던 태도는 어땠습니까? 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성폭행범 등의 취급을 하며 거부했던 기억은 저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발언과,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 대한 폄하 발언은 새삼스런 일이 아닙니다.
정말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어쩌면 제가 이상한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다수가 그렇지 않으니 말입니다. '니가 이상한거야!' 라는 귓가에 맴도니, '내가 이상한 건가' 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ㅠㅠ
플라톤은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 만큼 불공정한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적극적 우대정책이 없다면 불평등이 계속 유지된다. 적극적 우대정책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대에 서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수단이다. p78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차별을 이야기 합니다. 성소수자차별, 흑인, 동남아인들 등의 인종차별,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 에이즈환자에 대한 차별, 미투운동으로 드러난 여성차별 등등. 차별은 사람을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가장 나쁜 수단입니다. 그리고 건강적인 측면에도 부정적 요인으로 작동합니다. UCLA에서 실시했던 세 명의 공패스 실험에서, 점차 소외당한 사람은 육체적 고통을 느낄 때 반응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을 측정했다고 하죠. 이들에게 가해지는 인터넷 상에서의 차별 발언의 수위를 보면, 아프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수님의 깨달음에 편승해 봅니다.
부조리한 사회가 질병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게 명확해질수록, 그 대답은 더 무겁고 더 멀게 느껴졌습니다. 제게 공부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언어였습니다.
부조리한 사회가 질병의 근본적 원인이라면 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응답해야 하는 것에서부터 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이를 어떻게 우리 사회에 제도적으로 적용시킬까 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기득권의 언어는 논리적으로 깔끔하고 잘 정리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명확한 언어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래의 가능성을 말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역으로 이는 사회적 약자가 '언어의 부재'로 고통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은 이미 고착화된 세계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가능성을 말하며 그 강고한 장벽에 몸을 부딪치면서 만들어 내는 균열이라고 생각합니다.p204 [출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