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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일
8월이 시작된 날 눈을 뜨니 9시가 지났다. 새벽 1시경 잠이 들었는데 늦게 깬 것을 보니 어제 일요일 수업에 스트레스가 많았던 모양이다. 모두가 잠을 자는지 집안은 조용하고 밥을 사 먹으러 엊그제 갔던 홍제천변 해장국집으로 나갔다. 도착하여 따끈한 콩나물국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흐린 날씨에 한바탕 소나기가 내릴 것 같았다. 오전에 학원으로 가면서 신설동에 들렀고 조만간 영업을 시작한다는 1층의 공사는 말끔하게 완료되었다. 1시경 학원에 도착하자 안양에서 서울로 나온 친구가 오늘까지 휴가라며 만나서 술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일도 많고 대낮부터 그럴 수가 없어 점심이나 한다는 명목으로 나갔다가 청계천 근처에서 얼큰한 국밥을 함께 먹었다. 오후에 학원으로 다시 들어와 아들이 부탁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저녁에 집으로 가면서는 운동을 하려고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새로운 달을 시작하는 첫날인데다가 방학을 한 학생들이 많아 기구를 차지하기도 어려웠다. 1시간 남짓 운동을 하는 중에 아내가 모습을 모였고 9시가 지나서는 과외를 마쳤다는 딸이 무표정하게 들어왔다. 10시경 먼저 시작한 나부터 집으로 들어갔더니 아들과 딸이 사용하는 방에는 도배를 대비하여 미리 싸둔 짐이 수북했다.
2일
아들이 친구의 자취방에서 잔다며 밤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안방도 있고 거실도 있는 마당에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지 막막함이 생겼고 그러기에 앞서 무능함에 대한 나의 자책이 앞섰다. 늦게까지 누워있다가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는 아내 딸과 동네에 있는 지물포에 나가서 내일 사용할 도배지를 골랐다. 중학교 2학년 딸이 고른 것은 마음에 쏙 들었는데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아내의 선택지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성장한 환경이 달라 생각이나 판단에 차이가 있겠지만 무엇이든 공통의 시선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10시경 체육관에서 빠르게 운동을 하고 점심쯤에 어제 들어오지 않은 아들을 찾으러 아내와 학교를 찾았다. 도착하여 자습실에 있던 아들을 찾아 질책을 했는데 외박도 그렇지만 밤새 전화마저 불통이라 걱정이 많았던 터였다. 홍제동 롯데리아에서 잠을 잤다기에 오는 길에 확인을 했더니 머리 짧은 남학생이 밤을 새우고 아침에 어슬렁 나갔다고 한다. 오후까지 쉬다가 저녁을 먹은 후 교실로 올라 수업을 했고 늦은 밤에 어둠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니 거실이 조용하다. 다만 내일 도배로 인하여 거실과 안방으로 아들과 딸의 짐을 모두 옮겼는데 불편해도 이런 때가 행복한 시간이다.
3일
새벽부터 도배하는 인부들이 집으로 왔다. 아들은 보충수업을 한다고 일찍 학교에 갔고 아내와 딸은 새로운 방의 모습을 기대하는지 상기된 표정이다. 식사를 마친 오전에 딸이 논술교실로 오르고 나도 운동을 나가는데 일찍부터 수업을 시작했던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아들이 대신고나 경복고 정도로 전학을 가겠다는 내용으로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라 나로서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교재나 교육과정까지 바뀌어 새로운 적응이 필요하고 그렇다고 별반 다를 것도 없는데 어찌된 일인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내신등급이 원인일 것인데 학교를 옮겨 등급에 상승이 없다면 오히려 실망과 좌절이 더 클 수가 있다. 운동을 마치고 곧바로 경복고 주변 부동산으로 나가 주소이전 가능성을 탐색한 뒤 학교로 들어가 상담을 했다. 점심쯤에는 신설동에 나가 1층 이전 세입자와 공과금 등으로 설전을 벌이다가 바로 집으로 들어와 도배를 점검했다. 딸이 사용하는 방은 은은한 그린 색으로 운치가 있었고 아들의 공간은 거실과 같은 상아색으로 치장을 했다. 내일 오전에 장판을 정리하고 책장이나 옷가지를 제자리에 두면 환하고 깨끗하여 이전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자장면으로 점심을 먹고 대학로를 경유하여 학원을 가는 중에는 높은 기온에 불쾌지수가 생겨 지루함이 많았다. 학원에 들어가서 즐겨 부르던 배호의 노래 몇 곡을 컴퓨터에서 들었더니 오전부터 혼란했던 마음이 그나마 나아졌다. 저녁에 논술교실로 이동하여 9시까지 수업을 하고 이후 서대문에서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왔다.
4일
어제 도배를 마치고 오늘은 장판을 한다며 인부가 다시 왔다. 그것보다 아들의 전학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잔 심란한 아침인데 거센 바람까지 불며 비가 내린다. 아들이 전학을 원하는 것은 분명히 내신성적 때문이라는데 경복고도 자사고인 이대부고와 수준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전에 차를 몰고 교육청에 들어가 상담을 했더니 거주지 요건만 맞으면 경복고 배정이 가능하고 나중에 실사를 한다는 것이다. 교육청을 나서 이대부고로 들어가 아들의 담임에게 통보를 하고 연고지를 마련하기 위해 종로구 경복고 근처에 나갔다. 방을 먼저 얻어야 주민등록 주소를 옮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류를 받아 교육청에 거주자로 신고가 가능할 수 있다. 다행히 단기간 사용할 수 있는 단칸 방을 찾아 월 50만원 계약서를 작성하고 효자동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마쳤다. 이후 새로운 등초본을 발부받아 이대부고에 다시 가서 직인을 얻어 교육청에 접수를 했더니 경복고 배정 문자가 바로 왔다. 일사천리로 처리를 하는 동안 알고 지냈던 이대부고 교감이나 행정실장은 의아했고 처음 본 누하동 90-1번지는 초라했다. 오전부터 정신없이 다니다 집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는 거실에 놓여 있던 책과 가구들을 정리했다. 딸의 방에 있던 긴 탁자를 설치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고 저녁에는 새로 얻은 누하동으로 옷과 책 등 필요품 일부를 옮겼다. 밤에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운동을 하고 집으로 오면서는 막걸리 한 병을 샀는데 오늘은 어느 때보다 하루가 길었다.
5일
아들의 전학으로 마음도 바쁘고 도배와 장판 교체로 어지러운 상황에 오늘은 장모님께서 침대를 배송하신다. 감사함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안방에 꽉 차는 큰 사이즈라니 남는 공간이 부족하여 오히려 불편할 듯도 했다. 차라리 현재 필요한 아들의 1인용 침대나 딸을 위한 옷장이나 서랍장 정도였더라면 더 실용적이었을 것이다. 어제 여러 곳을 바쁘게 다닌 탓으로 새벽에 피곤했는데 하지만 이대부고 수업을 한다는 아들과 일찍 학교로 갔다. 이대부고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던 나로서도 마지막인 오늘이 서운했지만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드리라 당부한 뒤 아들을 보냈다. 학교를 출발하여 누하동에 갔다가 집에서 싣고 온 주방용품을 내려만 놓고 학원으로 이동했더니 금방 11시가 되었다. 오후에 점심을 먹고 신설동으로 가서 1층 전력상승 서류에 서명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오니 청주에서 침대가 도착했다. 설치하고 보니 예상대로 안방을 거의 차지했는데 규모나 넓이로 보면 세 사람도 자고 남을 정도의 대형 사이즈였다. 대학을 함께 다닌 친구한테서는 내일 음성 꽃동네에 있는 또 다른 친구를 보러 가자는 연락이 와서 오랜만에 동행하기로 했다. 스무 살 시절에 함께 놀았던 친구는 당시에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되었고 그로부터 거의 30년 가까이를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저녁쯤에 아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누하동에 갔는데 누추한 방을 본 아들이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대견하다고 생각하며 가져온 옷과 책 등으로 입구와 방을 함께 꾸몄고 집으로 돌아온 밤에는 체육관에 나가 운동을 시작했다.
6일
오늘 충북 음성에 친구 면회를 가기로 한 날인데 돌이켜보니 그 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다. 저녁에 장인어른 생신으로 청주에서 가족들 모임도 있으니 꽃동네에 들렀다가 바로 가면 시간이 맞을 것이다.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성북구청 근처로 나가서 기존의 1층 세입자와 그 동안 얽혔던 금전처리를 마무리 했다. 이후 친구들과 꽃동네 정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중부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나갔더니 주말이라 정체가 심했다. 서울 톨게이트부터 65킬로 지점 음성 IC를 벗어나 국도를 달리다 맹동면 산자락에 위치한 목적지에 1시경 도착을 했다. 꽃동네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생각보다 규모도 컸지만 수용인원으로 보아도 국내 최대의 시설이다. 병동에 들어서자 장애인들이 구면인 것처럼 우리를 반겼고 그 중에 오랫동안 이곳에서 생활한 친구도 저만치 눈에 띄었다. 반가움에 손을 내밀었더니 어눌한 말투에 부자연스런 몸놀림으로 다가왔고 그것보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어 고마웠다. 청주로 나오면서 과거에 살았던 증평을 방문하고 처가가 있는 봉명동에 도착하니 꽃동네에서 바로 출발한 친구들이 기다린다. 싸움을 하면서 큰 충청도 놈들이지만 그래도 저마다 인간미가 있어 마침 서울에서 내려온 아내 아들 딸과 인사도 시켰다. 저녁에 봉명동 집에서 장인어른 생신으로 축하와 함께 케이크를 잘랐고 이후 밖으로 나와 식사도 하며 즐겁게 보냈다. 내일 수업이 있어 늦은 시간에 텅빈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왔지만 즐겁고 보람있는 8월의 하루였다.
7일
태풍이 서해안을 따라 중국 쪽으로 북상한다고 새벽까지 거센 바람이 불었다. 안방 침대는 높이가 있어 마치 원두막에 있는 것 같았고 피곤함에 비하여 깊은 잠은 이루지 못했다. 아침에 식사를 하고 논술교실에 올라 수업을 하는데 잠을 적게 잔 탓인지 머리가 아프고 졸음으로 눈이 감겼다. 점심에 집으로 내려가니 거실에 있던 책들은 거의 정리된 상태로 아내는 점심으로 비빔국수까지 준비해 두었다. 식사 후 잠이 들었다가 3시에 수업을 가려고 일어나는데 피곤함에 눈이 떠지질 않을 만큼 정신이 혼미했다. 비몽사몽으로 올라간 강의실은 아직도 휴가철이라 결석이 많아 다음 주에나 정상수업이 이루어 질 것이다. 저녁에 집으로 들어가 감자를 넣은 돼지찌개를 맛있게 먹었고 기온이 높아 베란다 창문을 열었더니 바람이 시원했다. 일찍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시간에 축구를 한다며 아침에 나갔던 아들이 들어왔는지 거실이 요란하다. 대학을 생각하면 지금이 공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종일 밖으로만 다니다니 아들이 염려되는 밤이었다.
8일
밤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문을 닫았다가 더워서 다시 열고 그러기를 반복하며 아침을 맞았다. 새로 놓은 침대는 건강을 담보한다고 하는데 두꺼운 이불을 깔지 않으면 딱딱하여 방바닥이나 다름이 없다. 식사를 마친 아침까지 늦잠을 자는 아들을 보니 전학 등으로 신경을 쓰는 나와 다르게 한심할 정도로 태평하다. 학교에 간다는 딸을 동명여중에 내려주고 곧바로 누하동으로 들어가 가족이 생활하는 것같이 살림도구를 정리했다. 비까지 내리는 날 빈 박스를 끈으로 묶어 궤짝처럼 층층이 쌓아 두었는데 살면서 별스런 일도 다 격어본다. 11시에 다시 동명여중 정문으로 가서 딸을 태우고 집으로 왔다가 이번에는 주방용품을 싣고 누하동으로 출발했다. 계속 동행한 딸은 찾기도 어려운 골목에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집과 방을 보고 할 말을 잊었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마친 뒤 서류를 제출하려고 일단 경복고 행정실을 찾아갔다. 지정된 등본과 교칙을 준수한다는 각서 그리고 누하동 약도 등을 전했더니 내일 실사를 나온다는 것이다. 오후에 대학로를 달려 학원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냈고 저녁에는 아들 전학과정 등을 이야기하며 영식이와 식사를 했다. 친구는 사업의 실패가 가정의 붕괴를 가져왔다며 탄식을 했는데 내 입장보다 안타까운 고민이 더 많았다. 자신은 반드시 재기를 한다니 당연히 친구로서 응원을 하고 기대를 하겠지만 세상일은 쉬운 것도 쉽게 되는 것도 없다.
9일
새벽 2시에 들어와 잠을 자고 아침 8시에 일어나 참치찌개로 식사를 했다. 오전 11시에 경복고에서 거주지로 실사를 나온다기에 옷과 책을 더 준비하여 누하동으로 아들과 함께 갔다. 1시간이나 늦은 12시경 경복고 행정실 직원이 나왔고 방 한 칸에 가족 3명이 산다는 설명을 했더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거짓말을 해도 분수가 있지 옷가지와 책 몇 권 그리고 칼과 냄비만 있는 부엌까지 누가 보아도 말도 안 되는 환경이었다. 현재의 상황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기에 골목까지 따라가 아들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사실을 이야기했다. 군포에 산다는 젊은 직원이었지만 아들을 위한 일이다보니 내 입장에서도 부끄러움이나 자존심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발소에 간다는 아들을 인창중 후문에 내려주고 집으로 가면서 무악재와 같은 오늘의 고비를 넘을 수 있을까 되뇌었다. 점심을 먹은 오후에 경복고로 나와 반을 정하라는 행정실 전화가 온 뒤에야 비로소 짐을 벗은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다. 저녁에 식사를 하고 교실로 올라가 수업을 하면서 아들의 소식을 알렸더니 동기생 수강생들이 크게 의아해 한다. 하루를 마무리 하고 들어온 집은 동굴처럼 컴컴했는데 아들은 들어오지 않았고 아내와 딸은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10일
침대가 딱딱하여 불편했지만 건강에 좋고 온도까지 조절된다니 겨울쯤에는 효율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더 두꺼운 이불을 깔고 자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일어난 이른 새벽의 방안은 시원하면서도 쾌적했다. 거실에서는 아내와 딸이 쿨쿨 자고 있고 낮에 번잡한 무악재 고개는 차들도 잠에 빠졌는지 가로등만 일렬로 흐릿했다. 새벽에 다음 주 수업할 교재를 점검하고 쏟아지는 잠으로 1시간을 더 누웠다가 일어나 한여름의 아침을 맞았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학교에 가는 딸을 배웅하고 이어 아들을 도서관에 내려준 뒤 체육관으로 들어가 운동을 시작했다. 비가 내린다는 남쪽과 다르게 서울의 하늘은 잔뜩 흐렸고 운동을 마치고는 미성회관에서 친구와 점심을 먹고 학원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체육관 아래층에 있는 우리투자증권에서 삼성전자 주식 5주(7십3만6천 원*5주)를 370만 원에 구입한 날이다. 오랜만에 주식을 매입한 것인데 10년 전 큰 형님이 요청하여 처음 투자를 했었고 결국 손해를 보고 처분한 적이 있다. 그 후 성격에 맞지 않아 그만 두었지만 이제는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내 판단으로 정확하게 해 볼 것이다. 하지만 오늘 종가는 7십2만 원으로 전망이 좋았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였으니 역시 알다가도 모를 것이 주식이다. 오후에 신설동으로 가서 내일이나 오픈을 한다는 1층을 점검했고 밤에는 운동을 마친 아내와 딸을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딸은 자신의 체중이 미달이라며 스프를 만들어 먹고 그것도 모자라 군것질까지 오물거리는 입은 쉴 새가 없었다.
11일
거실에서 아내와 딸이 자고 나는 안방에 있으면서 축구경기를 시청한다고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어제 저녁 한일전 국가대표에 이어 오늘은 청소년대표 스페인전이 있었는데 결국 두 경기 모두 패배했다. 식사를 마친 아침에 가구를 보려고 딸과 아현동을 가려다가 공부를 한다며 거절하는 바람에 체육관부터 나갔다. 운동을 마치고 12시경 나오니 어제보다 날은 더웠고 소형 세피아 배기통을 교체하기 위해 곧장 장안동으로 출발했다. 중고품이라 가격이 높지 않아 수월하게 수리를 한 후 학원으로 들어가서는 평소 사용량이 적은 복사기를 계약해지 했다. 엊그제 구입한 삼성전자 주식은 오늘도 7십만8천 원으로 하향이 되었으니 엉터리 주주가 된 나로서 어리둥절했다. 저녁에 아내에게 결혼 혼수품으로 가져온 안방의 낡은 장롱을 교체하겠다고 하니 쓸만하다며 즉석에서 부정의 견해를 보인다. 아들과 식사를 하면서는 대학에 실패하면 바로 군대에 보내겠다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외국으로 나간다고 응수를 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가 중요한데 대책도 없이 해외로만 가겠다는 것은 도피에 불과한 일이다.
12일
가까운 곳이라도 피서를 가기로 여러 번 이야기를 했었는데 오늘까지 아무런 실행이 없으니 아내와 딸이 아쉬울 것이다. 올 해는 집 정리와 아들의 전학 등으로 경황이 없는 여름을 보냈지만 가을이 오기 전에 어디라도 다녀올 생각이다. 식사를 마친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 운동을 하고 11시가 지나 아내와 딸을 태우고 아현동 가구거리로 나갔다. 딸이 사용할 옷장과 안방에 놓을 장롱 서랍장 그리고 아들의 침대까지 필요한 것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도착한 가구거리는 비가 내려 폐업한 골목처럼 썰렁했고 여기저기 드나들며 흥정을 하는 데는 2시간이나 걸렸다. 결국 장롱은 내일 주문하기로 하고 옷장과 서랍장 등 105만 원 정도의 물품만 구입한 후 오늘 개업한다는 신설동으로 향했다. 식사도 하면서 아내와 딸에게 깨끗하게 단장된 건물을 구경시키려던 것이었는데 도착하니 개업이 내일로 미루어졌다. 할 수 없이 종로 5가로 이동하여 동대문 종합시장으로 들어가 쇼핑을 했고 딸의 방 창문 가림막과 옷걸이를 구입했다. 집으로 오면서 짐을 철수하기 위해 누하동에 들렀고 밤에는 아내와 딸이 운동을 나간 뒤 바로 자리에 누웠다.
13일
여름의 끝을 알리는 말복이 오늘인데 종일 비가 온다고 하여 계획했던 산행을 포기했다. 대신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마치고 12시경 아현동에 나가 오늘 주문하기로 했던 물품 중 장롱을 취소했다. 집에 있는 것이 고장이 많이 나 바꾸려던 것이었는데 아내의 경첩만 고치면 된다는 이론과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낭비를 줄여서도 좋지만 식탁이나 오디오 등 결혼 때 가져온 물건이라 추억과 부모님의 사랑이 깃든 혼수품일 것이다. 비가 내리는 선선한 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고 오후에는 누하동에서 어제처럼 책과 옷가지를 싣고 돌아왔다. 그 사이 아내는 청소를 많이 해 두었는데 날마다 치운다고 해도 10여 년 이상을 살다보니 손 가는 곳이 적지가 않다. 저녁에는 말복이라고 닭볶음탕을 준비했고 그런가하면 어디서 배웠는지 가지찜에 소스를 올린 음식도 나왔다. 처음 보는 것이라 생소했지만 모두를 맛있게 먹었고 밤에는 외출한 아들에 이어 아내와 딸도 운동을 한다고 체육관으로 나선다.
14일
일어나니 목 뒤쪽에 통증이 생긴 아침으로 어제 운동도 열심히 했고 잠도 잘 잤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새벽에 오늘 수업할 교재를 점검하려고 교실로 갈 때는 뼈까지 아파서 고생만 하다가 8시경 다시 내려왔다. 아침에도 목과 등뼈는 계속 굳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는데 아프다보니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인식한 날이다. 오전에 축구를 간다며 준비물을 챙기는 아들을 보니 이런 열정으로 공부를 했다면 우수한 학생이 되었을 것이고 나의 기쁨도 컷으리라. 오전에 논술교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갔는데 어제 먹었던 가지나물 찜이 식탁에 또 올라 점심으로 먹었다. 과제를 하는지 오후에 교실로 다시 오를 때까지 컴퓨터 앞에 있는 딸은 분주히 움직이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피서도 없는 여름이라 그런 딸에게 미안했지만 주어진 일에 매진하는 것도 마음에 따라서는 행복한 시간일 수 있다. 수업을 마치고 7시경 집으로 내려가니 아들은 컴퓨터에 아내와 딸은 TV앞에서 각각 일요일을 만끽하며 밤을 보내고 있다.
15일
새벽 6시에 일어나니 목과 등뼈의 통증이 계속 되었는데 그나마 어제보다는 한결 나아졌다. 거실에서 자다가 일어난 아내는 식사를 준비하고 아들은 어제처럼 축구를 한다며 이른 시간에 정신없이 집을 나선다. 아들의 친구들을 가르친다고 교실로 오르는 나로서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발걸음이 가벼울 리가 없다. 수업을 마치고 체육관으로 달려가 잠깐 운동을 한 후 고향인 야유회를 한다는 경기도 장흥으로 차를 몰았다.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이 보고도 싶었지만 집에서 가까운 유원지라 출발한 것으로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옛날이 여기에 있어 만나는 누구라도 반가웠는데 주름진 모습들은 과거와 확연히 달랐다. 하늘이 흐려 야유회 하기에 좋은 날 나도 회비와 별도의 찬조금까지 내며 즐겁게 보내다 해 질 무렵 서울로 나왔다.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아내와 아들 딸은 연신내로 고기를 먹으러 나가고 통증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나는 집에 들어와 누웠다. 8월의 중순을 돌아보니 무엇보다 아들이 경복인으로 바뀐 것이 이 여름의 변화였는데 부디 새로운 출발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