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에도 길이 있었다 ~ 박만엽(朴晩葉)
보스턴에서 곧 수술을 받아야 하는
아들의 심장질환을 생각하면
서울 본사 발령은 저승사자가
부르는 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물고기 한 마리가 어항을 박차고
사막으로 내달립니다
그날따라 모진 비바람이 내리칩니다
내비게이션이 화살 하나를 당깁니다
모래 위를 달리고 있는 물고기가
이것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옆을 스치는 낙타마저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사막에는 절벽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몰아친 비바람은 금세 바다를 이루고
겁 없는 물고기는 잠수함이 되었습니다
방향키를 잡는 손에서 땀이 배어듭니다
눈살을 찌푸리며 비상등을 켜고
거대한 고래 한 마리가 다가옵니다
반사적으로 오른손은 방향키를 굳게 잡고
왼손은 땀을 닦기 위해 힐끗 보았습니다
그 손을 반쯤 접자 工 字처럼 패인
오목한 길에 땀이 고여 반짝거립니다
손바닥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저 멀리서 아들이 양손에 심장 하나씩 들고
부르기에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습니다
칠흑 속에서 반딧불이 된 나를 잠시 보았습니다
(FEB/20/2020)
[계간 시학과 시 (2020 봄호=제5호) 76~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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