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힘 사용하기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정신의 힘을 사용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정신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만 사용하지 못할 뿐이다. 사실 필자가 이렇게 정신을 탐구한 이유도 정신의 힘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는 학교에서나 또는 여러 곳에서 정보를 얻는데, 그 정보를 가지고는 노력을 해도 어렵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나마 알지 않았을까. 예컨대 뭔가 있는 그러나 그것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는 파악한 듯하다. 지금 되돌아 보아도 그 당시 어려운 일들은 대부분 정신의 힘을 써야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이러니한게 정신의 힘을 써야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라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정신의 힘을 쓸수가 있을까가 질문이다. 이를 아주 잘 표현한 문장이 있다. "아이는 처음 '나'라고 말한 순간부터 두 세계의 분리를 경험한다. 사고는 주체의 내면 정신과 객관적 외부 정신을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 수있다(오드리 맥앨런의 도움수업 이해, 2021, 231)."
인간의 발달단계란 인간의 내부(정신)와 외부가 연결되는 단계이다. 이 시기에 인간 내면의 정신과 객관적 외부 정신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어릴적 경험을 살펴보면 누구라도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때가 있다. 이때부터 인간은 외부세계를 인지하고, 나아가 자신과 그 세계를 분리한다. 그런데 금방 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정신의 근본 속성이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가 하나이다'라는 사실인데, 그 시기에는 이런 정신의 근본 속성을 아이가 여전히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론은 인간이 정신의 근본 속성을 지니고 있을 때 외부 세계를 연결시켜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무시됨은 물론이고 거의 강제로 배제시키기 때문에, 정신의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현재 무수히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많은 아이들이 여러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고, 그 문제에 매몰되어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정신의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우리 민족의 정신이 전 세계를 이끌 정도로 우수한데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이런 우리 민족 정신을 싹부터 자르는 (학교) 교육에 그 원인이 있다. 바로 말하면 서양의 과학기술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정신이 온전하게 성장해야 그 기술을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정신이 그 기술을 쓰기 때문인데, 현재는 아이들의 정신이 대부분 망가져서 그 기술을 가르쳐줘도 쓰기 어렵다.
문제는 정신이 인간의 발달단계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알수 없기 때문에 망가지는지도 알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특히 아이들은 자신의 정신이 성장하는 시기에 싹이 꺽였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책임이 없는 것이 학교교육을 열심히 받은 것뿐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자신의 정신이 망가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냥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여담으로 필자가 감사하는 필자의 정신이 있다. 지나고 난 이후 알게 된 사실인데, 필자가 어떤 문제에 부딛히면, 필자의 정신이 저절로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다른 문제도 있지만, 그냥 바라만 보는 것보다는 정신이 목숨을 걸면, 문제의 핵심이 곧 파악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주위에서 어슬렁 어슬렁거리거나 빙글빙글 돌지 않는다. 이것이 정신의 힘이다.
이 힘이 어떻게 나왔는지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신의 경험이므로 자신의 내부에 집중해야만 느낄 수가 있다. 태어나서 3살 까지는 부모의 양육태도를 그대로 모방한다. 즉 부모가 지닌 정신의 속성이 아이의 정신의 출발점이다. 물론 아이는 자신의 부모를 정신세계에서 선택해서 온다고 한다(슈타이너의 주장). 3세 이후 아이는 조금씩 자아를 인지하고 자신의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무의식에서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언뜻언뜻 자신의 사명을 느끼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 시기 인간의 자아는 모든 존재가 하나, 자신과 같은 존재에 머물어 있다. 특히 우주에서 온 자신의 정신이 겪은 경험을 지니고 있다. 우주의 정신은 우주의 천체음악에 거의 모두 들어있다. 그리고 지구의 클래식 음악은 우주 천체음악의 모사이다. 이 시기에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아이의 자아가 우주의 정신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는 자신의 정신의 경험을 시간이 지날수록 잃어버리는데, 이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정신의 힘을 쓴다. 그리하여 이 시기 예술적인 경험을 할 경우 정신의 힘을 기억하고 쓰는 것이 세계적인 예술가들이다.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에서 악기 연주 경험을 하거나 발레, 그림 등등의 경험이 우주에서 한 자신의 정신의 경험에 연결될 경우, 아이가 자신의 정신의 힘을 쓰는 것이다. .
이갈이 즈음(7세 무렵) 아이의 에테르체가 탄생한다. 에테르체는 인간 생명을 움직이는 힘인데 생명의 힘에 쓰이고 남는 잉여분이 있다. 이 잉여분은 인간만이 지닌다고 한다(슈타이너의 주장). 바로 말하면 이것이 정신의 힘으로 사용된다. 인간 생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서서히 소멸해 가지만, 반면 다시 탄생하는 힘, 의지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것이 정신의 힘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식물이 새싹을 틔워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만, 열매가 씨앗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 힘이 에테르체의 힘으로, 에테르체에서 그 힘을 생성해야 정신의 힘을 사용할 수가 있다. 그런데 에테르체가 성장하는 시기에 온전하게 성장해야 이 힘을 생성할 것이다.
여담으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들은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꽃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새싹이 훨씬 더 아름답다. 엣날 나뭇잎에서 새로이 돋는 아주 연한 빛깔의 싹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셨다. 그 당시는 동의하기가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은 스님의 에테르체가 정신의 힘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구체적으로 새싹이 돋아나는 힘은 에테르체의 생명의 힘이다. 그 힘이 내 안에서 나온다는 것은 나의 에테르체가 그 힘을 지닌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 지니지 못한다. 그래서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그 힘이 나의 에테르체에 나온다면, 새싹이 나오는 힘과 똑같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바로 그힘이다. 이 힘, 에테르체가 생성해 내어야하는 그 힘에 자신의 자아가 연결되어야 자아가 정신의 힘을 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힘을 에테르체가 생성할까가 질문이 된다. 먼저 아스트랄체가 진화해야 한다. 아스트랄체는 영혼의 바탕체로 감정체이므로, 아스트랄체의 감정을 파악해서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감정을 제어해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어떤 요인에 따라서 움직이는 마치 허수아비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진리는 용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면 영혼이 활동하고, 결과 의식혼이 답을 찾아서 자아에게 전달한다. 이 과정이 자아의 진화과정이고, 자아가 '정신자아'가 되는 길이다.
자아가 정신자아가 되면은 에테르체도 진화한다. 예를 들어 일찍 일어나 꾸준히 노력하면은 습관이 되고, 이는 에테르체가 진화했다는 의미이다. 이를 '생명에테르'라고 한다. 나아가 인간의 에테르체가 생명에테르가 되면은, 인간의 물질육체도 따라서 변한다. 하지만 오히려 물질 육체가 망가지는 것은 이런 과정이 올바르게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거나 습관이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한 것 등등이다.
일반적으로 도가 높은 사람 중에 나이가 들수록 늙지 않은 경우도 가끔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경우는 에테르체의 생명의 힘을 사용하기 때문인 듯하다. 생명의 힘은 우주의 에너지인데, 삼라만상의 자라는 힘이 모두 여기에서 온다. 식물은 스스로 씨앗을 생성해서 다시 태어나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이 힘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이 정신의 힘을 생성해 내야 하는 이유중 하나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부분에서 이 정신의 힘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가 있다. 유튜브 방송을 하는 유튜버, 글을 쓰는 작가들, 예술가들 모두가 이 힘을 사용하고 있고, 그 힘의 정도가 상대에게 전달되어서 영향을 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에테르체가 정신의 힘으로 발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새싹의 돋아나는 힘이 내 안의 에테르체에서 생성되어야 한다. 새싹의 돋아나는 힘을 내가 느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힘이 곧 정신의 힘이고, 지혜이고, 아이디어이며, 창조의 힘인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육으로 자신의 내부가 망가졌으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내부를 외부세계에 온전하게 연결시켜야 한다. 지금이 가장 빠르다는 말은 정신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집중과 명상으로 자신의 영혼을 성장시켜야 한다. 만약 새싹이 돋아나는 그 힘을 느낀다면, 내가 새로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가 있다. 이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느끼기 어려운 기쁨이다. 많은 수행자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위 문장에서 처럼 인간은 자신의 사고를 통해서 정신의 발달로 나아간다. 인간의 발달단계에서 온전하게 발달하도록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만약 문제가 있다면, 대부분이 그렇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의 영혼을 통해서 정신의 발달로 나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정신의 힘도 사용할 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