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글 마가교회
박종근 추천 0조회 143 09.08.25 22:10 댓글 0
<박스안에 글은09년8월25일 주일 담임목사의 글이다>
지난 8월9일 주일 예배에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사역하는 채동선전도사님이 방문하여 설교를 하셨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모아 시작된 마가교회, 馬가교회는 "마음이 가난한 자의 교회"의 약자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의 교회, 과연 어떤 교회인가? 담당교역자인 채전도사님도 마약중독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던 자였다. 헤어나기 어려운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헤어나와 오늘 날 자기처럼 고통받는 이들의 대부로 사역하고 있다.
눈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가 교회에 오면 정상적인 사람들이 떠나가야 할 만큼 이상한 사람들, 가난하고 병들고 여전히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버려진 사람들,. 알콜중독으로 술에 찌는 사람들, 세상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선고받은 불치의 사람들,
채전도사는 이들이야말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닌가? 눈물로 설교하신 전도사님의 영감있는 설교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날 설교는 1시간 30분 예배시간은 2시간이 지났다. 정렬적으로 연주하는 그의 피아노 연주, 캭 -감동충만! 주일예배후 우리는 울며 웃으며 긴 시간 이야기로 감동의 시간을 보냈다.
적당한 시간 적절한 시기에 하나님의 마가교회 목자를 보내주셧다.
감사하고 감사한다. 박종근 |
사랑하는 형제 채동선 전도사의 별세소식을 듣고
2009년 8월25일 채전도사님이 우리교회를 방문하셔서
수준급의 피아노연주와 그리고 설교를 통해 우리교회에 소중한 메시지를 주셨다.
모든 교우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감동을 주신 분이다.
나는 개인적인 친분으로 가끔 소식을 듣고 사역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지난 주간 캄보디아 단기선교기간 동안 미국의 지인으로부터
채전도사님의 장례가 있었다고 들었다.
나는 채전도사님의 조부와 가깝게 지냈다. 그 어른은 채기은 목사님이시다.
한국기독교 언론의 대부와도 같았던 분이시고 나는 그분에게
한국교회사 강의를 들었다. 기독언론인답게 꼿꼿한 성격이지만
항상 따뜻함과 웃음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다.
바로 채전도사님이 채목사님의 손자이다. 그리고 증조할아버지는
평양신학교 출신 목사님이시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왕성한 설교사역과 빈민사역 그리고 수많은
젊은 사역자들에게 영향을 끼친 그가 폐암선교를 받은 것은 지난
늦 가을이었다.
사랑하는 채전도사님,
그는 목사될 자격이 없다고 신학의 길을 처음부터 걷지 않았던 분이다.
그런 그가 변화받고 은혜받고 신학을 했다. 그리고 로스안젤스에서
빈민선교와 홈리스선교 그리고 교회를 개척하여 수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 시대에 남다른 사역을 감당했다.
하지만 목사안수를 끝까지 고사했다. 자격없다는 말고 전도사로서
이 사역을 감당하겠다는 신조로 사역했던 겸손한 종이었다.
그의 별세소식을 들으며 여러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님의 종들의 가는 길과
그 길의 종착점, 어느 날 홀연히 사역을 내려놓고 주님의 부르심에
천국에 입성하는 과정을 생각한다. 그리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던 바울처럼 그냥 주님앞에 담담하게 서야하는 사역자
인것을 깊이 마음에 담았다.
미국에 방문하게 되면 채전도사님의 무덤이라도 찾아가야지
이 시대에 몇명 안되는 선한 목자라고 늘 생각했기에 나의 서러움과
아울러 숙연함으로 조용히 기도한다. 그 동안 몇차례 서울에
오셨지만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요즘
자꾸 마음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들이 주님곁으로 가신다.
나도 그 길을 가야하기에 더더욱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