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까지만 해도 사랑의 고백은 남자가 하는 것쯤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21세기 요즘은 변했을까요? 꼭 남자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할 것입니다. 남자여야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저 여자는 다소곳해야 한다는 선입관이 만들어 놓은 오랜 관습입니다. 왜 그런 문화가 생겨났을까요? 옛날 ‘갑돌이와 갑순이’의 사랑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서로 미루다 결국 인연은 이루어지지 않고 서로 떨어져 멀리서 그리움만 태우는 이야기입니다. 어찌 보면 당사자들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같지만 그런 사람을 배우자로 맞아 사는 또 다른 당사자들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불행은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지요. 글쎄 그들이 선택한 ‘차선의 배우자’들과는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뒷이야기는 모릅니다.
긴 교제의 기간이 있었지만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망설임이지요. 왜 주저했을까요? 행여 거부당할까 두려웠을까요? 보통 그게 주된 이유입니다. 사랑의 거부는 본인에게 매우 깊은 상처를 안깁니다. 그리고 오래 갑니다. 그런 사실을 미리 알고 망설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자존심의 문제이지요. 상대방에게 거부당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존감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런 일을 당하느니 차라리 피하자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래서 좋아하면서도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취한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무너질 때 무너지더라도 부딪쳐보자는 심보로 달려들어야 뭔가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은 젊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긴 옥중생활을 기다리며 살 수는 없는 형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통보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을 던집니다. 나도 너도 결혼해서 살게 되겠지. 그러다 혹시 모두 홀몸이 되어 다시 만난다면 우리의 인연을 다시 이어보자. 과연 그렇게 홀몸이 된 처지로 두 사람이 만납니다. 이제 딸을 결혼시키는 ‘캐서린’이 식장으로 사용하려는 ‘앰로스 호텔’ 입구에서 옛 연인 ‘상규’를 만납니다. 호텔 도어맨으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며칠 투숙객으로 있는 동안 종종 마주칩니다. 그리고 옛날을 추억하며 시간 내어 데이트도 합니다. 이루기 힘든 약속도 하지요. 한해의 마지막 날 눈이 내리면 상규의 먼저 간 아내가 우리의 첫사랑 인연을 이어가도록 허락하는 것으로 알자고.
크게 되려면 큰물에서 놀아야지. 하기야 도랑물에 대어가 살 수는 없습니다. 강으로 바다로 나가야 큰 물고기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 크게 되려면 아무래도 이끌어주는 회사도 커야 되고 매니저도 많은 거래처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태는 자신이 혼자서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팬들을 수행하는 인기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다 크려면, 보다 크게 성공하려면 그만한 매니저가 필요합니다. 내가 붙잡고 늘어지면 보다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는 실력자를 잔가지로 머물게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형, 동생처럼 사이좋게 지내오며 살펴주었지만 그 은공에 대한 짐을 지우며 그의 앞길을 막는다면 너무 이기적인 조치입니다. 압니다. 그러나 그러면 나는 어쩌라고?
하는 일마나 안 된다. 이래 살아가지고 뭘 하나? 다시 한해는 저물어 가는데 살고자 하는 의욕도 희망도 없다. 마지막으로 있는 것 다 털어서 그럴 듯하게 지내보고 세상을 떠나자, 하는 마음에 유명한 앰로스 호텔에 투숙합니다. 전망 좋은 방을 택하여 그 좋은 전망을 보아도 자신의 앞은 감감합니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모닝콜 해드릴까요?’ 어쩌면 처음 들어보는 관심입니다. 아, 예. 몇 시에 일어나시겠습니까? 9시 반이요. 아침 아홉시 반이지요? 아, 예. 얼굴도 모르는 예쁜 목소리의 아가씨, 그것보다 처음 가져보는 다른 사람의 관심에 감동입니다. 이 쓸모없는 놈에게 관심을 가져주다니! 그것만으로도 감동이지요. 그 인연이 결국 생명을 건지게 해줍니다. 나아가 끊어진 희망의 끈을 이어줍니다.
집에 갑자기 고장이 생겨 경영하는 호텔에 한 달 간 임시 거주합니다. 그리고 만난 계약직 미화원 ‘이영’과 자주 마주칩니다. 호텔 엠로스의 대표 ‘용진’은 도우려고 하지만 이영의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감히 경영주에게 가까이 하다니 혹 ‘꽃뱀’ 아니야? 하는 시선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러다가 혹 그나마 계약직까지 잃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사장은 비로소 ‘계약직’이라는 이 비정규직의 실상을 접합니다. 그리고 경영주로서의 윤리, 나아가 가진 자로서의 선한 마음을 품습니다. 사랑은 국경도 인종도 나이차도 계급도 뛰어넘는 법, 무엇이 걸림돌이 되겠습니까?
인연은 사람이 만드는 것일까요, 우연이 만드는 것일까요? 주말마다 자신의 인연을 찾지만 그 때마다 돌아서는 사람들, 그 속에서 눈이 마주치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도움을 주고받고, 결국 인연을 새로 만들어냅니다. 짝사랑을 잃은 호텔 매니저 ‘소진’은 그렇게 ‘진호’를 만납니다. 성탄절과 연말연시 호텔에서 일어나는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 ‘해피’한 새해를 만나면 좋겠습니다. 영화 ‘해피 뉴 이어’(A YEAR-END MEDLEY)를 보았습니다. 첫사랑, 짝사랑, 옛사랑, 풋사랑 등등 사랑 이야기의 만찬입니다.